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시 예배를 드리고 목사님의 따뜻한 기도를 받은 후 우린 완전체로 병원을 향했다. 내가 전신마취를 하고 수술을 한다는 것이 실감이 나지 않았다. 입원을 하기 전까지는. 9월 22일 입원을 하고 저녁식사 후 금식에 들어갔다. 9월 23일 15시 30분으로 수술시간이 잡혔다. 나를 위해 중보기도 해주시는 분들에게 알렸다. 수술시간이 다가오자 시간이 더디게 갔다. 나보다 앞서 수술하는 분들이 늦게 끝나는 바람에 17시가 다 되어 수술실로 이동했다. 15분쯤 이동했던 휠체어에 앉아 간호사의 안내를 들었다. 대기하는 시간에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를 계속 암송하며 주님의 손을 붙잡았다. 마취제가 들어가는 것을 느끼며 나는 잠이 들었다.
입원실에 도착하니 19시 30분이었다. 입안 혀밑샘에 있는 악성신생물을 떼어 내고 내 짝꿍 H와 병실에 있다. 8월 초에 발견하여 9월에 수술까지 했다. 하나님께서는 지체 없이 이루어가셨다. 수술은 잘됐다고 했다. 수술 당일까지는 금식이었다. 음식 섭취가 없으니 기력이 없고, 입안을 수술해서 말하기가 힘들었다. 3초 맨인 내 짝꿍 H는 하루종일 긴장한 탓인지 보호자 침대에서 일찍 잠이 들었다. 나는 정맥주사로 진통제를 맞고 눈을 감고 몸과 마음을 추스르고 있었다. 밤 23시가 안 되었을 때다. 옆 침대 보호자분이 문을 꽝 닫으며 말했다.
"무슨 코를 저렇게 골아!"
나는 왜 그 말이 들였을까? 나도 잠이 들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카운터에 가서 말을 해야 하나?"
"귀마개 달라고 할까?"
옆 침실 부부의 대화가 잠자고 있던 내 안의 괴물을 깨웠다. 이틀 동안 옆 침실 부부는 코를 골뿐 아니라 5초 이상의 가스방출도 서슴지 않았다. 실수로 한 번쯤 나오는 게 아니었다. 작정하고 배출했다. 병실에 보호자는 1인만 가능함에도 3명, 4명이 침대 곁에 앉아 수다를 떨며 간식을 먹었다. 그럼에도 암병동이니까, 나처럼 아프신 분이니까 우리 부부는 아무 말하지 않았다. 수술 전 금식과 수술 후 몇 시간 되지 않은 시기라 나의 컨디션은 최악상태였다.
"거기도 코 골고, 방귀도 뀌셨잖아요!"
내 짝꿍 H의 코골이로 옆 보호자가 간호사에게 병실을 옯겨야겠다는대화로 듣고 나는 정확하지도 않은 발음으로 기어이 내뱉었다. 세상모르고 여전히 자고 있던 내 짝꿍 H를 깨웠다. 나는 링거를 끌고 간호사실에 섰다. 지금은 비어 있는 2인실이 없다고 했다. 우리는 우선 6인실로 밤중 이사를 했다. 나는 아직도 잠이 덜 깬 채로 짐을 나르는 내 짝꿍 H에게 짜증이 났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더니 당신들은 기본적인 예의도 지키지 않으면서 당당히 권리만 주장하는 옆 보호자에게도 화가 났다. 마침내는 내 인격도 이 정도구나 하는 자책감으로 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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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인실에는 우리 외에 환자와 보호자 두 사람만 있었다. 그분도 수술을 하셨는지 심장박동기 소리가 들렸다. 그 난리를 치고 병실에 누웠다. 잠이 올리가 없다. 내 짝꿍 H는 다시 코를 곤다. 옆 환자의 기계에서 계속 신호음이 들렸다. 넓은 병실에 나를 제외한 3명은 모두 3초 맨이었다. 새벽 4시 30분쯤 기계음을 듣고 있는데 드디어 옆 보호자가 일어났다.
"아 시끄러워서 잠을 못 자겠네"
몇 시간 숙면을 취하며 자더니 이제야 못 잤다는 듯이 간호사를 호출하러 방을 나갔다. 간호사가 옆 환자의 기계에 손을 대고 나서야 기계음도, 나도 겨우 잠이 들었다.
한두 시간 잠을 자고 나서 침대 옆에 놓여 있는 성경책을 바라봤다. 성경책을 내 손으로 가져오기가 부끄러웠다. 나에게 한없이 베풀어주신 주님은혜에 대한 감사는 온 데 간 데 없었던 내가 보였다. 듣기 싫은 소리 한마디에 무너져버린 나의 감사가 한없이 야속했다. 믿지 않는 환자였으면 복음을 전해야지 마음먹었던 내가 얼마나 오만했는지 입을 다물게 한다. 두세 시간쯤 흘러 성경을 펼쳤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럼에도 내가 성경을 볼 수 있다는 것이 황송했다.
'주님 죄송해요. 그래도 저를 이렇게 사랑해 주시니 감사해요. 주님. '
"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 - 로마서 8장 중에서 -
옥중에서도 사도바울은 성경을 13권 기록했다. 복음을 전하는 일에 목숨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주 앞에서 죄인 중에 괴수라고 고백했다. 믿음이 작은 나는 무슨 할 말이 있으랴! 주님을 의지하지 않으면 내 안에 악함이 금세 드러남을 본다. 놀라운 것은 그토록 연약한 존재임을 아시면서도 나를 기다리시며 여전히 나의 삶 구석구석에서 나를 사랑하고 계심을 느끼게 해 주신다는 것이다.
입원 전에 내 짝꿍 H가 4박 5일 함께 할 수 있음에 감사했다. 매사에 이타적인 내 짝꿍 H를 나는 진심으로 사랑한다. 그러나 가끔 옆사람의 배려 보다 나의 마음을 먼저 살펴 주기를 바라며 투정하는 나를 본다. 다른 가족의 자녀 마음보다 내 새끼 마음을 먼저 알아줬으면 할 때가 있다. 내가 말하지 않으면 알 수 없을 텐데 알아서 좀 챙겨주길 욕심부릴 때가 있다.
나는 오늘도 말씀 앞에 선다. 예수님은 십자가 지심을 앞두고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자신의 죄 없음을 변명할 수 있음에도 입을 다무셨다. 온몸에서 피를 쏟아 내고 있는 중에도 강도의 영혼을 천국으로 이끌었다. 나는 예수님이 아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자다. 예수님의 온유한 성품을 닮아 가고 싶은 자다. 온유하다는 말에는 길들여지다는 뜻이 있다고 한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에 잘 길들여져 가는 사람이고 싶다. 갈길이 멀다. 완성될 수 없음을 안다. 그저 끝까지 따라가고 싶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