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낳기 전까지... 나의 저녁 시간은 항상 야구 중계와 함께였다. 퇴근을 하고 중계 시간이 되면 일단 TV를 켜둔다. 눈으로 귀로 야구를 보는 것이 30여 년의 내 일상이었다.
어릴 적 살던 동네는 무등경기장(지금은 기아챔피언스필드)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다. 다니던 초등학교도 타이거즈의 쟁쟁한 선수들을 배출한 야구 명문교... 방과 후가 되면 야구부가 넓게 운동장을 차지하고 연습하는 것을 피해 우리는 운동장 주변에서 놀곤 했었다.
6학년 땐 송정리 어느 초등학교에서 스카우트해 온 전학생이 내 짝꿍이 되었다. 우리 학교를 우승으로 이끌어줄 투수라고 했다. 정말 말이 없었고 쉬는 시간엔 엎드려 있기만 하니 짝이라도 목소리 듣기도 힘든 친구였는데, 잊히지 않는 건 그 아이 성이 선 씨였던 거다. 투수에 선 씨라.. 나중에 선동렬처럼 될 거라 생각하니 잘해주고 싶단 맘에, 쉬는 시간에 애들이 와도 조용하라고 쫓아 보냈던 기억이 난다.
우리 동네는 저녁을 먹고 나면 구멍가게 앞 평상에서 아빠를 비롯한 동네 아저씨들이 모여 야구를 봤다. 막걸리에 소박한 안주를 곁들여 야구를 보는 날엔 우리들도 평상 주변에서 고무줄도 하고 줄넘기도 하며 덩달아 신났다. 아빠들의 야식도 얻어먹고 이렇게 밤에 밖에서 모여 놀 수 있다니 이보다 좋을 수가 없었다.
가끔은 7회 초가 끝나면 아빠가 “가자” 하시면 나는 아빠 오토바이에 때론 짐자전거 뒷자리에 얼른 올라탔다. 아빠 허리를 꽉 붙들고 시원한 밤바람을 맞으며 우리가 가는 곳은 바로 무등경기장... 그땐 7회 초가 끝나면 표 없이 공짜로 경기장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렇게 아빠 따라 비상구 계단을 올라, 써치라이트가 켜진 탁 트인 그라운드를 마주하는 순간은, 언제나 설레고 신났다. 사람들의 함성과 응원가, 둥둥 북소리는 그 속에 있는 것만으로도 가슴 벅찼다. 한 번은 얼마나 운이 좋았는지... 8회 초부터 경기장에 들어갔는데 9회 말에 동점이 되더니 연장에 연장, 연장이 이어지고 마지막엔 역전승으로마무리되는 그야말로 드라마틱한 경기를 본 적도 있었다. 사람들이 신나서 경기가 끝나도 집에 갈 생각도 없이 계속해서 응원가를 부르며 으싸으싸 하는데... 경기장에서 파도타기를 몇 번을 했는지, 집에 와서도 흥분이 가라앉지 않았던 날도 있었다. 야구는 그렇게 나의 일상이었다.
서른이 넘도록 광주를 벗어나 본 적 없이 살다, 인천에서 직장생활을 할 때였다. 4명이 같이 근무하는 사무실이었는데, 우리가 응원하는 야구팀이 4개였다. 오 마이갓갓!! 응원하는 야구팀이 모두 제각각이라니.. 그야말로 문화적 충격이었다. 타이거즈가 내 팀이 아닌 사람을 만난 건 그때가 처음이었던 것 같다. 내가 고향이 아닌 타지에 살고 있단 사실이 실감 나는 순간이었다. 문학구장이 막 개장을 해 인천에도 야구 바람이 불던 때라, 기아, 두산, 롯데가 와 SK랑 경기하는 날엔 퇴근 후 직원들과 종종 야구장을 찾았다. 기아 경기가 아니어도 맥주가 있으니깐, 그걸로도 충분하다. 술집보단 탁 트인 야구장에서 사람들의 함성과 열기 속에서 마시는 맥주를,야구만큼이나 좋아했으니깐.
육아로 바쁘고 코로나19를 지나며 야구에 관심이 멀어져 있었는데, 요즘 다시 기아가 상승세를 타니 주변에서 자연스레 야구 이야기들을 한다. 그사이 내가 좋아했던 선수들은 감독이나 코치, 해설위원이 되었다. 세월이 이렇게 흘렀구나...
친정 가는 길에 만나게 되는 야구경기장... 가끔 써치라이트가 훤하게 켜진 날 그곳을 지날 때면, 늘 유년시절의 즐거운 기억이 떠오르곤 한다. 친정집 문을 열고 들어서면 아빠방에선 어김없이 야구중계 소리가 들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