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를 읽고...
살면서 예상치 못한 우연한 곳에서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만나는 순간 있다.
나에겐 휴남동 서점을 만난 그 감동의 순간이 그랬다.
영주는 자신을 돌아볼 시간조차 없이 일에만 매달리던 K-직장인이다. 어느 날 갑자기 번아웃을 겪게 되고, 급기야 회사를 그만둔다. 그 과정에서 남편과 이혼하고, 엄마와도 심하게 갈등하게 된다.
이제 영주는 책 읽기를 가장 좋아하던 명랑했던 시절의 자신으로 되돌아가, 거기서부터 삶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뿐이다. 그렇게 서점 자리를 찾아다니다 휴(休) 자가 들어가 마음이 가는 동네, ‘휴남동’에 동네책방을 연다.
서점을 시작하고도 영주는 자신이 손님인 듯 어색하게 서점에 들어서고 가만히 앉아 책만 읽는다. 자신도 모르게 자주 울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눈물을 닦으며 손님을 맞이한다. 그렇게 맥없이 앉아 몇 달을 보내다, 어느 순간부터 더는 눈물이 흐르지 않자, 자신이 꽤나 건강해졌음을 깨닫는다. 그제야 휴남동 서점은 서점으로의 모습을 갖춰가기 시작한다.
명문대 출신 취준생 민준은 계속되는 취업 실패에 안정된 삶을 쫓길 멈추고 아르바이트를 하기로 맘먹는다. 첫 단추를 잘 끼워야 한다는 부모님 말씀 따라 열심히 공부했다. 셔츠에 단추를 채우듯 하나하나 채워가면 된다는 생각에 남들보다 좀 더 멋진 단추를 만들고자 노력하고 또 노력했다. 그러나 민준은 기회조차 주지 않는 세상에 대한 원망과 자신의 노력에 대한 기대 속에서 혼란스러움 느낀다.
민준의 삶엔 브레이크가 필요했다. 세상의 잣대가 아닌 자신만의 기준을 정해보기. 남들이 다 봤다는 천만 영화를 등 떠밀려 보는 휴식이 아니라, 천천히 내 취향의 영화를 찾아볼 수 있는 여유.
오직 맛있는 커피를 내리기 위해 집중하는 시간, 휴남동 서점에서 바리스타로 일하며 민준은 오롯이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민준이 함께 일하게 되자 서점 운영에만 전념할 수 있게 된 영주는 SNS에 서점 이벤트를 홍보하고, 사진과 함께 그날의 감상과 책 속에 좋은 글귀들을 올린다. 북토크 · 독서모임 · 글쓰기 강의도 마련하며 휴남동 서점은 좀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활력을 찾아가는 동네 사랑방으로 거듭난다.
휴남동 서점에는 영주와 민준 외에도 각자의 이야기를 가진 사람들이 있다.
지미는 휴남동 서점에 원두를 납품하는 로스팅 업체 ‘고투빈’의 사장이다. 그녀는 자기중심적이고 게으른 남편 때문에 화가 나 있을 때가 많다. 하지만 서점 사람들에게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화가 누그러들고 마음이 정화되어 살아갈 힘을 얻는다.
휴남동 서점의 제1호 독서클럽인 ‘엄마들의 독서클럽’ 회장 희주는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는 아들 민철 때문에 골치가 아프다. 그런 민철에게 희주는 한 가지 제안을 하는데... 민철이 학원도 그만두고 몇 시간이고 집에서 뒹굴거려도 일절 잔소리하지 않을 테니, 일주일에 한 번씩 휴남동 서점에 들러 사장님이 추천하는 책을 사서 읽는 것이다. 영주는 여기에 한술 더 떠 민철에게 꼭 책을 읽지 않아도 좋으니, 서점을 놀이터 삼아 자주 들리라고 한다. 다행히 그녀의 작전은 성공적이다. 서점에서 시간을 보내며 민철은 숨통이 트이는 것 같고, 무기력하던 자신이 점점 단단해져 감을 느낀다.
정서는 비정규직으로 일하던 직장에서 자신을 함부로 대하는 무례한 사람들의 태도에 상처받는다. 견딜 수 없어 회사를 그만두고, 매일 서점에 나와 멍하니 있다 가곤 한다. 그렇게 한 계절을 보내고 나서, 정서는 이제 구석진 자리를 지정석 삼아 세 시간에 한 번씩 커피를 시키며 종일 뜨개질을 한다. 세 시간마다 커피를 새로 주문하는 것은 서점에 피해를 주지 않겠다는 그녀 나름의 배려. 정서가 뜨개질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묘하게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이 마치 명상을 하는 기분이다. 그렇게 정서도 서점의 한 일원이 되어가며 지난 상처를 치유해 간다.
마지막으로 공대 남자 승우는 분명 자신이 원하던 코딩 일을 하며 좋은 성과를 내고 있지만, 그로 인해 돌아오는 것은 반복되는 야근과 과중한 업무 스트레스뿐이다. 급기야 부서를 옮기기로 결심한 승우, 좋아하지 않는 일을 하는 대가로 시간적 여유는 생겼지만 무언가 공허하다. “과연 어느 쪽이 더 행복한 삶일까?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도 불행할 수 있고, 좋아하지 않는 일을 하면서도 그 일이 아닌 다른 무엇 때문에 불행하지 않을 수도 있다.” 승우는 퇴근 후 한국어 공부에 몰두하며 블로그 활동을 통해 작가가 된다. 영주의 요청으로 휴남동 서점에서 첫 북토크를 열고 글쓰기 강의도 시작하며 행복한 삶에 한 발짝 다가간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마치 내가 영주가 된 것처럼 상상의 나래를 펼치곤 했다.
서점 오픈전까지 소설을 읽다 민준이 내려주는 커피를 마시며 새로 들여올 책들을 고르고 그 책을 추천하는 글귀들을 정성스레 적는다.
맛있게 로스팅된 원두를 가져온 지미의 오늘자 불평을 맞장구치며 들어주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떠나는 그녀를 웃으며 배웅해 준다. 언제나 그렇듯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을 만나면 기분이 좋아진다.
처음 맡아보는 독서클럽 운영으로 잔뜩 긴장한 희주와 어떤 책을 회원들과 함께 읽으면 좋을지 이야기 나누다 보면, 오늘도 어김없이 뜨개질 거리를 들고 온 정서가 커피 한 잔을 시켜 구석진 자리에 앉는다. 조금은 수다스럽게 이어진 대화의 흥분을 가라앉히고자, 나도 조용히 정서 앞에 앉는다. 그녀의 규칙적인 손놀림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차분해진다.
이번주부턴 매주 저녁 시간에 글쓰기 강의와 북토크가 열릴 예정이다. 북토크 사회는 서점 주인인 내 몫이므로 미리 챙겨야 할 것들이 많다.
학교를 마치고 서점에 들른 민철과 SNS에 서점 행사들을 어떻게 홍보하면 좋을지 얘기하다 보면, 자연스레 요즘 민철의 고민과 관심사도 듣게 된다. 부담스럽지 않게 민철에게 책 한 권을 권해본다. 읽다가 재미없으면 그냥 갖고 와도 오케이!
얼마나 버틸지 몰랐던 서점이 나름 자리를 잡아감에 따라 민준에겐 알바가 아닌 직원으로 함께 일해 볼 것을 제안해 본다. 누군가가 나를 위해 일해준다는 사실은 늘 고마운 일이다. 나를 위한 일이 그를 위한 일이 됐다고 하니... 감사할 따름이다. "한 공간에서 같이 일하는 동료가 고요히 제 할 일을 꼼꼼하게 하고 있다"는 것만으로 나는 안정감을 느끼고 내가 상상했던 일들을 현실로 만들어 갈 힘이 생긴다.
실제 내가 사는 곳에도 휴남동 서점과 닮은 동네 서점이 하나 있다. 서점지기가 인스타그램에 올린 경험살롱 1탄 “책방지기가 로망이라면, 동네책방 창업부터 큐레이션까지!”라는 행사 공지를 보고 바로 이거다 환호했던 기억이 난다. 휴남동 서점을 읽고 퇴직 후엔 나도 이런 동네서점을 차려보고 싶단 생각이 충만할 때여서 너무나 유익하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지난 가을 도서관 평생학습 강좌로 바리스타 2급 자격증반이 개설되었단 소식을 듣고는, 온 우주가 나의 꿈을 응원한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주 2회 퇴근하고 3시간씩 열심히 배워 지금은 바리스타 자격증도 취득했다. 고가의 커피머신이 있어야 진가를 발휘할 수 있겠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소소한 소품으로 핸드드립 커피를 내려 마시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근사한 곳에 가거나 개성 넘치는 공간을 만날 때마다 나는 사진으로 기록해 두려고 한다. 나름의 폴더를 만들어 차곡차곡 쌓아 둔 이미지들이 훗날 반짝이는 아이디어와 영감의 원천이 되어 나의 서점을 더 멋진 공간으로 만들어 주리란 기대를 하면서...
여전히 동네책방 지기가 되기 위해, 나는 오늘도 노력하고 있다. 책을 읽고, 기록하고, 카페에서 차를 마시고, 사람들을 만나는 일상의 모든 순간이 꿈이 있기에 꿈을 향해 노력하는 시간들이 된다.
인생을 다시 꿈꾸게 하는 서점...
작가가 말한 “서로의 거리를 지킬 줄 아는 배려 깊고 친절한 이들과의 우정과 느슨한 연대”가 있는 이곳, 휴남동 서점으로 내가 사랑하는 모든 이들을 초대하고 싶다.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shall we re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