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내 이민자로 살아갈 날들에 미리 파이팅!
언어적인 한계를 가지고 외국에서 산다는 것은 항시 전류가 통하는 듯한 떨림 가운데 사는 것과 같다. 더구나 언어가 편하지 않은 사람이 생계를 위해 일을 할 때는 언제든 발생 가능한 돌발 상황에 대한 긴장과 알게 모르게 벌어지는 내재적 불이익이 수반됨을 감수해야 한다. 모국어가 아니기 때문에 말의 뉘앙스도 알 수 없고, 그것이 모욕인지 농담인지도 불분명한 데다 말이 마무리되는 것이 가능성인지 단정인지 의도를 내포한 것인지조차 알 수 없다는 한계도 있다. 불확실하고 익숙하지 않은 언어 자체가 빼앗아가는 자신감은 심리적으로 더 큰 부담을 얹는다. 항상 모호한 대화들에 둘러싸여 자신에 대한 확신이 희미해져 가고, 타인들은 언제나 낯설고 부담스럽다. 자존감이 바닥까지 떨어질 때는 그들은 항상 나를 무시하고 있다는 피해망상적인 생각을 하게 된다. 슬프게도 사실일 때가 많다.
이십 대였던 나는 절친했던 입사 동기와 함께 두려움은 컸으나 생존을 위한 기술의 하나로 마스터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절실함으로 서로를 부추기며 신문사 문화 센터 수영 강좌에 등록했다. 첫 수업, 아직까지는 실체 없는 두려움이기에 약간의 긴장을 하며 수영복과 수영모를 갖추고 풀장으로 향했다. 수면 위에 비친 하늘처럼 보이게 하려는 의도였을까. 습한 공기에 촘촘히 박힌 소독약 냄새를 푸른 바다 느낌으로 시각화하며 시선을 빼앗으려던 것이었을까. 2미터 수심의 수영장 바닥은 조악한 하늘색을 뒤집어쓰고 있었고, 내가 뛰어들기만을 기다리다가 순식간에 삼키려는 죽음의 공간처럼 잠잠했다.
첫날이었는지 몇 번의 레슨이 지났던 때였는지 모르겠지만, 입수를 해야 하는 시간이 있었다. 허우적거리든 수영을 하든 물속으로 뛰어든 사람들로 인해 풀장의 물은 요동을 치며 물방울들이 튕겨 올라오기 시작했고, 나는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을 소심하게 움찔거리며 어느 시간에 물속으로 뛰어들 것인가를 가늠하고 있었다. 친구는 아예 그런 생각조차 없이 내 뒤에서 내 이름을 부르며 “어떻게, 어떻게”를 연발하고 있었다.
무슨 용기였는지 몰라도 갑자기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의성어로만 배웠던 “첨벙”이라는 소리는 내 체중만큼의 음색으로 생생하게 발음을 했다. 숨을 참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모른 채 팔을 쭉 뻗고 힘껏 양다리를 어긋 맞추며 “첨벙첨벙”을 이어갔다. 놀랍게도 내 몸의 일부는 물 위에 떠서 앞으로 가고 있었다. 갑자기 두려운 생각에 발장구를 멈추었고, 나는 풀장의 어딘가 아직은 2미터 수심에 이르지 않은 곳에 멈추어 있었다. 뒤돌아보니 함께 물속 어딘가에 있어야 할 친구는 여전히 풀장의 가장자리에 서서는 두 손을 모으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만큼이나 물에 떠서 이동을 했다는 사실이 신기했기에 한껏 고양된 기분으로 출발점을 향해 또다시 숨도 쉬지 않고 팔을 뻗고 다리를 휘적거리기 시작했다. 도착. “넌 수영을 할 수 있네, 대단하다. 부러워. 난 물속으로 못 뛰어들겠어.” 친구는 애교를 섞어 넣은 콧소리로 한껏 부러움을 표했다. 그날만큼은 내가 앞으로 수영을 잘하게 될 것이라고 믿었다.
얼마지 않아 우리는 자유형의 호흡을 배웠다. 음, 파, 음, 파... 고개를 오른쪽으로, 팔은 이렇게 접고... 강사는 열심히 호흡을 가르쳤고, 우리는 물속에서 그 호흡법을 연습해야 했다. 수영을 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있던 내가 역시나 친구보다 먼저 풀장의 끄트머리에 서서 물속으로 호기롭게 뛰어들었다. 강사가 알려준 호흡법을 상기하며, 될 것이라 믿으며,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숨을 내쉬려는 지 들이쉬려는 지 하던 찰나, 다리부터 물속으로 빠져 들어가기 시작했다. 첫날 상상했던 것처럼 죽음의 공간으로 변신하기 시작하는 조악한 흐린 하늘색 바다...
수업 시간마다 강사의 목소리는 이 습하면서도 넓은 수영장 어디론가 항상 잘려 나가곤 했지만, 그 공간에서 울리며 부딪혀 왔던 소리들의 조각들조차 물속에서는 웅얼거리며 아득해져 갔다. 주변의 모든 배경들이 사라지고 이 막막함 속에 오직 나만이 존재하고 있다는 매우 고립적인 느낌이 들었다. 귀 속을 막아버리는 갑갑함도 두려웠지만 팔다리를 휘적거리는 노력과 달리 몸의 위아래도 가늠할 수 없게 되는 상태가 되자 공포스러웠다. 그렇게 몇 초간의 허우적거림 끝에 수면 위로 올라왔다. 엉겁결에.
코에 들어찬 물줄기가 주르륵 쏟아져 내렸지만 저 깊은 속은 아직 물로 가득 찬 채 소리도 들리지 않고 머릿속은 묵직하게 아파왔다. 나는 단 한 번의 실패한 호흡법으로 흐트러진 나의 무게 중심이 가져온, 생각지도 못한 수면 아래에 도사리고 있던 공포를 마주한 그날 이래, 수영을 내 생존 스킬 리스트에서 지워버렸다. 어떤 종류의 배도 구명조끼 없이는 타지 말 것, 그러나 더욱 최상의 선택은 배를 타지 않는 것이라는, 가장 안전하고 현실적인 대안을 알아차린 것이 소득이라면 소득이었다.
이민자로서 살아가면서 감수해야 하는 것들은 수없이 많지만, 그중에 가장 공포스러우면서도 대책이 없기에 쉽게 체념하게 되는 것은 십 수년의 정규 교육을 받고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왔던 한 사람의 성인으로서 구사할 수 있는 수준의 언어생활이다. 나열된 단어들과 함께 쪼개진 문장들, 떠올리려 해도 꺼낼 수 없는 적당한 단어들, 파괴된 문법 속에서 떠도는 품사들, 무례하리만큼 직선적인 화법, 맥락을 꿸 수 없도록 분열적인 흐름, 문장이 길어질수록 스스로가 헤매게 되는 구조.
언어의 한계는 자신의 이성과 지성이 적절히 표현되지 않아 지킬 수 없는 나 자신의 품위, 어떤 이유로든 함께 모국을 떠나 온 자녀의 삶에 부모로서 책임져 줄 수 없는 영역들이 존재한다는 것에 대한 미안함 등은 기본이고, 불시에 자존감을 무너뜨리는 복병으로 존재한다. 수영의 정석을 몰랐을 때는 두려움 가운데서도 어떻게든 발을 떼 몸을 던지는 정도의 용기는 낼 수 있었지만, 그저 폐에 저장된 양만큼의 산소로만 지탱할 수 있는 것이었다. 제대로 호흡을 하고 물을 즐기며 유영하기 위해선 단계적인 기술들도 필요하고 요령도 필요한데, 수영과는 달리 언어라는 것은 자신의 능력의 총량이 정해져 있는 듯한 생각이 든다. 맞닥뜨리게 된 이민의 삶의 현실은 언제나 물속에서 허우적거렸던 순간 먹먹하게 사라져 간 지상의 모든 작은 것들을 떠올리게 한다. 익숙한 소리, 손에 잡히지 않았지만 존재하며 삶을 가득 채웠던 산소, 혼자가 아닌 느낌, 그리고 안정감.
풀장에서 허우적거리는 듯한 기분으로 매일매일을 살고 있는 J를 보면 안타까움이 든다. 나는 흡사 물속으로 용기 있게 뛰어든 나를 보며 그것이 비록 숨을 쉬며 제대로 수영하는 것이 아니어도 물 위에 떠서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만도 부러워하던 나의 친구처럼 느껴진다. 외국에서 다른 나라 언어를 쓰면서 직장을 다니고 삶을 영위할 수 있게 하는 그 능력이라는 것이 얼마나 부럽고 대단하게 느껴졌는지. 그리고 그저 부러워서 언젠가 뛰어들고 싶은 풀장의 작위적인 흐린 하늘색 속으로 얼마간 사라진 친구를 보며 같이 공포스러워진 내 친구의 마음으로 J의 직장생활을 본다. 내가 풀장 밖에서 바라보는 한 수면 아래로 잠겨 버린 그의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다. 수영 강습은 떠나면 그만이지만, 직장은, 이민의 삶은 쉽게 그럴 수가 없다.
겨울이 깊어지면 새벽은 밤의 연장일 뿐 해는 뜰 기미가 없다. 영하 10도 아래로 떨어져 내린 수은주는 며칠째 오르지 않고 바람이라도 부는 날이면 족히 마이너스 10도 정도는 더해지는 새벽. 숫자만큼의 쓰라림으로 공기가 얼어붙고, 그래서 유독 ‘인정’이라고는 한 줄기도 없어 보이는 가로등의 하얗고 차가운 은색 불빛. 그것을 향해 J는 걷는다. 그의 머리가, 등이 그 불빛에 잠시 부서지고 나면 순식간에 어둠은 그의 무거운 뒷모습을 삼켜버린다. 그렇게 그의 뒷모습을 보는 겨울 새벽마다 가슴이 아리다.
나는 상상한다. 그래도, 그 어둠 속으로 사라진 그는, 요령도 경험도 없지만 뛰어들어야만 하기에 그 어설픈 흐린 하늘색으로 채워진 풀장 앞에 선 나처럼 사정없이 고개를 물속에 담근 채 있는 힘껏 팔다리를 휘저으며 몸을 물 위로 띄우는 중일 지도 모른다고. 물속에 뛰어든 친구가 마냥 대견하고 부러워서 멀리서 두 손을 모으며 나를 바라보던 친구처럼 돌아오면 던질 한 마디를 마음으로 되뇌며 그렇게 J의 퇴근을 기다린다. 당신, 수영의 정석을 배우지는 못했어도 인생은 정석으로 배우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