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로, 목장갑 그리고 도시락
겨울이면 문득문득 따스한 수증기가 뿌옇게 시야를 흐리던 국민(초등) 학교 5학년 교실이 떠오르곤 한다. 담임 선생님에 대한 기억은 많이 남아있지 않지만, 작은 키에 조금 통통하신 편이었고 앞머리까지 고불거리는 어깨길이의 파마머리에 주로 무릎 아래까지 오는 치마를 즐겨 입으시던 분이었다는 것만은 선명히 기억한다.
보통 겨울이면 교실 중앙에 일명 조개탄이라 불렸던 송편 모양의 석탄을 때는 큰 난로가 놓였고, 기역자로 꺾여 창 밖으로 나가는 연통이 길게 연결되어 있고, 그 이음새는 은색 테이프가 감겨 있었다. 석탄을 가져오는 것은 당번의 할 일이었지만 난로를 피우는 것은 선생님의 일이었다. 아침에 교실에 들어서면 열린 창문 사이로 막 쫓겨난 연기의 일부가 남아 있고, 서서히 공기가 데워지기 시작한다. 난로 주변의 책상에 앉은 아이들의 얼굴은 열기를 이기지 못하고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고, 그 반경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앉은 아이들은 친구들의 몸이 겹겹이 열기를 가려버려 손가락 끝도, 발끝도 시린 채로 난로 앞에서 불을 쬘 쉬는 시간이 오기만을 기다릴 뿐이었다. 가장 인기가 많은 자리는 단연 난로로부터 두 번째 줄이었다. 난로 앞에 앉은 친구의 등 뒤에 숨으면 몸은 살짝 오한이 나지만 한쪽만 달아오른 뺨을 식힐 수 있는 딱 적당한 온도가 되었으니 말이다.
난로를 때기 시작한 때로부터 며칠이 되지 않아 담임 선생님은 물을 가득 채우면 두 손으로 들어 올리기에 버거울만큼 커다란 양은 주전자를 구해 오셨다. 난로 위에 올려놓을 때면 그 무게를 지탱하기 위해 살짝 들린 발꿈치와 함께 선생님의 어깨도 한껏 올라가곤 했다. 그리고 뚜껑을 열고 볶은 보리를 한 줌쯤 넣으셨다. 1교시가 끝날 무렵이 되면 달아오른 난로의 열기를 이기지 못한 양은 주전자에선 보리향이 나는 수증기가 뚜껑을 달그락달그락 들썩이며 무섭게 뿜어져 오르기 시작했고, 교실 창문에 자리 잡았던 성에는 어느새 녹고 김으로 뿌옇게 뒤덮인 창문 탓에 온종일 눈이 내린 날처럼 아득한 기분이 들곤 했다. 창가에 앉은 아이들은 찬 공기를 견뎌낸 노고에 대한 소박한 보상처럼 그들만이 가질 수 있는 창문의 흰 도화지에 손가락으로 낙서를 하곤 했고, 창문은 손가락을 따라 주르륵 흘러내린 물줄기로 얼룩덜룩해지곤 했다.
그 시기 서울 변두리 학교가 대부분 그랬을 테지만, 크지는 않아도 빈부의 격차가 여러 모로 드러나던 교실이었다. 낡은 체육복을 단벌로 며칠이고 입고 다니던 남자아이들이 있는가 하면 겨울 부츠에, 부들부들 털이 날리던 앙고라 벙어리장갑까지 낄 수 있을 만큼 형편이 넉넉한 아이들도 있었고, 단정히 머리를 땋고 알록달록한 머리핀과 끈으로 치장을 한 여자 아이들이 있는가 하면 바가지 머리로 자른 단발도 쉽게 더벅머리로 보일 만큼 제대로 머리를 감고 올 상황조차 되지 않는 아이들이 한 교실에 섞여 있던 시절이었다. 당시는 도시락만으로도 가정의 형편이 여실히 드러났다. 스테인리스 스틸로 만들어진 밥통과 플라스틱 반찬 통이 세트인 보온 도시락을 가진 아이들은 온기가 완전히 가시지 않은 도시락을 먹을 수 있었지만, 네모난 양은 도시락에 담긴 밥은 점심시간이면 차갑게 식어버리곤 했다.
선생님은 2교시던가 3교시쯤 되면 양은 도시락통으로 점심을 싸 온 아이들의 도시락을 걷으셨다. 양은 도시락 뚜껑을 열어 식은 밥 위에 주전자의 물을 조금씩 넣고는 뜨겁게 끓은 주전자를 내리고 난 자리에 목장갑을 낀 채 도시락통들을 동그랗게 둘러놓으셨다. 때로는 2층으로 혹은 3층으로 쌓아 올린 도시락에선 얼마지 않아 고소한 누룽지 냄새가 솔솔 나기 시작했다. 선생님은 수업 중간중간 모든 도시락이 난로의 열기라는 특혜를 고루 누릴 수 있도록 도시락의 위치를 바꿔 올려 두셨다. 점심시간이 될 무렵이면 이미 교실은 적당히 식어간 따스한 보리차의 수증기와 누룽지 냄새로 가득했고, 그 냄새와 적당한 습도는 내 식욕을 알맞게 끌어올려 주었다.
보온밥통이라 해도 내 도시락의 밥은 대체로 미지근하게 식어 있었고, 플라스틱 뚜껑에 고인 밥 냄새는 그리 유쾌한 냄새도 아니었다. 내 옆에 앉은 짝이 선생님이 목장갑을 낀 채로 꺼내 내려주신 도시락 통의 뚜껑을 열자 김이 오르며 누룽지 냄새가 확 끼쳐왔다. 그때만큼은 그 양은 도시락을 가진 아이들이 식은 보온밥통에 담긴 밥을 부러워하지 않았을 것임은 분명하다. 그 겨울은 그렇게 따뜻하고 고소한 향으로 가득했다.
크리스마스를 몇 주 앞둔 어느 날, 선생님은 미술 시간에 크리스마스 카드를 만들겠다며 재료들을 적어 주셨다. 못 쓰게 된 칫솔 하나, 물감과 크레파스, 색종이, 풀, 가위 그리고 탈지면 등이 준비물의 긴 리스트에 올라있었다. 아이들 모두 자신의 카드 만들기에 집중한 탓에 삭삭거리는 가위질 소리나 풀 뚜껑 떨어지는 소리, 팔레트에 붓을 적시는 소리, 물통에 붓을 담그고 휘저으며 내는 찰랑찰랑 정도의 작은 소란함 외에는 너무도 잠잠한 시간이었다.
나는 삼각형 모양으로 뾰족한 전나무를 그리고, 얇은 초승달과 별을 하늘에 그려 넣고, 옹기종기 모여 있는 작은 집들을 그렸다. 그리고 어둡고 고요한 겨울밤을 짙고 어두운 남색으로 칠했다. 내 책상 쪽으로 다가온 선생님은 내게 칫솔을 하얀 물감이 담긴 팔레트에 적신 후 두 번째 손가락으로 살살 튕겨내라고 하셨다. 작은 물방울들이 그림 속 어두운 하늘 위로 눈처럼 튕겨나갔다. 뒤집어 놓은 스노글로브(Snow Globe) 속에서 천천히 부유하는 작은 눈 알갱이들처럼 도화지 위에 날아다니는 작은 눈송이들. 나의 작고 고요하고 어두웠던 마을엔 그렇게 눈이 내렸다. 그 느낌 때문이었을까 그날의 미술 시간은 난로 때문인지 내 작은 마을을 그리느라 집중한 탓인지 한껏 상기된 볼과 축축한 수증기가 엉긴 공기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