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마트에서 수박을 고르는 아내와 마주칠 때, 그때아내의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다면 그때는필시 진열된 것들 중 제일 예쁜 걸 고르고 있는 걸 거다. 누군가에게는 신선도나 당도를 체크하는 똑순이 주부처럼 보이겠지만, 사실은 엄청 신중하게 또 진지한 얼굴로 개중 제일 예쁜 수박을 고르고 있는 중인 거다.
"예쁘지?"
"진짜 예쁘다. 맛있겠다"
재래시장 한켠을 지나다가도, 노점에 진열된 장난감 반지를 보고도 그 숱한 물건들 중에 제일 예쁜 걸 기어코 찾아내서는 "예쁘지?"라고 소녀처럼 감탄한다.
아내에게는 내게는 없는 심미안 같은 게 있어서 주변에 있는 아름답고 예쁜 것들을 잘 찾아낸다.
꽃을 좋아하고 그림을 좋아한다. 내 팔자에는 없었던 것이 분명한 미술관이나 사진 전시회를 아내를 따라 쭐레쭐레 따라간 뒤로는 나 역시 예쁜 사진이나 멋진 그림들이 좋아졌다. 예쁜 게 예쁘단 걸 알려줘서 예쁜 줄 알게 된 거다.
그런 아내 덕분에 나도 이제는 예쁜 게 예쁜 줄 안다.
휴일날 초등학생 아들이 좋아하는 뭔가를 해주고 싶어서 물었더니 키우는 강아지를 데리고 해수욕장에 가고 싶다 했다. 키우는 개에게 좋은 추억을 만들어주고 싶다며.
급하게 주섬주섬 챙겨서 작은 임랑 해수욕장에 갔는데,
사람이 너무 많고 날씨는 덥고 습하고 개는 모래를 싫어하고 길은 좁고 복잡한데다 개 목줄이 풀려 식겁하고,
아들은 울고 개는 연신 겁먹고 뛰어다니고, 그걸 잡으러 뛰어다니고...
좋은 추억이 될 수 없음이 분명했다
어스름한 저녁에 이쁘고 아름답게 온 가족이 손잡고 웃으면서 해변을 거니는 게 그렇게 힘든 일인지...
아내는 아들 눈치 보고, 내 눈치도 보고
왜 아름다운 그림은 안 나올까. 내가 잘못된 건가 싶었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실랑이하다가 작은 식당에 들어가 조개구이를 시키고 아내와 함께 겨우 맥주를 한 잔 들이켰다. 비로소 숨이 트이고 정신이 돌아왔다.
"여보, 나는 너무 행복해"
아내가 내 손을 잡으면서 말했고 나는 미안하다고 했다.
주변에 교제하는 모든 이들은 아내더러 복이 많은 사람이라 했다. 그래서 나와 결혼할 때 주변 사람들은 내가 그 복을 다 가로채간다고 안타까워했다. 나는 속상해서 물은 적이 있다.
"당신은 나랑 왜 결혼했어?"
"호호호, 알잖아 내 주변에서는 당신이 제일 예뻤어"
나는 아내에게 더 많은 예쁜 걸 안겨주고 싶다. 예전에는 정말 근사하고 흔치 않은, 특별한 무언가를 해주고 싶었었다. 욕심이 앞서니 그에 따르지 않는 환경과 사정들이 원망스러웠다. 아내는 날 보며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덥고 꿉꿉한 여름 저녁에 개 잡으러 진땀을 빼고도 조개구이와 맥주 한잔에 행복하다 말하는 아내에게, 나는 조금 용기가 생겼나 보다.
비싼 것이든 싼 것이든, 귀한 것이든 흔한 것이든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아내에겐 진짜 예쁜 걸 알아보는 눈이 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