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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은샘 Nov 15. 2024

나를 다시 채우는 시간

걸으면 채워지는 것

  느긋하게 식사를 하며 여유를 즐길 수 있는 휴일아침, 간단한 아침을 준비해 함께 먹으며 햇살을 받고 있다. 평일은 남편만 간단히 아침을 차려주고 커피 한 잔으로 지내는 경우가 많다. 그렇지만 주말만큼은 시간에 쫓기지 않고 여유롭게 내가 좋아하는 반찬을 만들어 아침식사를 한다. 텃밭에서 무청을 솎아내 끓는 물에 살짝 데쳐 찬물에 헹군다. 잘게 썰어 된장과 멸치육수를 우려 무청을 넣고 끓인 후 간장에 절여놓은 매운 고추 두 개를 다녀 넣었다. 구수한 된장 냄새가 식욕을 자극한다. 새로 돋아난 민들레 잎사귀와 부추를 뜯어 간장과 식초, 설탕, 참기름을 넣고 살짝 무쳐서 아침밥상에 놓고 나란히 앉아 밥을 먹었다.


  햇살이 따사로운 11월 집에만 있기에는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산책을 가야겠다. 운동화를 신고 뒤편 쪽문으로 나가면 바로 산길로 이어지는 도로가 나온다. 인적이 드문 산길 따라 걷다 보니 꼭대기 집 개가 멍멍 짖는다. 휴, 한숨을 돌리며 산길로 들어서니 안동김 씨 문중산이 나오고 잘 가꿔진 묘소가 여러 개 있다. 잔디도 잘 조성되어 있고 정돈되어 있다. 여름이면 밭에 심어 놓은 백일홍군락이 알록달록 피어 장관을 이루던 곳이다. 사람이 잘 다니지 않은 산길이라 억새가 자라 있고 무성한 수풀을 헤치고 지나가니 누군가 걸어놓은 빨간, 노랑 리본이 길을 안내한다.


  고사리가 나오는 봄에는 고사리도 조금 꺾었던 곳인데 지금은 고사리가 자라 수풀처럼 변했다. 조금 더 오르니 울창한 나무가 자라 그늘이 졌다. 그늘진 나뭇가지사이로 들어오는 햇살줄기가 반갑다. 바위를 따라 조금 더 오르니 도비산 임도가 나온다. 도비산은 바위가 많은 산이다. 길을 따라가다 보면 산 양쪽을 크고 작은 바위가 웅장해 보는 맛이 난다. 산을 한 바퀴 따라 동쪽으로 가면 해돋이 전망대가 있고 서쪽으로 가면 해넘이 전망대가 있다. 임도는 잘 포장되어 있고 가끔 자동차로 산을 한 바퀴 도는 사람들도 있어 눈살이 찌푸려진다. 요즘 나는 해넘이 전망대 쪽을 자주 간다. 가는 길에 물이 졸졸졸 흐르는 소리를 들을 수 있고 행글라이더장에 올라가면 서산시내 와 태안바다까지 조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먹었으니 비워야지, 천천히 걸어가지만 등에서는 땀이 송골송골 흐른다. 휴, 가끔 한숨을 내쉬며 가파른 길을 오르다 보니 어느새 야트막한 둔턱을 닦은 행글라이더정상이다. 360도 회전하며 서산시내가 보이고 태안의 바다, 안면도까지 한눈에 탁 트인 시야에 '야호' 소리가 절로 나온다. 한참 두 팔을 벌려 바람을 느끼며 한 동안 멍하니 서서 하늘과 먼발치까지 바라보았다. 상념이 없어진다. 모월저수지, 인지 너른 들판, 추수를 끝낸 논은 평화롭고 논에 먹이활동을 하러 온 까마  기러기와 청둥오리가 떼 지어 날아다닌다. 그 또한 장관이다.


  조금 숨을 돌린 후 집으로 갈까, 정상까지 갈까 고민하다 정상으로 발길을 향한다. 정상으로 가는 길은 나무 사이사이로 숲길이 나 있어 고요하다. 떨어진 솔잎과 나뭇잎들이 켜켜이 쌓여 폭신폭신한 느낌마저 준다. 혼자서 들숨과 날숨을 반복하며 호흡을 고르며 산을 오른다. 여기서 걱정되는 건 혼자 가는 숲길의 무서움이 아닌 멧돼지가 나올까 하는 걱정이다. 그렇지만 확률이 적다고 판단하고 나무사이로 들어오는 해살과 숲의 새소리 간혹 오솔길에 피어있는 작을 들꽃을 친구 삼아 걷는다. 정상까지 1,2킬로 부지런히 걷다 보면 이십 분 정도면 정상까지 갈 수 있다. 마음은 이미 정상에 있다.


  한참을 정신없이 걷다 보니 드디어 정상으로 가는 계단 앞에 섰다. 여기서 잠깐 숨을 고르고 휴, 휴 한숨을 내쉬며 계단을 오르다 보면 탁 트인 조망을 가진 정상이 나온다. 표지석에 353미터 도비산이 쓰여있고 정자와 바다를 볼 수 있는 벤치도 마련되어 있다. 의자에 앉아 잠시 바다 쪽의 반짝이는 윤슬도 보고 바다를 간척해서 만든 간척지의 넓은 들판도 보며 멍을 때린다. 하산하는 길은 석천암으로 내려가는 방향이 가장 빠르다. 나무로 만든 가파른 계단을 따라가다 보면 웅장한 바위밑에 절이 있다. 인적이 드문 곳이라 사람의 발길은 드물지만 바위에서 흘러나오는 암반수로 목을 축이고 다시 가파른 길을 내려와 집으로 향한다.


  비우고 나를 다시 채우는 시간, 걷는 동안 많은 생각과 상념이 뇌리를 스쳐간다. 그러다 서서히 아무 생각 없이 걷다 보면 어느새 정상에 도착해 있고 멀리 반짝이는 바다의 윤슬을 보며 '좋다'라는 생각만 남는다. 걷기는 나에게 마음을 비우고 나르  다시 채우는 시간이다. 대부분의 생각과 정리는 걷는 동안하고 그걸 노트에 기록으로 남긴다. 집으로 다시 돌아오며 오후에 해야 할 일과 점심은 무얼 해 줘야 하는 일상으로 돌아오지만 나를 다시 채우는 시간에 오롯이 집중한 오늘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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