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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은샘 Nov 05. 2024

꿈에서라도

내 마음이 지치는 날에는

  새벽에 잠에서 깼다. 습관적으로 화장실에 들렀다. 벽시계를 보니 세시 삼십분이다. 깨어있기에는 이른시간 다시 베개를 베고 누워 잠을 청했다. 고등학교 단짝이었던 치눅와 오랫만에 만나 밥을 먹기로 했다. 허름한 밥집에 앉아 선짓국을 시켰다. 주문해놓고 한참을 기다리다 답답한 것 같다고 친구는 그냥가자고 했다. '주문했는데... ' '뷰, 좋은데로 가자' 주인의 눈을 피해 도망치듯 장소를 옮겼다. 아뿔사 휴대폰을 두고왔다. 아차 하는 순간 잠에서 깼다. 꿈이어서 다행이다 생각하며 시계를 보니 다섯 시 반이다. 핸드폰을 잃어버린 줄 알았네. 쫓아올 것 같던 주인은 다름아닌 남편이었다. 동쪽 하늘에는 발갛게 해가 떠오르고 있다.


  커피포트에 물을 끓여 머그잔에 담아 밖으로 나왔다. 오늘 비소식이 있는데 하늘은 맑다. 지난 주 비 때문에 캐지 못한 감자밭의 줄기를 걷어냈다. 장화를 신고 장갑을 끼고 검은 비닐을 벗긴다. 호미로 살살 땅을 긁으니 연노랑 감자가 나온다. 땅속의 황금보물이다. 지난 봄 감자를 반쪽으로 잘라 심었는데 그 사이 싹이 나고 꽃으  피우고 감자 가족은 그렇게 옹기종기 모여있다. 반들반들 윤기가 나듯 흙도 묻지 않은 뽀얀 감자가 땅을 박차고 나온다. '고추밭에 약 쳐줘야할 것 같아, 벌레가 생겼어' 진디물이 고추에 달라붙으면 고추가 성장을 멈추고 말라버린다. 풋고추를 따 먹기 위해 몇 그루 심은 거지만 소중하다. 그 말을 듣고 창고에 가더니 약통을 지고 나와 고추에 약을 뿌린다. 감자고랑 주변에 심었던 강낭콩도 몇 그루 수확했다. 뿌리 채 뽑아 박스에 담아 콩을 따고 화단에 시든꽃도 정리한다.


  일곱 시 반 약을 친 남편에서 '아침 먹을래?' 하고 물으니 '그래'라고 시무룩하게 대답한다. 밭에서 캔 감자 중 주먹만 한 것 두 개를 골라 부엌으로 가서 껍질을 벗기고 채를 썰어 찬물에 담궈 전분기를 뺐다. 굵은 소금으로 살짝 간을 해 두었다. 식용유를 팬에 두르고 뜨거워지면 감자채를 넣고 살살 볶다가 가는 소금을 넣고 간을 맞춘다. 은색 쟁반에 볶은 감자, 오이냉국, 김치, 상추, 고추, 쌈장을 차려 툇마루에 앉아 아침을 먹는다. 비가 오려는지 하늘은 조금씩 구름을 머금고 있다.


  밥을 먹는 내내 말이없다. 엊그제 사소한 말다툼으로 인한 감정싸움이 원인이었다. 문제를 대하는 서로의 생가가차이가 다툼의 원인이다. 그 동안은 버럭 하는 남편에게 대꾸하기 보다는 그 자리를 피했지만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맞불을 붙였다. 순간이었지만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고 남편이 자리를 떴다. 조용한말로도 충분한 일을 버럭 한 남편에 대한 분노와 원망으로 인해 내 마음에 참담한 슬픔이 흘러내렸다. 그럴 때 순대국이나 선지국이 먹고 싶다. 퇴근길 간판에 순대국이라는 글자가 보이면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남편은 순대국이나 선지국을 아예 먹지 않는 음식이다. 반면 어릴 적 우리집 마당가엔 늘 소 부산물로 끓이는 내장탕 선지국이 가마솥에 가득 끓고 있었다. 오일장에 소를 팔고 도상장에서 받아온 간, 천엽, 내장을 얼큰히 취한 아버지의 손에 들려 있었다. 샘가에 앉아 밀가루를 뿌려 박박 문질러 가마솥에 넣고 종일 끓이면 맛있는 냄새가 마당가득 퍼졌다. 평상에 앉아 온 가족이 즐겨먹던 음식이다. 결혼하고보니 남편은 먹지 않는 음식이다보니 먹을 기회가 없다. 어쩌면 선지국은 내 마음을 든든히 채워주는 감정의 음식인지도 모르겠다. 남편과 감정이 좋이 않기에 꿈에서라도 선지국을 먹으려 했다. 그날 꿈속에서라도 선지국 뜨끈히 한 그릇 먹었다면 참 든든하고 좋았을 것 같다. 혼자서라도 든든한 선지국 한그릇 먹으러 가야겠다. 허기진 내 마음을 뜨끈한 국으로 꾹꾹 눌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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