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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루비 Aug 03. 2024

당신의...

행복의 장소는 어디입니까?

한 여름 장마에 날씨가 너무 오락가락하여 며칠을 달리지 못했어요. 일각일각 예보를 살피다 마침내 비가 잦아든다는 예보를 확인하고 서둘러 집을 나섰습니다. 향한 곳은 강변 뚝길입니다. 내가 항상 달리는 곳이고 큰 비에도 주변 나무와 화초들은 상한 곳이 없어 보입니다. 대단한 녀석들.

곳곳에 작은 물 웅덩이들을 피하며 달리다 다가올 장마를 걱정했습니다. 난데없이 수재민 걱정을 하는 게 아니라 장마에는 달리기를 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달리기는 제게는 거의 유일한 취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는 나이에 걸맞지 않게 일찌감치 쫄딱 망해서 쓸데없는 인간관계를 컴퓨터를 포맷하듯 싹 다 정리한 적이 있거든요. 친구도 없고  아는 사람 한 명도 없이 누구도 신경 쓰지 않고 나와 내 가족만 바라보며 살아왔어요. 그때는 정신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너무도 힘든 상황이었고 앞뒤가 꽉 막힌 듯했었거든요. 그때부터 나는 달리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미래가 불투명하고 확실한 게 아무것도 없을 때 나는 내 육체에게 더욱 확실하게 기능할 것을 요구하기로 했습니다. 적어도 아프거나 병을 얻지는 말라고. 

나에게는 간암 선고를 받고도 돌아가시기 전까지 술과 담배를 끊지 못했던 아버지의 기억이 있습니다. 가족 모두가 생의 실끈을 잡기 위해 바둥거릴 때 정작 아버지는 뿌리치고 포기했었습니다.

가족을 위해 살아오셨던 아버지의 인생을 원망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남은 가족들에 대한 사랑이 소진되고 쪼그라들어 마지막이 더 힘들게 느껴지진 않았을지 남은 가족을 대표해서 좀 더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이죠.


‘왜 어떤 사람은 살고 싶지 않을까?

개가 있고 나비가 있고 하늘이 있는데.

어떻게 아빠는 살고 싶은 마음이 안 들까? 내가 세상에 있는데.

왜 그런지는 아무도 몰랐다. 그냥 그랬을 뿐.

-<여름의 잠수> 사라 스트리츠베리 글, 사라 룬드베리 그림-


누군가는 부모가 되어보면 부모의 마음을 안다고 했습니다만 나는 아직 아버지를 이해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내가 그나마 깨달은 건, 모른다라는 걸 안다는 것. 나는 영원히 아버지를 알 수 없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된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달리기는 흐트러질 수 있는 내 삶을 다시 한번 다잡아주는 좋은 선생님이에요. 숨을 헐떡이고 중간에 포기하고 걷고 싶어질 때마다 나는 내가 얼마나 행복하기를 갈망하는 지를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무척 얄궂은 이야기인데, 불운이라는 부조리를 받아들여 자신의 인생을 고정한 순간 불행이라는 이야기가 시작되는 것 같습니다.'

-<우연의 질병, 필연의 죽음> 미야노 마키코, 아소노 아호-


불운과 불행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불운은 불가항력적으로 일어납니다. 먼 훗날이 아니라 지금, 내가 사업을 쫄딱 말아먹은 일이나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내 아버지가 그때 간암 선고를 받게 된 것은 불운이에요. 하지만 그 이유를 운명이나 팔자 같은 자기 바깥의 이야기에서 찾으면 불행이 됩니다. 그래서 불운은 점, 불행은 선이라고 말해요. 

불운은 우연히 찾아오는 것이라 인생의 어느 지점에 위치시키느냐에 따라 불행으로도, 재밌는 에피소드로도, 대수롭지 않은 일로도 여길 수 있다는 것이지요. 때문에 자신이 누구인지 아는 사람은 언제라도 자신의 삶을 새롭게 시작할 수 있습니다. 나는 매일을 다시 행복하기 위하여 뜀박질을 반복합니다.



나는 아침 눈을 뜨자마자 아내를 느낍니다. 발바닥으로 내 다리를 한번 쓸었다가 발가락을 툭툭 건드렸다가 두 발을 꼼지락거리며 종아리를 쓸어내리며 또 한 번 쓸어내리고 잠처럼 꿈결처럼 나도 아내를 찾아 느리게 발을 뻗어 아내의 발을 찾을 때, 아내의 발에 나의 발을 포갤 때 나는 여전히 눈을 감고 있지만 아내는 소리 없이 웃고 있습니다. 밖에서는 tv소리와  강아지 밥과 물을 챙겨주는 둘째의 부산한 소리가 들립니다. 강아지의 작은 총총 발자국 소리도 들립니다. 나는 눈을 감은 채로 모든 것에 신경을 집중합니다. 모든 냄새와 감촉과 소리에서 아침을 느끼고자 합니다. 그 따뜻하고 아늑한 감촉과 조용하고 둥근 소리들을.

‘여기가 나의 행복이야’ 내가 나에게 일러주듯 느껴지는 빛과 소리와 향기를 최대한 천천히 재생합니다. 소박한 아침. 내 몸만 한 기쁨이 내 안에서 출렁입니다. 

‘여기가, 나의 행복이야.’

나의 행복의 장소에는 아내가 있습니다. 아버지의 행복의 장소에는 누가 있었을까요? 


아 참, 당신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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