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여운 손자을 데리고 작약 밭으로 간다. 나는 세발자전거에 손자를 태우고 노래를 불러준다. ‘따르릉따르릉 비켜나세요, 자전거가 나갑니다. 따르릉’ 손자는 신이 났다. 오후의 태양빛이 눈부시다. 하늘은 물감을 풀어놓은 듯 파랗다. 햇살을 피해 벚나무 아래로 들어갔다. 그늘진 나무 사이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작약 밭에 함께 온 아이들이 따라오면서 소리친다. ‘선생님 여기 사슴벌레가 있어요’ 한다. 사슴벌레를 어떻게 알았을까? 책에서 많이 본 모양이다. 오늘은 작약꽃으로 체험을 하는 날이다. 작약꽃이 피었습니다.
작약을 심은 지 여러 해가 되었다. 중국산 약초가 수입되면서 약초 값이 바닥이다. 약초를 판매하기 위해 거름 주고 잡초도 제거해야 한다. 봄부터 가을까지 농산물이든 약초든 농부의 손길은 필요하다. 가을에 수확하고 판매해야 고생한 수고비가 들어온다. 채소 같은 작물은 수확 시기에 판매 가격이 좋지 않으면 밭에서 폐기하기도 한다. 농부들의 땀은 농부의 눈물로 바뀐다. 약초 값이 좋지 않다. 작약도 마찬가지다. 수확을 미루다 보니 작약이 한 아름 크기로 자랐다. 작약이 꽃망울이 생기기 시작한다. 꽃이 만발하면 꽃향기가 퍼지고 별 나비가 몰려오듯 사람들도 구경 온다. 작약 꽃밭을 둘러 보고 사진으로 기억을 남긴다. 지난해에도 작약을 판매하지 못했다. 작약 값이 여전히 회복할 기미가 없다.
봄날 앞다투어 피던 개나리 진달래 벚꽃 복숭아꽃 배꽃 사과꽃도 졌다. 그 자리를 작약꽃이 자태를 뽐내기 시작한다. 구문소 마을에서 체험행사를 준비했다. 작약꽃을 둘러보고 사진을 찍는다. 가위로 작약꽃을 한 움큼씩 잘랐다. 꽃다발을 만들기 위해서다. 아이들은 작약 꽃밭에서 장난을 친다. 아이들을 야단치지 않는다. 필요한 만큼 핀 꽃, 몽우리 진 것을 골고루 잘랐다. 활짝 핀 작약이 유혹한다. 색깔도 여러 가지다. 꽃잎이 겹겹이 쌓여서 화사함을 자랑한다. 체험관으로 돌아가서 꽃다발 만들기 체험을 하면 된다. 어린 손자를 태운 자전거 바구니에 한 다발 작약꽃을 실었다. 귀엽게 웃음 짓는 손자의 모습, 작약꽃을 실은 자전거가 아름답다. 아이들도 즐겁게 그늘 밑을 달려간다. 오후 내리쬐는 햇살에 아이들 볼이 빨갛다.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있다.
작약은 동서양에서 모두 볼 수 있는 꽃이다. 준 작약(Paeonia lactiflora)은 중국을 기원으로 하여 중앙아시아 및 남유럽 원산의 다년초 식물로 옛날부터 관상과 약용으로 재배되어 이용하여 왔다. 중국에서는 꽃 중에서 모란을 화왕(花王)이라 하여 제일로 꼽았고, 작약은 화상(花相)이라 하여 모란 다음의 꽃으로 여겨 왔는데 꽃의 색깔이 붉은색, 분홍색, 백색 등 다양하다
작약은 치유의 꽃으로 불린다. 작약의 속명인 패오니 아(Paeonia)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만물을 지배하는 여러 신들이 서로 싸울 때 받은 상처를 의사 패온(paeon)이 이 약초의 뿌리로 치료해 주었다 하여 그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작약에 전해 오는 슬픈 전설이 있다.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던 왕자와 공주가 있었다. 그러나 왕자가 전쟁터에 나가고 공주가 그를 기다리다 왕자가 전사했으리라는 소문을 듣게 된다. 공주는 소문에 반신반의하며 왕자가 사는 나라로 갔다. 안타깝게도 왕자는 정말 죽었고 그 자리에 모란꽃이 피어있었다고 한다. 이를 알게 된 후 슬픔에 잠긴 공주는 신에게 왕자와 함께하게 해달라고 기도했고, 이를 가엽게 여긴 신이 그의 부탁을 들어줘서 공주를 작약으로 만들어줬다고 한다.
꽃다발을 만들기 위해서는 몽우리 상태가 좋다. 꽃다발을 가져가서 실내에서 꽃병이 꽂아두면 2~3일이면 피어난다. 작약은 진액이 있다. 진액을 활용해서 화장품 원료로도 사용된다. 진액이 묻어있으면 개화에 방해가 된다. 꽃봉오리에 있는 진액을 따뜻한 물에 담근 후 살살 닦아주면 개화에 도움이 된다. 신선한 물을 갈아주면서 아름다운 작약을 오랫동안 감상하면 된다. 작약꽃을 보기 위해 마을로 사람들이 온다. 세상의 모든 일들은 좋고 나쁨이 따로 있지 않다. 비바람을 맞아야 아름다운 꽃을 피우듯 농부의 주름살도 펴치는 날이 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