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운 스포일러와 간략한 감상
총평
촉촉한 감성의 하이스트물, 차라리 가족 영화에 가까워
평점
이름만 대면 알 법한 멜라니 로랑이 감독과 주연을 맡고 〈가장 따뜻한 색, 블루〉의 아델 에그자르코풀로스와 〈모르텔〉의 마농 브레슈가 가세한 새로운 넷플릭스 영화. 물론 살아 있는 전설인 이자벨 아자니의 출연은 덤이다. 실력 있는 프랑스 여성 배우들을 한 화면 안에서 모두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점수를 주고 싶었지만, 영화 자체는 안타깝게도 그 수준에 미치지 못한 듯하다. 프랑스 특유의 섬세한 터치가 묻어나는 영화지만 정작 각본은 예상 가능한 수준으로 평이하고, 연출 역시 세련되었다고까진 말하긴 힘들며, 액션은 솔직히 다소 시시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등장인물들의 드라마와 감정선을 따라가는 걸 즐기는 관객이라면 호평할 수 있지 않을까. 배우들의 연기에 대해서는 크게 흠잡을 부분이 없다. 달리 말하면, 훌륭한 배우들의 연기력을 만끽하며 주요 인물들 간의 케미스트리를 느끼는 것이 이 영화의 전부다. 그러나 바로 그 점이야말로 〈여도둑들〉이 다른 하이스트 영화들과 구별되는 점이다. 촉촉한 감성 드라마와 하이스트 장르의 결합.
주연 등장인물들인 캐롤과 알렉스, 샘은 모두 범죄자들이지만 〈여도둑들〉은 그들의 화려하고 짜릿한 범죄 행각보다는 오히려 그들 사이의 우정과 사랑에 더욱 초점을 맞춘다. 이미 하이스트 장르의 교본으로 여겨지는 〈오션스〉 시리즈의 영향을 짙게 받은 부분도 보이는데, 특히 여성 간의 감정을 그린 점에서 〈오션스 8〉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모든 면에서 다소 중구난방 했던 〈오션스 8〉보다도 오히려 〈여도둑들〉 쪽이 훨씬 더 초점을 잘 잡고 있다고 느낀다. (물론 두 영화가 다 재미있다는 소리는 아니다.)
하이스트 영화를 자처하면서도 촉촉한 감성의 드라마에 치중하는 것이 과연 좋은 선택이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캐롤과 알렉스와 샘의 관계는 이전에 찾아볼 수 없던 따뜻하고도 단순한 느낌을 가져다준다. 그들의 관계를 단 한 마디로 요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족.
가족은 대개의 인간이 살면서 처음으로 접하는 가장 작은 규모의 사회 집단이다. 우리는 가족이 무엇인지 탐구하고 가족의 사랑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한다. 가족의 형태가 다양해진 현대 사회에 들어 이러한 생각들은 논의를 통해 더욱 발전해 가고 있다. 캐롤은 미혼모이자 싱글맘이며, 알렉스는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한 나머지 낮은 자존감을 연애를 통해 채우려 하고, 샘은 아주 젊은 나이에 사랑하던 아내와 사별했다. 모두 처음에는 비즈니스로 엮인 사이일 뿐이었지만 영화의 말미에서 세 여자들은 마침내 한 가족이 된다. 셋 모두가 가족의 상실을 경험했고, 사랑의 진실된 가치를 본능적으로 추구하지만 홀로 불투명한 앞날을 살아가는 고독한 현대 여성들이라는 점이 결국 그들을 하나로 묶어 주었던 까닭일까. 알렉스와 샘은 캐롤이 낳을 아이의 이름을 함께 고민하고, 캐롤은 샘의 상실감과 슬픔에 공감하며, 알렉스는 그 어떤 때라도 캐롤과 함께 살아가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공감과 유대는 강한 결속이다. 마침내는 누군가와 함께 삶의 고락을 헤치며 인생을 함께 살아가겠다는 사랑의 발로이다.
과연 무엇이 가족이며 진정한 가족의 조건은 무엇인가? 이 영화가 내어 놓은 해답은 사랑과 우정이다. 서로를 사랑하고 아끼며 함께 삶을 살아가려는 사람들이야말로 가족이라는 답은 '가족'의 가장 본질적인 가치를 탐구한다. 사실 〈여도둑들〉은 다른 그 어떤 장르보다도 가족 영화에 가장 가깝다고 느낀 이유다. 평생을 함께 살아온 반려이나 결코 법적인 배우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시대.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다는(혹은 못했다는) 이유만으로도 가족으로서의 그 어떤 권리도 인정되지 않는 시대. 완전한 타인과 동등한 한 가족으로 맺어질 수 있는 합법적인 방법이 결혼뿐인 사회적 제도의 한계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생활동반자법을 부르짖는 이 시대에, 가족의 진정한 가치과 새로운 형태를 고민하는 사람들의 눈에 캐롤과 알렉스와 샘의 관계는 아마 완전하고 또 아름다워 보일 것이다.
비록 〈여도둑들〉은 화끈한 액션과 짜릿한 반전이 기다리는 하이스트 영화로서는 미달일지라도, 따뜻한 코미디 드라마이자 가족 영화로서는 나름대로 괜찮은 점수를 가져간다. 감독 멜라니 로랑이 개인적으로 관심을 갖고 다루었던 주제인 만큼, 다음 작품에서의 발전을 더욱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