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에 대한 추억
언젠가 목포시 달리도에 사는 장인어른이 이웃 마을에서 새끼 고양이 2마리를 분양받았다. 집에 묶여있는 고양이 새끼를 어미 고양이가 가끔씩 와서 애처롭게 쳐다보곤 했다. 그러던 중 1마리는 밥을 먹지 않아 죽었고, 1마리만 남게 되었는데 그 이후로 어미 고양이는 찾아오지 않았다.
장모님이 고양이를 매우 싫어했기 때문에 집안에는 못 들어오고, 마당 한구석에 고양이 집을 마련해 놓고 장인어른이 밥을 챙겨주었다.
목포에서 신진페리 철부선을 타고 처가인 달리도에 갔을 때 그 고양이를 처음 만났다. 아내가 그 고양이를 나비라고 이름지었다.
밭까지 올라가서 큰소리로 "나비야","나비야" 부르면 어디서 나타났는지 금방 나타나곤 했다. 나도 내가 나비에게 빠지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매일 털이 떨어지고 똥 치우고 하면 귀찮을 따름이었다.
그런데 내가 다시 목포로 왔을 때 나비가 잘 살고 있는지, 사료는 잘 먹었는지, 늘 머릿속에 맴돌았다. 신기하고 이상했다. 처갓집에 가 있던 며칠사이에 정이 들었던 것 같았다. 나는 나도 모르게 나비의 집사가 되고 말았다.
농번기에 마늘, 고추, 양파를 심을 때, 나비는 늘 멀리서 우리를 지켜보고 관찰하곤 했다. 그 때 마주치면 냉장고에서 특식인 조기 한 두마리를 꺼내 전자레인지로 녹여서 밥 그릇에 담아 주었다.
꽁치, 닭고기등 다양한 고양이 캔 음식이 있어 그걸 주면 나비가 멀리서 냄새를 맡고 와서 잘 먹었다. 그전엔 내 다리사이에 들어와 몸을 비비고, 그러면 나도 고양이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그랬다. 밭을 매고 있으면 어느새 내 앞이나 뒤에서 앉아서 지켜보곤 했다.
문단속을 하고 목포로 가는 배를 타려고 집을 나설 때, 아내는 보이지도 않는 곳을 향해 “나비야 간다. 다음주에 보자” 하고 인사를 했다. 그런데 언제 거기에 있었는지 모르지만 나비는 가는 도중에 콩밭에서 앉아서 “잘 갔다와”라는 표정으로 배웅하고 있었다. 일주일이 있어야 다시 만날 수 있다니 눈물이 나려고 했다. 하지만 어쩔수 없이 헤어져야 했다.
그래서 정이 들었는지도 모르지만, 빈집에 와서 나비야 부르면 어느새 오곤 했는데, 논과 밭, 들판을 돌아다니며 남의 집을 들러서 밥을 먹었는지, 털에 흙과 먼지가 붙어있고 도둑 씨앗들이 온몸에 붙어있었다.
하지만 장인어른이 돌아가신 뒤 아내가 "목포로 데려와야겠다"고 다짐했는데, 장인어른 장례를 치르고 4주 정도 후에 방문했을 때, 내 주변으로 오지도 않고 멀리하게 되었다. 그동안 오지도 않고 먹이도 안주었기 때문에 서먹서먹하고 낯설어 하는 것 같았다.
이제 이별을 고하듯 곁을 내어주지 않았다.(같이 살지 않으니 집사로서 부적합한 것 같아!) 전엔 전용 사료와 생선 캔을 사다 주었는데, 사람이 멀리 떨어져 있으면 와서 맛있게 먹곤 했다. 가끔 경쟁 고양이가 오면 먹이를 양보하곤 했다! 그러면 쫓아내고 나비에게 주곤 했다. 자동차 타이어 옆에서 휴식을 취하고 숨곤 했다.
가끔 문 입구에 죽은 쥐나, 지네 등이 있었던 적도 있었다. 나비가 집사에 대한 보답으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달리도 집엔 쥐가 없었다.
우리가 집에 갔을 때, 문을 잠깐 열어놓으면 나비가 몰래 마루에 들어와 밥도 먹고, 인기척이 느껴지면 달아나곤 했다. 그때만 해도 나비가 자기 집인 줄 알고, 자기 영역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그리고 하우스에 목포에서 사온 나비집을 설치하고 1주간의 사료와 물통을 준비해 두면 나비뿐만 아니라 들짐승과 동네 고양이나 개들이 다 먹어 치웠다. 물론 나비도 먹었겠지, 워낙 양보가 강한 녀석이라.
아내도 장례후 바로 집에 데려왔어야 했다고 후회하고 있다. 나도 또한 키우고 싶었지만, 방이나 이불에 털을 붙이고, 종일 집에 갇혀있으면 지금보다 외출을 못 해 스트레스를 받아 힘들어질 것을 알았다. 또한 잘못 데려왔다 하면 오히려 나비의 행복한 삶을 뺏는 두려움이 들었다. 5년 이상 덩치 큰 성묘여서 먹이경쟁과 영역싸움에서도 지지 않을 테지만, 수명이 15~20년이라 지금은 들판에서 노년기를 보내고 있을 것 같아 슬프다.
우리와 비슷한 삶인 것 같다. 사람도 집에 살다가 아프면 병원, 요양원으로 가서 돌아오지 못하고 사라져 간다. 나비도 그렇게 사라져 갈 것이다.
전에 집에서 동물을 키우는 것은 주로 식용이었다. 그나마 개는 도둑을 몰아내는 착한 역할을 하다 역할이 끝나면 주인에게 바쳐진다. 토끼나 병아리도 가둬도 기르고 성장하면 새끼를 치고 계란과 병아리를 생산한다. 고양이는 식량을 축내고 질병을 옮기는 쥐의 천적으로 인간옆에 생활하며 이쁨을 받는다.
요즘은 가족이나 동반자로 여기며 더욱 인간과 같이 생활하며 쥐를 사냥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상전이 따로 없다. 특히, 생선을 좋아하고, 아프면 병원에 가고, 살찌면 다이어트를 위한 식이요법과 운동요법을 받고, 배고프면 주인이 맛있는 간식 및 음식을 만들어준다. 심심하면 함께 놀아주고 여행도 같이 가는 경우가 있다. 인간은 아니지만 귀여운 짓이나 놀라운 동물적 감각을 지니고 있는 고양이는 영특한 동물임에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