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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은샘 Oct 29. 2024

엄마 박완서의 부엌

정확하고 완전한 사랑의 기억을 읽고

  추수가 끝난 논에서 나는 특유한 향이 바람을 타고 코끝을 스친다. 그 냄새가 좋아 코를 흠흠 하며 향을 들이마신다. 질퍽한 논에서 풍기는 향은 아버지를 연상시킨다. 수확이 끝난 논에는 알곡을 주워 먹으려는 기러기가 떼 지어 날아다니며 소리높여 울어댄다. 지나가는 작은 발자국 소리에도 푸드덕 놀라 줄지어 날아가는 모습이 장관이다. 추수가 끝난 논에는 새떼들의 합창으로 소란스러운 아침이다.


  호원숙 작가의 엄마 박완서의 부엌 이란 제목의 책을 읽으며 엄마가 해 주신 음식들에 대힌 기억과 냄새가 맡아지는 듯 하다. 작가의 엄마는 유명한 소설가이자 작가였지만 아이들의 엄마이기도 했다. 그 엄마가 계신 부엌에서의 모습과 해 주던 음식을 추억하며 그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기억인 것 같다., 엄마가 끓여서 자신에게 주었던 무국을 끓여 손주들에게 먹이는 장면과 그 국을 맛있게 먹어주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세대간의 자연스런 연결고리가 생긴다. 국을 먹을 때마다 손주들도 할머니를 그리워할 것이고 부엌에서 준비하던 손길을 기억할 것이다. 이렇듯 음식과 냄새는 사람들의 기억속에 참으로 행복한 기억과 추억을 남긴다. 글을 읽는 내내 만드는 과정과 박완서 작가의 부엌이 그려지면서 소설가로서 이전에 엄마로서의 성품과 아이들에 대한 깊은 애정이 담겨 있음을 느꼈다.


   나에게도 그런 기억이 있다. 모든 것이 부족했던 시절이엇지만 엄마는 우리에게 늘 배주리지 않게 채워주던 솜씨좋은 엄마였다. 여름 날 땀 흘리고 실컷 놀다 오면 엄마의 부엌에서는 모락모락 연기가 피어올랐다. 가마솥에 보리쌀과 쌀 한줌을 섞어 밥을 짓고 솥에서 눈물이 주르르 흐르면 밭에서 딴 가지를 네 갈래로 잘라 솥에 넣고 한소큼 뜸을 들였다. 밥 푸기 전 먼저 김이 오른 가지를 꺼내서 손으로 길게 찢어서 갖은 양념으로 무쳐주시던 가지무침이다. 지금도 가지무침을 좋아하지만 그 때 가마솥에 김이 올라 먹었던 그 맛은 아니다. 담장에 달린 동그란 애호박을 따서 칼로 듬성듬성 동그랗게 썬 후 채를 썰어 양은솥에 넣고 양파도 채썰고 간장, 고추장, 고추가루 넣고 끓여 낸 애호박찌개는 여름 내내 밥상에 오르던 단골손님이었다. 가족 모두 밥그릇에 애호박찌개 넣고 쓱쓱 비며먹으면 밥그릇도 싹싹 비워졌던 허기진 배를 든든하게 채워주던 음식이었다.


  음식과 냄새는 연결고리가 있다. 지나가다 문득 맡게 되는 냄새로도 우리는 어떤 음식인지 알게 되고 그 음식을 먹었던 추억이 자연스레 떠오르기 때문이다. 현대는 배달문화가 발달되어 가정에서도 음식을 하지 않는 주부들이 많아지고 있다. 그러나 나의 견해로는 어린시절은 반드시 엄마가 해 주던 음식과 밥상을 받고 충족되는 행복감을 느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은 그런 엄마를 기억하기 때문이다. 엄마의 품에서 나던 그 냄새, 솥에서 끓이던 찌개냄새, 함께 만들었던 소중한 음색냄새와 추억이 바로 그것이다. 그 기억으로 인해 살아가면서 지쳤을때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힘을 얻게 되는 것이 바로 음식이기 때문이다. 오늘도 힘든 하루일과에 지쳤을 가족을 위해 난 어떤 저녁밥상을 차릴까 고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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