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가와 May 28. 2024

취업한 회사가 기울어간다.

회사가 돈이 없다.


브런치에 마지막 글을 쓰고 약 두 달의 시간 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가장 큰 변화는 여름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바람이 느리다.




‘기자‘라는 명분

최종 합격을 내주는 회사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런데 결국 고른 회사는 면접자인 내가 봐도 경영이 위태로운 매거진이다. 이 회사는 절벽 끝에서 매달려 춤추는 무용수처럼 아름다워 보이지만 그만의 속사정이 있었음이 분명했다. 그럼에도 건실한 회사들의 합격을 제쳐두고 이 회사를 고른 이유, 이유보다 그 명분만큼은 확실했다.


취재 왔다가 처음 써 본 동시통역기


명분이 따르면 못할 게 없다.

불안한 회사이니 부족한 부분이 눈에 쉽게 보였다. 이 회사에 내가 할 수 있는 게 분명했다. 그리고 인력이 부족한 만큼 내가 중요한 직책을 맡고 과중된 업무에 얹혀 쩔쩔매는 미래가 훤히 보였다. 그게 내가 이 회사를 선택한 이유였다. 요즘은 워라밸이 중요하다는데, 나는 20대 내내 일과 삶이 하나인 인생을 살길 간절히 바라왔다. 중요한 기사를 맡아 대차게 실패하고 다시 일어나 싸워서 성공해 내고, 끝없이 나 자신을 에디터로 일하며 증명해 나가길 꿈꿨다. 무게감 있는 콘텐츠를 오직 내 힘으로 책임지고 싶었다.


그래서 말처럼 됐다. 써야 될 원고는 너무 많고 편집해야 할 사진도 산더미다. 매일 남들보다 한 시간 일찍 출근하고 한두 시간 늦게 퇴근한다. 퇴근하고 집에서 또 일한다. 주말에도 일한다. 에디터로서 노련한 경력이 없는 내가 할 수 있는 건 최대한 시간과 품을 들여 완성도를 닦아나가는 성실한 신입의 자세뿐이란 걸 알고 있다. 부족한 콘텐츠가 내 이름으로 나가는 건 창피하고, 욕심은 많다.


글의 무게를 안다. 그래서 광고주가 출간 후 진심 어린 인사를 건네주실 때, 다른 기자님들이 내 콘텐츠를 좋아할 때 책임감이 더해진다. 그래서 내가 이토록 망해가는 회사에 삶을 쏟아내는 걸 그다지 희생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좋은 콘텐츠를 만들고 싶다. 그래서 더 열심히 글을 써야 한다. 회사는 없어질 수 있지만 그렇다고 나는 없어지지 않기에 계속 달려 나간다.


그런데 이런 상황까지 겪어야 하나 싶은 웃기는 일이지만, 에디터로 들어와서 원고를 치는 와중에 재무까지 보고 있다. 뿐만 아니라 큰 기업이라면 관리팀에서 해야 할 법한 잡일까지 모두 도맡아 하는 중이다. 회사가 힘들면 나도 힘들다. 제안에 불만하지 않았으니 그러려니 한다. 그래도 일개 신입 에디터가 재무, 관리까지 보며 망해가는 회사의 알몸을 직시해야만 하는 상황이 조금 슬프다. 그게 내가 브런치를 다시 킨 이유일테다. 회사가 잘 됐으면 좋겠는데, 현실적으로는 그게 전혀 아니다. 매일 자금일보를 통해 무너지는 회사를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 있으니 가슴이 아프다.



그래도 언제나 에디터가 되길 바랐다.

회사가 망했지만 아직도 출근은 설렌다. 편집실에 들어가 컴퓨터 앞에 앉아 써야 할 글을 펼치고 인디자인으로 대지를 짜내는 일은 언제든지 심장을 뛰게 한다.  다음호 출간이 불투명하지만 말이다. 취재를 나가 브랜드를 진지하게 공부하고 전문적인 정보를 습득해 나가는 과정에 희열을 느낀다. 침몰하는 배에서 노를 젓는 선원의 마음이랑은 조금 다를까. 재무를 보니 여차하면 월급을 못 받을지도 모르겠다. 아무렴 어떤가. 회사가 끝내 침몰해 하늘을 못 보고 앞으로 나가지 않는 배가 되었지만, 가능한 할 수 있는 마무리 아닌 마무리를 한다. 그게 나를 뽑아준 회사에 대한 중요한 도리다.


한숨이 자주 나온다. 힘을 많이 낼 시기가 오고 말았다. 내가 원하는 건 돈도 명예도 아니다. 좋은 에디터가 되는 길에 있어 환경적 서포트를 받는다면 좋겠다. 저녁 행사 취재를 갔다 집에 오니 밤 10시다. 나에게 일 할 기회를 준 회사가 무너지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마음이 울어서 오랜만에 내 글을 쓴다. 이쯤 마무리해야겠다. 곧바로 다시 워드를 켜고 원고를 써야지.


배가 조금 고프다.



이전 10화 봄과 서울의 숨겨진 꿈의 정원, 여의도 샛강 공원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