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는 걸 좋아한다. 누군가처럼 숨이 차오를 만큼 달리며 기록 경신이나 대회준비를 위해 달리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달리면서 홀로 사색을 하거나 고독감 따위를 즐길 정도로 달리기를 업수이 여기지도 않는다. 내게도 당연히 잘 달리고 싶은 욕심 같은 것이 있어서 한 발 한 발걸음을 디딜 때마다 무릎과 시선의 각도나 팔치기의 리듬, 보폭과 다리의 각도 따위의 달리기의 기본들을 지키려 집중한다. 물론 빠르게 달려본 적도 있다. 온몸에서 땀이 쏟아지고 무릎과 종아리가 아프고 발목이나 관절에 무리가 가는 것이 달리는 도중에도 느껴진다.
힘껏 달릴 때면 세상 고민으로부터 잠시나마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게 매력적이긴 하다.
그렇게 달리다 보면 삶 속에 어느 한 부분을 떠올리거나 누군가를 생각한다거나 하는 게 너무도 귀찮고 하찮게 느껴지기도 한다. 나의 모든 감각과 신경을 내 육신이 다 빨아들이는 기분이랄까?
하지만 내게는 육신의 고통으로 괴로우나 세상 번뇌로 괴로우나 괴롭기는 매 한 가지이므로, 나는 더욱 느리게 달리면서 모든 것으로부터 집중하려 한다.
나는 달리다 집중력이 흐트러질 때쯤 갑자기 느껴지는 의외의 요소들에 감동을 받는 편이다. 같은 길을 달리고 있지만 다른 곳에 집중하느라 느끼지 못했던 바람, 공기, 냄새 같은 것들이 갑자기 한순간 느껴질 때, 그것들이 주는 신선함과 낯섦이란 분명 느리게 달리는 즐거움 중 하나다. 맞은편에서 불어오는 바람냄새와 따가운 햇볕, 차가운 공기나 간혹 흩날리는 빗물 같은 걸 낯설게 느끼는 것을 좋아한다.
일상에서 잊고 있다가 불현듯, 의식하지 못한 갑작스러운 순간에 나를 두근거리게 만든다.
나는 아내에게 절대 좋은 남편은 아닌 것 같다. 남들처럼 치열하게 살지도 않으며 앞만 보는 경주마가 되길 완강히 거부해 왔기 때문이다. 변명하자면 경제적인 만족감보다는 정서적인 만족을 더 소중하게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아내에게 강원도 작은 해변가에 작은 집을 짓고 살고 싶다고 얘기한 적이 있다. 아내도 좋다고 했다. 아내가 먼저 얘기한 적도 있다. 나도 좋다고 했다.
"형부는 언니가 아직도 좋아요?"
"어 나는 오늘 아침에 언니 자고 있는 거 보고 가슴이 콩닥거렸어. 가끔 그래"
멀리서 걸어오는 모습이나 차에서 내려 내가 내리기를 기다릴 때나 앞서 걷다가 나를 뒤돌아볼 때 불현듯 가슴이 두근거릴 때가 있다. 매일을 함께 있지만 처음 만난 것처럼 설레게 하는 찰나가 있다. 뜨거운 사랑은 아닌 것 같고 풋풋한 사랑은 더욱 아닌 것 같지만 분명 아내는 내게 그런 존재다.
불가능한 일이다. 17년 간 함께 살면서 아직도 이런 설렘을 가진다는 건.
누군가는 못 들은 체할 것이고 누군가는 비난할지도 모른다. 또 누군가는 거짓말이라 할 수도 있겠다.
처제는 기적이라고 했다.
너무 빨리 달리면 놓치게 될 아깝고 소중한 순간들이 있다. 사진으로나 보며 추억할 수밖에 없는 지금은 훌쩍 커버린 아이의 어릴 적 모습이나, 풋풋하던 아내의 젊을 적 모습 같은 것들, 훗날 또 추억하게 될 소중한 지금의 모습들. 느리게 달려야만 느껴지는 작은 기적들...
나는 감사하게도 가끔 기적을 경험하며, 지금도 천천히 느리게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