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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와 Apr 01. 2024

나는 면접장에 들어가기 전, 시를 읽는다.

시집을 들고 면접 예상 질문지를 구겨버렸다.

마음이 동해야 진심이 나온다.
시는 내 마음을 동한다.


01. 취업을 준비하다.

3월 초 포트폴리오와 자기소개서를 만들고 에디터로 자리 잡기 위해 한 달째 노력하고 있다.

여러 번의 면접을 거치며 정말 간절히 합격을 바라기도, 실망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지키려고 하는 나의 곧은 면접 태도를 다짐하고 기록하기 위해 글을 시작하게 되었다.


취업을 준비하며 마련한 유니클로 정장

 

02. 면접의 시작

 여러 번의 면접을 거쳤다. 사실 '여러 번'이라고 이야기하기에는, 지원할 기업과 직무를 워낙 신중하게 고르는 성향 때문에 다른 취준생들에 비하면 적은 수일지도 모르겠다. 첫 면접은 면접자 8명, 면접관 1명의 다대일 면접이었고, 두 번째로 잡힌 면접은 갑자기 전 날 일정이 취소되고 말았다. 이후로 잡지사부터 광고사까지, 내 능력을 활용할 수 있는 기업들에서 면접을 준비하며 수많은 예시 질문과 답변을 작성했다.


[자기소개, 지원동기, 성격의 장단점, 마지막 할 말]

 면접의 기본질문이었다. 나는 이력서를 기반해 해당 질문들에 대한 대답들을 달달 외워갔었다. 면접 직전에는 적어둔 예상 질문, 대답지를 휴대폰 메모장이나 A4용지로 보며 상황을 시뮬레이션 한 뒤 뻣뻣한 정장과 함께 면접장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런 정석적인 준비가 나에게 적이 될 것이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시작과 끝. 집 앞에 KTX가 지나다닌다.


03. 면접의 현재

 그런 노력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면접들에 탈락했다. 그저 외워간 답변들 때문에 동문서답을 하는 경우도, 짧게 대답해야 할 질문에 외운 대답을 길게 늘어놓은 기억도 있다. 항상 그런 실수들은 면접장에 나오고 나서야 반성했다. 한창 자책에 빠져 있을 때, 미디어 아티스트로 활동할 시기 은사님께서 해주신 말씀이 생각났다.


힘을 뺄 줄 알아야 주는 방법을 알게 된다.

 UFC 출신 격투기 선수 김동현은 오히려 힘을 빼고 상대를 타격할 때 K.O가 된다고 한다. 김동현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운동선수들이 코치에게 지도를 받을 때도 '힘을 빼라', '몸통을 중심으로 움직여라'라는 말들로 내공을 키워간다. 힘을 빼는 것은 여유를 가짐과 동시에 자신이 진정 주인인 '자세'를 알아야 가능한 일이다. 어떤 자세가 나를 힘을 빼게 하는지 알아야만 했다.


주로 읽고 들어가는 책들.
04. 나는 면접장에 들어가기 전, 시를 읽는다.

 우선 면접 답변들을 외우지 않으려고 했다. 그럴싸한 답변들을 외우기보다 나를 설명할 수 있는, 꼭 전하고 싶은 중요한 키워드 몇 개만 외워갔다. 그럼에도 경직된 마음은 면접관에게 내 진심을 전하기 충분하지 않았다. 진심은 허공에 몸을 던지는 스카이 다이버처럼 극적으로 마음이 동하는 순간에 나타남을 상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로써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밥벌이를 할 수도 없고 이웃을 도울 수도 없고 혁명을 일으킬 수도 없다. 다만, 다른 사람들이 배고파 울 때 같이 운다든가, 다른 사람들이 울지 않을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감히 울어 버릴 수 있다는 것뿐이다. - 최승자 시인


 무엇이 내 마음을 동하게 하는지 알기 위해 노력했을 때, 시가 생각났다. 시와 나는 삶의 불안에서 함께 울었던 안락한 추억이 있다. 그렇기에 시를 읽는 내 마음과 태도는 엄마의 품에 안긴 것처럼 깊은숨을 내쉬게 한다. 그런 순간에 면접장으로 들어가기를 다짐했다.


필름 키링을 직접 만들어 가방에 달았다. 나를 설명할 수 있는 액세서리.
05. 마음이 동해야 진심이 나온다.

 나만의 면접 준비라면, 내 모습이 오차 없이 그대로 나올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나는 힘을 빼기를 다짐한 이후 면접 직전이면 예상 질문지와 답지가 아닌 좋아하는 시, 기사, 문장을 읽고 가방에 달린 필름 키링을 손아귀에 한 번 꾹 쥐고 면접장에 들어간다.


 그렇게 면접장에 들어가면 시와 예술 아래에서 같은 인간으로 살아가는 나와 면접관이 가깝게 느껴진다. 면접장에서 내 입은 진심만을 밖으로 꺼내놓게 된다. 내가 할 줄 아는 것과 못 하는 것의 구분을 명확히 하고, 내가 가진 열정의 양과 지원한 회사의 애정의 양 또한 과장하거나 축소하지 않는다. 딱딱한 자세와 말투로 세팅된 취준생이 아닌 면접장에서도, 사무실에서도, 현장에서도 일관적인 사람임을 보여주고자 최선을 다 한다. 그저 태도를 보여줄 뿐이다.

 그래서 내 면접의 첫 번째 목적은 합격보다 나를 거짓 없이 보여주는 것이다. 합격은 언제나 그 뒤를 따라와야만 한다. 그래야 내가 그 회사에서 행복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다.





봄이 왔다. 가벼워지는 마음이 봄과 함께라서 좋다.
  마치며. 면접에 입던 뻣뻣한 정장이 내 몸에 맞게 부드러워지고 있다.

 누군가는 나보다 더 깔끔하고 자연스럽게 잘 준비된 답변으로 이목을 집중시켰을지도 모른다. 가끔은 두서가 없어져 버리는, 당황한 표정에서 어떤 질문에 갑작스레 뜬금없이 당당해지는 내 모습이 약점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래도 나는 이 태도를 잃지 않고자 한다. 그리고 언젠간 나를 알아주는 곳이 있도록 더욱 견고하고 설득력 있게 나의 면접 방식을 다듬어 나가길 다짐한다.

 

 내일이든 일주일 뒤든, 1년이 지났어도 나는 여전히 면접장에 들어가기 전 시집을 읽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다. 그 방식이 나를 탈락으로 이끌고 안정적인 자리를 찾지 못한다고 해도 이 태도가 가진 최소한의 조각만큼은 남겨두고 싶다. 며칠 전 면접장에 들어가기 전 읽은 기형도의 메모로 글을 마무리한다.


 나는 한동안 무책임한 자연의 비유를 경계하느라 거리에서 시를 만들었다. 거리의 상상력은 고통이었고 나는 그 고통을 사랑하였다. 그러나 가장 위대한 잠언이 자연 속에 있음을 지금도 나는 믿는다. 그러한 믿음이 언젠가 나를 부를 것이다. 나는 따라갈 준비가 되어 있다. 눈이 쏟아질 듯하다. - 기형도 <입속의 검은 잎> 시작 메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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