외로움 느낄 용기
내가 낳은 딸이 확실하다. 딸은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과 오고 가는 편지가 수북이 쌓였다.
여중생 시절 새 학기 시작한 나는 호감 가는 친구에게 편지를 썼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손 편지 쓰는 것을 좋아했다. 어렸을 때는 새로운 관계를 맺어가며 사람을 알아간다는 게 기대되고 설렜다. 친구가 되기 위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마음 건넨 여중생이 어쩌면 순수함의 절정기가 아니었을까? 내가 좋아했던 커트 머리의 K는 보이시하지만 웃을 때 수줍은 듯 아주 소심하게 입을 가렸다. 많은 아이가 K를 좋아했다. 사춘기 때 여학생들의 시기와 질투는 대단했다. 우리 마음이 몇 번 바뀌는지 알 수 없지만 우린 에너지를 우정에 다 쏟아부었다. 그 과정에서 상처를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하면서 친구 관계가 쉽지 않다는 것을 조금씩 알아갔다.
고등학생이 된 나는 호감이 가는 친구가 있어도 선뜻 손을 내밀지 않았다. 서두르지 않았다. 좀 더 지켜보자고 나 자신에게 말했다. 관계를 형성한다는 것이 나 혼자만의 생각으로 되는 것이 아님을 서서히 알아갔다.
질풍노도의 시기에 나와 딸은 친구 관계에 많은 에너지를 쏟았다.
우리는 관계 지향적인 사람에 가깝다. 사람과의 관계가 좋을 때 더욱 행복감을 느낀다. 딸은 1:1 과외보다 대화가 잘 통하는 친구들과 학원 다니는 것을 좋아했다. 딸은 대학교에 들어가면서 관계에 관하여 상대적으로 소극적이 됐다. 학창 시절 친구 사귀기는 들이대기로 시작되어 기다리기로 끝났다.
‘모든 고민은 인간관계에서 비롯된 고민이다.’ <미움받을 용기>,기시미 이치로·고가 후미타케
관계라고 하면 부모와 자식, 형제를 기본으로 혈연관계가 가장 끈끈하다고 생각한다. 결혼하고 가정을 꾸리면서 또 다른 혈연관계가 형성한다. 우리는 대부분 가까운 관계 때문에 힘들다. 아무리 승승장구하는 사람일지라도 가정 안에서 관계가 틀어져 있다면 온전한 성공이라 할 수 없다. 한번 보고 말 것 같은 사이라면 그 시간만 견디면 그만이다. 가족은 그렇지 않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교회보다 가정을 먼저 만드셨다. 남남이 만나 탄생한 가정은 신비롭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각자 살다가 부부가 됐다. 두 자녀를 함께 양육한다. 같은 배에서 나왔어도 자녀들의 성향이 다르다. 내가 낳은 자식도 속을 알 수 없을 때가 있다. 사랑을 기본 바탕으로 하는 울타리 안 관계 속에서도 갈등이 있다.
어떤 아버지에게 두 아들이 있었다. 둘째 아들이 말했다.
“아버지 제가 받을 몫의 재산을 주십시오.”
아버지는 재산을 두 아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며칠 뒤에 작은 아들은 모든 재산을 모아서 먼 마을로 떠나 버렸다. 거기서 그는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재산을 다 날려 버렸다. 그 마을에서 돼지를 치며 돼지가 먹는 쥐엄나무 열매라도 먹어 배를 채우고 싶었다.
둘째 아들은 생각했다.
‘내 아버지의 품꾼에게는 양식이 풍족하여 먹고도 남는데 나는 여기서 굶어 죽는구나. 아버지에게로 돌아가야겠다. 가서 아버지라고 부를 자격도 없으니 품꾼 가운데 하나로 여겨 달라고 해야지.’
아들이 아직 먼 거리에 있는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끌어안고 입을 맞추었다. 아버지는 종들에게 말했다.
“서둘러 가장 좋은 옷을 가져와서 아들에게 입혀라. 손가락에 반지를 끼워 주고 발에 신발을 신겨라! 살찐 송아지를 끌고 와서 잡아라! 우리가 함께 먹고 즐기자.”
혈연관계에서도 갈등과 불화 다툼이 있다. 아버지는 재산을 탕진한 아들을 기꺼이 반겨준다. 아버지니까, 내 아들이니까 다시 관계 회복이 가능하다. 대부분 부모의 사랑이 많은 회복의 동기가 된다.
우리는 성인이 되어 직장을 따라 독립한다. 혈육이지만 1년에 한두 번 보는 관계와 매일 8시간 이상 보는 직장동료와는 만남의 빈도 차이가 난다. 직장에서의 관계는 강제적으로 일상을 나눌 수밖에 없다. 사회에서 만난 친구와 소꿉친구랑은 정말 다르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거리가 멀어도, 자주 만나지 못해도, 학창 시절 이뤄진 관계는 언제든 편하고 허물이 없다. 그럼에도 어젯밤 딸과 한바탕 한 이야기, 직장에서 스트레스받아 쏟아내야만 하는 분노를 당장 공감할 수 없다!
사적인 관계에서 친해지기 어려울 것 같은 P라는 사람이 있다. 직장이라는 공동체 안에 P가 나와 같은 팀이 된다면 또 다르다. 일하는 시간을 공통분모로 여기며 색다른 색깔의 관계가 유지된다. 정년이 보장되는 직장이라면 더욱 그렇다. 사람과의 관계 지속력이 있으므로 허투루 할 수 없다. 같이 잘 지내야 나도 편하고, 상대방도 편하다. 강제성이 있는 만남을 통해 더 나은 인간관계의 성장을 경험할 수 있다. 목적을 가진 집단에서도 사적으로 친밀한 관계를 맺을 수 있다. 내 마음을 다치면서까지 너무 애쓰지는 말자.
같은 반 아이들 모두 친구는 아니다. 아침 출근길 웃으며 서로 인사하며 업무를 공유하며 도움을 줄 수 있는 정도의 관계라면 아주 훌륭하다.
여러 상황에 따른 인간관계로 얽혀 나는 오늘도 살아간다. 친구 관계, 가족 간의 관계, 직장동료와의 관계 등을 통해 더 나은 사람으로 성장한다.
전도서에 ‘사람들이 하는 모든 말에 네 마음에 두지 말라 그리하면 네 종이 너를 저주하는 것을 듣지 아니하리라 너도 가끔 사람을 저주하였다는 것을 네 마음도 알고 있느니라’ 는 말씀이 있다. 관계 지향적인 나를 오늘도 다독인다.
‘현아야, 괜찮아, 잘하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