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파스타 먹은 사람들
인간은 자신이 먹는 음식에 관심이 많다.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기도 하고, 어떻게 먹을까 생각하기도 한다. 음식을 회화로도 곧잘 표현한다. 그림에 등장하는 음식을 찾아보는 것은 좋은 공부가 된다.
그림 속 먹거리를 추적하는 일은 흥미롭다. 김홍도의 풍속화 설후야연에서 우리는 석쇠 불고기의 자취를 확인한다. 박수근의 굴비는 더욱 귀하게 보인다.
서양 미술에서도 음식과 회화의 관계를 흔하게 찾아볼 수 있다. 르네상스나 후기 르네상스 시대 작품 속에도 역시 여러 음식들이 등장한다. 그중에서 파스타의 모습을 찾아보자.
파스타는 과거 마케로니로 불렸다. 한 때, 손으로 집어먹는 오래된 사진이나 엽서 등이 나폴리를 대표하는 이미지였던 시절이 있었다. 손으로 길게 뽑은 국수 가닥을 일컫는 마케로니는 세월이 흐르고, 시대가 바뀌면서 사라지고, 대신 파스타라는 말이 널리 사용되고 있다. 사실 파스타는 반죽을 뜻하는 말이었지만 이제 이탈리아 국수의 총칭이 되었다. 파스타의 속을 들여다보려면 나폴리로 가야 한다.
남부 이탈리아의 중심이며 양시칠리아 왕국 시절 수도였던 나폴리에는 많은 예술가들이 활동했다. 네덜란드 화가 마티아스 스토머는 1633년부터 6년간 나폴리에 거주하며 파스타 관련 작품을 남겼다. 나폴리 카포디몬테 박물관에는 ‘파스타 먹는 사람’(오른쪽 아래)으로 풀이되는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작품 속 남자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맨손으로 파스타를 집었다.
나폴리 화가 루카 조르다노도 1660년에 ‘파스타 먹는 사람’을 그렸다. 지금까지 알려진 두 작품은 각각 프린스턴 대학(왼쪽 아래)과 비엔나의 한 박물관(왼쪽 위)에 소장되어 있다. 이상 세작품을 관찰해 보면, 파스타 소스의 색깔이 하얗다. 모두 맨손으로 집어 먹는다.
나머지 한 작품은 20세기 시칠리아 작가 레나토 구토소가 그렸다. 이 작품을 통해 우리는 뭔가를 배운다. 세 작품 이후 삼 백 년이 지난 이 그림에서는 파스타가 좀 다르게 보인다. 토마토소스로 인해 붉게 물든 것이다. 그리고 남자는 포크를 사용한다.
후기 르네상스 그림에서 보듯이 파스타는 흰색이다. 소스는 소금이나 치즈 정도였을 테니, 파스타 원래 색깔이 그대로 드러난 셈이다. 나폴리 왕국의 특혜를 받아 궁정으로 파스타를 납품했던 도시 그라냐노는 파스타의 생산을 담당했다. 그라냐노의 장인 파스타를 하얀 예술(arte bianca)이라고 부른다. 이런 호칭을 통해 그 시절 파스타의 존재감과 그 가치를 가늠해 볼 수 있다.
우리 주변에도 그림에서 본 것처럼, 또 ‘하얀 예술’이라는 용어에서처럼, 백색에 가까운 파스타가 유통되고 있으니, 골라 먹어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