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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루터기 Sep 29. 2024

침샘암 1기. 수술을 앞두고 있습니다

생애 최초 장거리 운전. 도착지는 대학병원이었다.

갑작스레 입안에 난 혹으로 동네 이비인후과를 거쳐 단국대학병원까지 가게 됐다. 조직 검사한 지 8일 만에 내 짝꿍 H와 함께 결과를 들었다. 악성일 수도 있다는 교수님의 말을 들었다. 확실한 건 다 떼어 다시 조직 검사를 해 봐야 알 수 있다고 했다.

교수님의 배려로 외래 진료 후 늦게라도 수술을 해주겠다고 해서 11월에서 9월 9일로 예약을 했다.      

8월 5일 발견, 8월 6일 대학병원 검사, 8월 14일 조직 검사 결과와 수술 날짜가 잡힌 것이다.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조직 검사 결과를 듣고 온 날은 새벽 2시까지 잠이 오지 않았다. 나를 위해 걱정해 주시는 분들에게 상황을 말씀드리고 기도 요청을 했다. 

목사님을 비롯하여 대장암 1기로 수술 경력이 있는 집사님과 대학병원 간호사 경력이 있는 지인이 말했다. 서울에 있는 병원에서 수술하는 게 좋지 않겠냐고. 수술 없는 날인데도 날짜를 잡아주신 교수님께 의뢰서를 요청해야 했다. 수술 날짜가 너무 늦게 잡힐까 걱정이 됐다. 단국대학병원에서 수술 전 검사 해야 할 날짜는 다가오고 있었다. 내 짝꿍 H와 고민 끝에 결정했다.     

“저희가 다른 병원에 한 번 더 가보고 싶은데요”

“아, 그러세요. 간호사가 조직 슬라이드랑 챙겨 줄 거예요”

교수는 나가는 문을 가리키며 말했다.

“혹시요, 서울에서 수술 날짜가 너무 늦게 잡히면요...”

“우리 병원하고는 이제 끝입니다!”     

나 같은 사례가 많아 조금은 이해해 줄 거로 생각했다. 3차 병원으로 가려고 의뢰서 요청하는 사람들이 많아 오히려 더 화가 났을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9월 2일 월요일.

단국대학병원에서 검사했던 자료들을 가지고 삼성서울병원에 갔다.

처음 만난 교수는 말을 아꼈다. 수술은 빨라야 10월 16일경 될 것 같다고 했다. 조영제를 넣고 하는 CT와 두경부 MRI 검사를 하고 가라고 했다. 확실한 진단을 듣고 싶었지만 수술 후 조직 검사를 해봐야 알 수 있겠지 싶어 묻지 않았다. 

일주일 후 두 번째 교수를 만났다. 단국대학병원에서 가져온 조직 슬라이드 판독과 추가 검사 결과 등을 보고 무슨 말을 해 줄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교수는 차분하게 겁주지 않고 말했다. 

“혀밑샘에 병이 생긴 거 같아요. 침샘암 1기 같아요”

수술 하기 전 진단을 받게 될 줄 몰랐던 우리는 멈칫했다. 상담 간호사가 수술 날짜 등을 안내해 주었다.

“수술 날짜는 9월 23일이고요”

말이 끝나기도 전에 딸이 울음을 터트렸다. 눈물 많은 내 짝꿍 H도 눈시울이 빨개지면서 고개를 돌렸다. 간호사는 조용히 티슈를 뽑아 건냈다.

수술 전 검사를 하기 위해 우리는 이동했다. 

“엄마, 제가 아까 흘린 건 기쁨의 눈물이었어요. 9월 안에 수술 날짜 잡히기를 모두 기도했잖아요”

“네가 우니까 아빠도 울음이 터졌잖아. 그래 얼마나 감사해”     


첫 진료때는 10월 16일에 수술이 가능하다고 했다. 나는 9월 안에 수술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를 요청했다. 나도 처음 들어보는 ‘침샘암’이지만 감사할 일은 많았다. 통증이 없다. 입안을 통해 수술하니 흔적이 없다. 먹는 것도 잘 먹고 잠도 잘 잔다. 유급 병가를 사용할 수 있으니 감사하다. 나를 위해 기도해 주는 분이 많다. 암 환자는 비용의 5%만 지불하면 된다. 내 짝꿍 H가 동행해 주니 마음 편하다.      

내 인생의 암이라는 놈이 훅 들어왔다. 처음부터 ‘어서 오십시오’ 할 수는 없었다.

나에게는 물어볼 수 있는 하나님과 성경이 있다. 단국대학병원에서 50% 암일 수도 있다는 교수의 말을 듣고 난 후부터 ‘내가 만약 암이라면’이라는 가정하에 하나님께 기도했다.

기도 중에 생각나게 하신 말씀이다.

성경 욥기에서 욥이라는 사람이 등장한다. 하루는 하나님이 사탄에게 말한다.

“네가 욥을 보았느냐 그와 같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는 세상에 없다.”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겠습니까? 주께서 그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울타리로 두르심 때문이 아닙니까? 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모든 소유물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틀림없이 주를 향하여 욕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사탄에게 욥의 소유물을 전부 맡긴다. 욥은 많은 재산을 다 잃고 종과 자식도 죽고 자기 몸에 악창이 돋아 잠을 잘 수도 없는 고통이 임했다.

욥이 질그릇 조각을 가져다가 몸을 긁고 있으니, 아내가 말했다.

“그래도 당신의 온전함을 굳게 지키느냐, 하나님을 욕하고 차라리 죽으라.”

“그대의 말이 한 어리석은 여자의 말 같도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화도 받지 아니하겠느냐?”     

기도하면서 아내에게 고백한 욥의 말이 따뜻하게 내게로 왔다. 나는 목사님처럼 인생을 통째로 하나님께 드리는 자가 아니다. 욥처럼 온전하거나 정직하며 악에서 떠난 자도 아니다.

그럼에도 내가 지금 하나님께 받은 은혜는 말로 다할 수 없다. 알몸으로 태어나 나에게 지금 주어진 가족들과 믿음의 동역자들, 직장에서 일할 수 있는 은혜를 어찌 다 표현할 수 있겠는가! 어린 시절 꿈꿔 왔던 작가라는 꿈을 조금이나마 맛보도록 1인 1책 쓰기로 이렇게 글을 쓰는 기쁨까지 주셨으니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가! 

욥이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화도 받지 않겠느냐는 고백이 나의 마음에 앉았다. 평안했다. 나에게 왜 이런 일이 있을까 원망하는 마음이 전혀 들지 않았다. 하나님과 나 사이에 갑자기 찾아온 녀석에 대한 받아들임은 이것으로 충분했다.     


수술을 앞두고 있다. 

목사님은 내가 예배 자리에 있을 때마다 머리에 손을 얹고 마음 담아 기도를 해주신다. 암이라는 놈을 먼저 겪은 집사님은 현실적인 조언을 해줬다. 기도의 자리에서 같은 마음으로 기도해 주시는 분의 따뜻함이 느껴진다. 눈물을 삼키며 내 손을 붙잡고 기도하겠다는 다짐을 전해 준다. 병가를 제출하고 사무실에서 나오던 날 <메리골드 마음 세탁소> 책을 건넨 이쁜 주사님. 수술 하기 전 체력 보충하라고 낙지 닭찜을 사준 동생도 고맙다. 과일로, 마음 담긴 봉투로 나를 위로해 주는 사람들을 통해 사랑을 듬뿍 받는다. 나와 함께 이 시간을 공유하며 같은 마음이 된 사람도 명백해진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18절-     


추석을 맞아 기숙사 생활하는 딸이 집에 왔다. 반수 하는 아들도 둥지로 왔다. 가족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구름이까지 우리는 완전체다. 딸은 새로운 룸메이트 이야기를 한참 쏟아냈다. 대학 입학원서 제출을 한 아들도 할 말이 많다. 식탁에 멜론을 먹으며 수다 삼매경에 빠졌다.

“엄마 수술을 앞두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을 텐데 마음들이 어떨까 궁금하네”

“저는 제가 유리멘탈이라고 생각했어요. 근데 엄마 수술을 앞둔 자체에 빠져 우울해 있지 않더라고요. 오히려 작은 것에 감사하게 됐어요. 평소에는 그냥 당연히 받아들였던 일이 감사로 표현되더라고요”

“저는 수시로 하나님을 찾는 시간이 많아졌어요. 흥얼흥얼 찬양도 더 부르게 됐고요”

“나는 기도 시간에 아버지라고 형식적으로 부른 적도 있었는데 요즘은 아버지라는 단어 하나에도 마음을 가득 담게 되더라. 역시 사람은 힘들어야 더 하나님을 찾나 봐”     


같은 셀 식구들과 삶을 나누는 자리에서 나는 말했다.

“저와 하나님 관계에서는 충분히 받아들였고 감사까지 이르렀는데 제가 전도한 사람, 전도하려는 사람, 믿지 않는 직장 동료들이 저를 바라볼 때 어떨까요? 아직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한 엄마와 언니들에게 다 설명할 수도 없고요. 하나님 잘 믿는데 왜 병이 왔을까 하면서 하나님을 원망하게 될까 봐 사람들이.”

나는 기어이 눈물을 보였다.

“집사님, 그 사람들 마음까지 생각 안 하셔도 됩니다. 시간이 지나면 알 수 있을 거예요. 합력해서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요”

평소 말이 없던 남자 집사님이 나에게 말했다. 볼을 타고 내려오는 눈물과 함께 무거운 짐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친구 집사님은 꽃을 좋아하는 나에게 꽃다발을 건넸다. 꽃 보며 힐링하라면서.     

글 쓰는 사람으로 첫발을 내딛고 있는 지금 예상치 못한 놈을 상대하면서 느끼는 것이 많다.

주말에는 목사님과 사모님께서 직접 염소탕을 사다 주셨다. 걱정을 끼친 죄송한 마음과 함께 감사로 충만하다. 수술 후 나의 치료 과정이 어떻게 될지 아직 모른다. 통증이 어느 정도 일지도 알 수 없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로 할 수 없는 평안함과 사람들을 통해 받은 사랑으로 이 또한 지나가리라. 나로 인해 더욱 단단해진 딸의 믿음을 보며 새 힘이 난다. 하나님과 더욱 가까워진 내 짝꿍 H와 아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든든하다. 훅 왔으니 훅 지나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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