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밤까지 이어지는 야근이 끝나고 퇴근한다. 출근길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처럼 힘차게 출발한다. 어두컴컴한 골목길 사이 사이에 온갖 군상들이 있다. 길빵하는 사람부터 다른 사람의 시선은 아랑곶하지 않고 애정을 나누는 젊은 남녀까지. 그렇지만 이런 사람들이 밉지 않게 보이는 건 퇴근하는 길이 주는 마법일지도 모른다.
지하철에서 내리자 선선한 바람이 나를 맞이한다. 조금 가파른 언덕을 올라 흐르는 땀방울도 금새 가져가는 시원한 바람. 한결 가을이 가까이 다가온 것만 같다.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는 여럿 사람들. 지친 그들의 얼굴에 표정은 없지만 다들 두손만큼은 무겁게 무엇인가를 가져간다. 오늘만큼은 웃는 가족들 얼굴이 보고 싶어 무엇인가를 잔뜩 싸가나보다. 괜히 빈 손이 부끄러워진다.
'봄이'가 깰까봐 조심스레 집안으로 들어간다. 살금살금 들어가지만 괜한 기우였다. 살짝 방문을 열어보니 모녀는 이미 꿈나라로 떠난지 오래다. 굿나잇 뽀뽀를 하고 방으로 나온다.
샤워를 하고 소파에 잠깐 기대어 눈을 감는다. 숨막힐 것 같은 고요함이 다가온다. 창 밖으로 들어오는 달 빛이 괜시리 마음을 멜랑꼴리하게 한다. 노래 한곡을 들으며 오늘 하루를 마무리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