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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은샘 Nov 06. 2024

다름을 인정하기

어느 가을날 당근을 캐며

  햇살이 따사롭던 초여름, 텃밭 자투리 땅에 당근 씨앗 한 봉지를 뿌렸다. 수확을 바라는 건 아니었지만 주말마다 들여다보게 된다. 씨앗은 싹을 틔우고 당근 잎사귀가 돋아나 자라기 시작했다. 거름을 주지도, 잡초를 뽑아도 되지 않을 만큼 빼곡히 자라났다. 자란 잎사귀가 두 개에서 네 개로 여섯 개로 자라며 제법 당근다워졌다.


  무더운 여름이 지나고 텃밭 구석에 있던 당근은 존재를 드러냈다. 바람이 살랑일 때마다 잎사귀가 제법 흔들리며 당근의 냄새도 살짝 난다. 가을을 보내며 문득 서리가 오기 전에는 뽑아야 할 것 같았다. 창고에서 호미를 꺼내 엉덩이 의자에 앉아 촉촉한 땅을 조심스럽게 파내려 갔다. 초록색 잎사귀에 가려져있던 주홍빛 당근이 모습을 드러낸다. 크고, 작고, 굵고, 가늘고 , 둥글고, 모나고 각기 다른 모습으로 자라고 있었다. 흙을 살살 털어내고 가지런히 놓아본다.


  당근을 한 개 한 개 캐내며 각기 다른 모습을 보며 작으면 작아서 귀엽고 크면 실하고 당근다워서 멋지다. 장석주 시인의 '대추 한 알'이란 시에서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저 안에 번개가 몇 개가 들어서 붉게 익히는 게일 게다"라고 표현했듯이 당근 역시 땅 속에 뿌리를 내리고 비도 맞고 바람도 견디며 햇살이 뜨거워질 때도 자신을 보호하며 견뎠으리라.


크고 작고 가늘고 둥글 고의 모습보다 그 나름의 모습으로 충분하다. 작으면 작아서 앙증맞고 둥글면 둥근 대로 귀엽고 길면 길쭉한 대로 좋고 크면 당근다워서 좋고 당근을 캐내며 조금 더 보살피며 솎아내고 다듬었다면 조금 더 크게 캐웠을 것 같은 아쉬움이 있었지만 각기 다른 모습을 인정하기로 했다.. 사람도 마찬가지로 다른 모습이어도 좋다. 같은 날 함께 땅 속에 묻혔어도 각기 다른 모습으로 밖으로 나온 당근처럼 서로 다룰지라도 소중하다고 가만히 속삭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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