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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은샘 Aug 27. 2024

시골밥상

고추야! 고맙다

  지난 봄, 오월 어린이날 즈음 해서 텃밭에 고추 모종을 심었다. 화원에서 한 주에 천 원씩 주고 산 고추모종을 심기 위해 고량을 만들고 잡초가 날 것을 대비해 검정비닐도 씌웠다. 고추 모종은 십 센티정도의 어린모종이었다. 손으로 흙을 조금 파내고 어린 고추모종을 심고 흙으로 덮어주었다. 봄비가 간간히 내려준 덕분에 잘 자라주었다. 하루가 다르게 쑥쑥 가지를 뻗고 푸릇한 고추 잎사귀도 만들고 사이사이 하얀색 앙증맞은 꽃도 피웠다. 꽃이 진 자리에는 풋고추가 열리기 시작했다.


  금요일, 한 주간의 일과를 마무리 하고 고속도로를 달려 도착한 불꺼진 시골집에 스위치를 올리고 쌀을 씻어 전기밥솥에 넣고 취사를 누른다. 컴컴한 마당 한 켠 텃밭에 들러 고추 몇 개, 상추 몇 잎 따서 마트에서 사 온 고기와 함께 마당에 앉아 늦은 저녁 식사를 한다. 밭에서 따서 싱싱한 고추는 매운 맛은 없지만 달큰하고 아삭한 식감이 그만이었다. 아삭이 고추였다. 아삭아삭, 쌈장과 고추 몇 개만 있어도 밥상이 풍성해진 느낌이었다.


  올 여름 유난히 덥고 기온도 높았지만 고추는 주렁주렁 잘 열렸고 빨간 고추까지 딸 수 있었다. 빨갛게 익은 고추는 채반에 담아 몇 개라도 햇볕에 말리려고 그늘 진 곳이 두어 시들해 질 때까지 두었다가 햇볕에 말렸다. 바짝 마른 고추는 냉동실에 담아두면 김치담글 때 유용한 재료가 된다. 매주 고추밭은 우리들의 싱싱한 먹거리를 담당하는 보물 창고가 되었다.


  지난 주 고추를 따다보니 바닥에 떨어지 고추가 몇 개 있어 자세히 보니 누렇게 끝이 변하거나 구멍이 뚫려 있었고 자세히 살펴보니 가지마다 고추벌레가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거북모양의 벌레로 고추의 수분을 빨아먹어 고추가 무르거나 속이 검게 변하게 하는 것이다. 남편에게 이야기하니 어차피 김장할 배추나 무를 심어야하니 농약을 하지말고 그냥 뽑아내자고 했다. 아직 고추가 많이 달려있고 잎도 싱싱하지만 고추벌레는 금세 번질것이라 아까운마음을 뒤로하고 뽑아내기로 했다.


  장갑을 끼고 장화를 신고 고추대를 뽑았다. 가느다란 뿌리가 흙에 붙어 있어 있는 힘껏 당겨서 뽑았다. 다라이를 갖다놓고 싱싱하게 매달린 고추를 땄다. 빨간고추, 초록고추, 풋고추 따서 그릇에 담으니 고추가 가득하다. 지퍼백에 나눠 담아 냉장고에 넣어두면 한달가량은 싱싱하게 먹을 수 있다.


  빨간고추는 따로 골라 씻어서 지퍼백에 잘라서 담아 냉동실에 넣었다가 김치 담글때마다 믹서에 갈아 양념으로 쓰면 고추가루만 넣는 것보다 훨씬 맛있는 김치가 된다. 어린 풋고추는 골라 깨끗이 씻어 꼭지를 따고 식용유로 살짝 볶다가 풋고추 넣고 간장, 설탕 넣고 풋고추조림을 만들었다. 조리는 과정에서 고추에서수분이 나와 자작한 고추조림이 되었다. 깨를 살살 뿌려 먹음직스럽다. 멸치 몇 개라도 넣으면 더 맛있겠지만 남편의 입맛은 간장만 넣고 조린 것을 좋아한다. 특히 흰 쌀밥에 고추조림간장을 넣고 비벼서 맛있게 먹는다.


  고춧잎도 싱싱해 앉아서 잎사귀를 일일이 땄다. 뜨거운 물에 굵은 소금을 넣고 살짝 데쳐서 찬물에 헹군다. 진한 초록색으로 변한 잎사귀에서 하얀 거품이 연신 나온다. 그만큼 몸에 좋은 음식인가보다. 여러 번 헹군 고춧잎은 물기를 꼭 짜고 가는소금, 참기름, 다진마늘, 참깨 넣고 조물조물 무쳤다. 나머지는 냉장고에 넣었다가 월요일에 볶아먹을 예정이다. 고춧잎 볶음은 데친 고춧잎을 식용유와 다진마늘 넣고 먼저 볶다가 간장넣고 살짝만 볶으면 된다.


  특별한 맛이 나는 것은 아니지만 약간 쌉싸름한 맛이 나면서 당기는 맛이 있다. 어린시절 고추밭에 다녀온 엄마의 바구니에는 항상 고추와 고춧잎이 있었고 여름밥상에 반찬으로 고추볶음, 조림, 고춧잎나물은 늘 있었던 것 같은데 좋아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여름이면 고춧잎무침이나 볶음은 꼭 한번쯤은 나를 위한 밥상으로 준비한다. 아마 중년이 되면서부터인가 보다. 엄마를 그리워한느 마음인것 같기도하다.


  봄에 심었던 고추 덕분에 여름내내 아삭아삭한 고추는 우리들 밥상에 늘 함께 했었다. 배추를 심기 위해 고춧대를 뽑아냈지만 하얀색 앙증맞은 고추꽃도 보고 고춧잎부터 풋고추, 아삭한 고추, 빨간고추까지 아낌없이 주는 나무였던 고추를 내년에도 또 심을 것이다. 한동안 아삭이 고추맛이 그리워질 것 같다. 고추야,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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