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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재 이진주 Mar 21. 2024

나 없이 못산다는
우리엄마와 인생의 2막을....

나에게는 생소한 길

직장생활을 정년퇴직하고 자유인이 되었다. 아직도 직장 후배들이 가끔씩 밥 먹자고 전화가 온다. 

그래도 퇴직한 상사를 만나자고 하고 안부를 물어주니 얼마나 감사한 줄 모른다. 나는 퇴직이 두렵지 않았고 퇴직 이후의 삶에 대해서도 나름 준비한다고 해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퇴직을 하고 한 두달 보내는데 

우울감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전혀 새로운 세상에 홀로 서 있는 그런 기분이랄까. 

당장 무슨 일이라도 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불안감, 초조함이 모처럼 누리게 된 자유를 무색하게 했다. 

퇴직 후에는 나도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진정한 자유를 누리고 싶었다. 마음껏 여행도 하고 책도 읽고 그동안 멈추었던 서예도 하고 식도락도 즐기고 싶었다. 그러나 갑자기 발현한 코로나19가 변수가 되어버렸다. 

하필이면 내가 퇴직하니까 때를 맞추어 나타난 코로나는 2년이 지난 오늘까지 심각한 위기로 이어져 모든 삶과 환경을 제한해 버리고 말았다. 그렇다면 제2의 인생 출발을 위해 필요한 스펙이나 갖추자. 

인생 2막은 좀 더 희망차게 시작해보고 싶었다. 나는 굴하지 않고 온라인교육을 찾게 되었고 퇴직자에게 필요한 여러 가지 강의를 듣고 자격증을 획득 수 있었다. 문학심리상담사, 학교안전지도사, 캘리그라피, 전기기능사에 이어 요양보호사까지. 또 고용복지센터에서 실시하는 국민취업지원제도 프로그램을 통해서 커피바리스타도 쉴 틈 없이 공부하고 훈련하게 되었다. 나에게도 제2의 인생이 희망의 빛으로 비춰지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이런 나는 알지 못했다. 우리 엄마가 나의 퇴직을 기다리고 계셨는지를... 아버지 돌아가시고 8년째 홀로 생활하고 계시던 엄마가 나를 필요로 했다. 어느 날 눈이 많이 아프시다고 해서 군산에 계시는 엄마한테 갔더니 

눈에 염증이 심해서 눈 주위가 짓무르고 눈을 뜰 수 없이 고통스러워 하셨다. 몇 군데 안과를 방문했으나 잘 치료되지 않았다. 아마도 머리 염색의 부작용일 것이라 했다. 나이 드셔서 뭐하러 염색을 하셨을까 투정어린 생각도 해보았다. 치료과정에서 의사 선생님이 백내장이 상당히 진행되었으니 더 늦기 전에 백내장수술도 

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셨다. 한고집 하시는 어머니는 수술을 절대로 안 하시겠다고 했다. 어느 정도 치료가 

되어갈 때 즈음 또 이가 흔들리기 시작하여 자꾸 염증이 생겨 아프시다고 하셨다. 치과에 갔더니 연결해 놓은 서너개 남은 앞니가 다 되어서 뿌리를 발치 해야 한다고 했다. 원래 틀니를 하고 계셨는데 불편하다고 

안하시고 지내다 보니 다 흔들려서 못쓰게 되었다고 했다. 그래도 이빨은 삶의 중요한 부분이라 틀니를 

꼭 해야 한다고 해서 아랫니 4개를 기둥으로 위아래 틀니 공사를 시작했다. 전주에 사는 나는 그래저래 이틀이 멀다하고 군산에 다녀야 했다. 그래도 틀니는 하시겠다고 허락해서 수개월에 걸쳐 마무리는 했다. 

자식이 삼형제인데 사정상 오롯이 나만이 엄마를 캐어할 수 밖에 없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엄마 혼자서 지내시며 식사는 해결하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예상했던 일이 목전에 왔다. 

백내장이 점점 심해져서 일상에 어려움이 생겼다. 일주일에 한 두번은 다녀왔었는데 갈때마다 식탁 밑에는 

밥알이 떨어져 있고 반찬도 흘려 그것을 밟고 다니시니 방바닥이 여기저기 얼룩지고 씽크대도 엉망이었다. 

그래서 백내장 수술을 권하고 달래보았지만 이렇게 살다가 죽겠다고 하신다. 고집스런 엄마가 한편으로 이해가 되면서도 이런 엄마를 언제까지 저렇게 홀로 지내시게 해야 할지 고민이다. 그렇다고 우리 집에는 모실 수가 없다. 절대 절대로 싫으시단다. 그리고 나만 기다리신다. 

무슨 일이 있어 하루라도 전화를 못 하게 되면 내게 전화를 거신다. “어디 아프냐? 전화 안 하니까 내가 했다. 눈이 흐려서 돋보기 쓰고 간신히 번호 눌렀다” 했다. “아야, 나는 너 없으면 못 산다” 하신다. 우리 엄마는 지독한 가난과 두 딸을 가슴에 묻고 한평생 서러움에 살아오셨다. 90세를 앞두고 부쩍 부자연스런 모습이 되어간다. 나만 보면 자꾸 지난 이야기를 반복적으로 하시니 치매검사도 받아봐야 할 것 같다. 힘들게 맞춘 틀니도 하지 않고 잇몸으로 드시는 게 편하다 하신다. 

이런 엄마를 돌보는 일이 내 인생의 2막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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