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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비 Apr 19. 2024

강박과 타협

 오랫동안 늘 결과로만 증명해야 한다는 강박을 가지고 살아왔는데요, 확실히 몇 년 동안이나 제 행동 지침과 꽉 맞물려 작용해 주었습니다. 대학생 시절 16주 정도 되는 학부 학기들은 짧은 레이스니까, 속도를 조금 몰아붙이면서 달려도 동력에는 문제가 없었어요. 주행 전략과 계획도 간단하죠. 타협 없이 스스로를 몰아붙인다고 해 봐야 잠깐이니까, 완주하면 금방 회복할 수 있거든요. 주행 중에는 완주 후 리프레쉬할 계획을 짜는 윤활작용도 가능하며, 같이 달리는 페이스메이커도 많아 그리 힘들지 않죠. 그래서 저는 스스로가 신체도 정신도 강한 롱러너라고 자부했었어요. 졸업할 때는 어떤 코스도 전부 완주할 수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하지만 rpm이 빠른 기어는 늘 그렇듯 더 많은 동력을 필요로 하며, 시간이 지나면 마모되기 마련이죠. 이제 막 필드에 내던져진 새내기 대학원생은, 증명할 결과가 없는 탓에 강박이라는 기어가 더 거칠게 회전합니다. 아득하게 먼 도착선이 그나마 보이기라도 하면 다행인데, 어디 있는지 모를 때도 있고, 길을 잃을 때도 있죠. 졸업 전부터 착수했던 5개월간 달려온 길이 잘못된 길임을 알았을 때엔 말 그대로 조난당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심지어 마모된 기어는 원동력으로 기능하기도 쉽지 않거니와, 주변 환경은 기어의 윤활을 방해할 뿐이었어요.


 타협이라는 단어는 사실 좋게 들리지는 않습니다. 내 네비게이션을 부정하는 것 같고, 무능력을 인정하는 것 같았죠. 아니 인정의 수준을 떠나, 나의 무능함을 가슴속에 때려 박는 기분이에요. 마치 무언가를 성취하겠다고 호언장담을 하였으나 보기 좋게 나가떨어지고, 그 망신을 보여줘 버린 느낌? 주행 속도가 느려진 나를 보고 주변 사람들은 내가 지친 게 보일 거잖아요, 그런 거죠. 더군다나 나를 비웃는 객체가 나 자신이라 더더욱이 받아들이기 쉽지 않습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아주 오랜 시간 동안 타협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해 왔었는데, 대학원 생활은 강박만으로는 주행하기 너무 어려워 어쩔 수 없더라고요. 앞으로는 조금 천천히 가기로 타협을 했습니다. 네, 지금은 타협이 그다지 나쁜 것만으로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아주 오랜 시간을 가야 하는데, 주행 전략도 없이 내내 뛸 수는 없잖아요? 능력 밖의 일들과는 타협하고, 결과가 없더라도 잠깐 걸어볼게요. 단 멈추지는 않겠습니다. 생각해 보니 이것도 강박이라면 강박 같기도 하고요, 타협을 받아들이는 것 또한 일련의 타협일 수도 있겠네요. 뭐가 됐든 강박과 타협은 떼어 놓을 수는 없는가 봅니다. 이들이 순기능으로 작용할지, 아닐지는 저의 소관이겠지만요. 몇 년 후에 이 글을 다시 볼 때는 타협이 그릇된 것이 아님을 결과로 증명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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