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를 사다

by 난척선생

당근마켓에서 카메라를 구매했다.

카메라로 말하자면 이번이 4번째인데, 매번 생각만큼 그렇게 자주 사용하지는 못했다. 새 카메라를 손에 쥐게 되면 한 동안은 밖으로 나가 꽤나 열정적으로 셔터를 눌러대지만, 시간이 지나면 사진에 대한 관심과 열정이 식어버린 탓이다. 그렇지만 카메라를 바꾸게 되는 주된 이유는 이런 마음이 문제가 아니라 '휴대성' 때문이라고 억지 변명을 해본다.


지금까지 카메라를 고를 땐 늘 휴대성을 따져 작고 가벼운 것으로 선택하고는 있지만 카메라와 렌즈, 그리고 기타 기재들, 또 이걸 담을 가방까지... 이걸 전부 챙기고 출사를 나가거나, 여행 중에 휴대하기란 여간 성가신 일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요즘 휴대폰의 카메라 기능은 편의성은 말할 것도 없고, 화질도 꽤 쓸만해서 기존의 렌즈 교환식 카메라는 짐스럽게 느껴졌다. 점점 카메라 가방을 들고 외출하는 것에서 멀어지더니, 결국 여행이나 특별한 이벤트가 있는 날마저도 카메라를 챙기지 않게 되었다. 급기야 지난해 봄에는 옷장 한 구석에서 짐짝처럼 박혀있던 카메라와 렌즈, 가방 일체를 헐값에 처분해 버린 상태였다. 그 뒤로 여행이나 친구들과 모임 그리고 일상을 기록할 때면 으레 아이폰을 사용하고 있는데, 특별한 불편함이나 아쉬움은 아직까지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지난 추석연휴 기간 중이었다.

텔레비전에서 영화감독 박찬욱의 다큐멘터리를 우연히 보게 되었다. 영화 '어쩔 수가 없다'로 베니스 영화제에 참석한 감독이 '라이카'를 손에 쥐고 기자진을 향해 셔터를 누르는 모습이 화면에 나왔다.

또 추석 전 온 가족이 모여 외식을 할 때였는데, 고등학생인 조카 녀석이 사진 찍는 취미가 생겼다며 중고 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보여줬다.

그때부터였다. 내 안에서 똬리를 틀고 있던 욕망이 서서히 꿈틀대면서 부풀어 올라왔다.

연휴 동안 스마트폰으로 틈만 나면 카메라를 검색하고 유튜브를 시청했다. 그런 나를 보던 아내가 말했다.

“왜, 카메라 사려고? 자기는 스마트폰으로도 그럭저럭 잘 찍는데, 카메라가 또 필요할까? 이번에도 귀찮아서 들고 다니지 않을 걸.”

나는 아내의 이 말을 새겨들었다. 하지만 인간이란 욕심을 끊지 못하는 동물이다. 다음 순간, 내 뇌는 생각의 전환과 편집을 통해 합리화를 빠르게 이루어냈다.

"음... 맞는 말이야. 아내의 말처럼 이번에도 그럴 가능성이 높아. 예전처럼 렌즈 교환식 카메라를 산다면 말이지. 그러니까 이번엔 렌즈 교환식이 아니라 '똑딱이' 카메라야만 해. 그것도 한 손에 꼭 들어오는 휴대폰 정도의 크기와 무게라야 하는 거야."

스마트폰의 카메라 성능이 나쁘지 않은데, 굳이 카메라를 구입해야만 하는 이유도 찾아야 했다.

"음... 스마트폰으로는 느끼기 힘든, 카메라만이 지니고 있는 감성과 셔터를 누를 때 느끼는 '찍는 맛'이란 게 있으니까. 더군다나 스마트폰으로는 온전한 카메라의 기능과 역할을 수행하기는 아무래도 벅차지."

일상생활에서 스마트폰은 너무나도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기에, 카메라의 기능에 집중하기 어렵다는 합당한 이유를 찾아냈다.

스마트폰으로는 특별한 이벤트가 없다면, 일상 속에서 의도적으로 피사체를 골라 구도를 잡고 사진을 찍는 습관이 생기지 않는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 여러 쓰임새를 가진 스마트폰으로는 제대로 된 사진을 찍기는 것이 쉽지 않고, 이른바 '카메라'라고 불리는 물건을 손에 쥐고 있어야만 배경과 구도, 대상을 관찰하고 편집하는 미세한 시선을 갖게 된다는 나름의 합리화를 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스마트폰 보다 작고 가벼운 카메라를 손에 쥐게 된다면 자주 휴대할 수 있을 것이며, 사진작가는 아니지만 적어도 사진가의 눈으로 대상을 물색하고 관찰하게 되리라는 것이 또다시 카메라를 사야만 하는 이유와 변명인 것이다.

"음... 그럴 듯 해! 스스로가 설득되는 만족스러운 이유야. 자, 그러면 이제 적당한 카메라를 한 번 찾아볼까.”

나는 전부터 마음에 두고 있던 모델인 ‘후지 X100vi’를 깨끗이 지워버리고, 휴대성을 최우선으로 고려해 크기와 무게에 초점을 맞춘 뒤, 그다음으로 성능을 따졌다. 이렇게 해서 선별된 몇몇 카메라를 추석연휴 사나흘 동안 유튜브와 온라인 플랫폼에서 비교 분석한 뒤 마침내 한 브랜드의 카메라로 마음을 굳혔다.

새 카메라를 구입할 때면, 30년 전의 일이 떠오른다.

앞날이 암울하고 흐릿하게만 느껴지던 대학교 3학년 1학기 개강을 앞둔 무렵이었다. 수강신청 과목을 살피던 중 미대에 개설된 사진실습 과목이 눈에 들어왔고, 망설임 없이 수강신청을 했다.

실습 위주의 강의라 당연히 카메라가 필요했고, 나는 아버지의 '니콘 FM2'(일본 니콘사의 필름 카메라 모델)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이 카메라는 외삼촌이 80년대 중반에 사우디로 일하러 가서 귀국길에 사 온 것이었는데, 아버지는 이걸 외삼촌에게서 거의 뺏다시피 구매했었다. 이 니콘 FM2는 사진을 취미로 하는 사람들에게 꽤 인기가 있는 모델이었고, 그 당시 아버지의 '보물 1호'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중학생이 되면서부터 반항의 눈빛을 보내고 있는 아들 녀석이 대학 수업시간에 사용할 테니 당신의 '보물 1호'를 한 학기 동안 빌려 달라고 한 것이다. 아버지 성격으로 보아, 평소 관계가 좋다 하더라도 이 '보물 1호'를 빌려주기란 쉽지 않은 일인데, 늘 삐딱한 아들이 그걸 빌려달라고 한다면야...

아버지의 반응은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아버지는 내 뻔뻔한? 요구를 탐탁지 않게 여겼고, 학교수업에 '이렇게 좋은 카메라'(좋은 카메라는 맞지만 '이렇게'라는 말은 좀 과장된 표현이다)가 굳이 필요한지 모르겠다며 투덜거렸다. 그렇다고 적당한 카메라를 사줄 형편은 되지 않았으니 당신의 '보물 1호'를 빌려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 그저 못 마땅했고, 자신에 비해 꼼꼼하지 못한 아들이 못 미더웠을 것이다.(누가 아버지의 철저함과 꼼꼼함을 따라올 수 있을까. 적어도 그때까지 내 주변사람들 중 아버지를 따라올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감히 단언한다.)

일주일에 한 번이었지만, 아버지는 당신의 '보물 1호'가 수중에서 벋어난다는 것이 내키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빌려줄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보물 1호'라고는 하지만 아들놈이 공부를 하겠다는데 그걸 거절할 명분은 충분치 않았을 것이다.

수차례의 당부와 경고 끝에 겨우 허락은 받았지만 아버지의 어마어마한 잔소리는 각오해야 했고, 한편으로는 내가 그걸 견딜 수 있을지 걱정도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이런 아버지의 성정에 늘 숨이 막혔고, 그런 아버지를 볼 때면 짜증부터 치밀어 올랐기 때문이다.

아무튼 사진수업은 재미있었다.

포지티브 필름으로 사진을 찍고 슬라이드 마운트 현상을 한 뒤, 함께 모여서 슬라이드 환등기를 통해 사진을 보며 이런저런 품평을 했으며, 드라마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캄캄한 암실에 들어가 필름을 넣고 약품을 흔들며 현상을 하고 인화도 직접 해보는 것은 신기하고 소중한 경험이었다.

또한 수업이 실습위주로 진행되다 보니 야외촬영을 자주 나갔는데, 묵직한 카메라를 목에 걸고 거리를 다니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뷰 파인더에 눈을 대고 피사체를 촬영하고 있노라면 사진작가라도 되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고, 이런 상황이 뭔가 ‘있어 보이는‘ 듯한 그럴듯한 느낌을 주었다. 사진을 배우고 찍는 것도 재미있었지만, 소위 '간지 나는' 느낌도 무시할 수는 젊은 시절의 재미거리 중에 하나였다.

사진수업이 있는 날은 설레는 마음으로 집을 나섰지만,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아버지의 잔소리가 기다리고 있었다. 카메라를 반납할 때면 아버지는 꼼꼼히 점검을 한 뒤 이런저런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이걸 이렇게 허술하게 풀어두게 되면, 분실할 위험이 높은데, 이 부품은 구하기가 힘들다!"

"카메라 끈을 이렇게 묶어 두면 어떻게 하냐!"

"사용한 뒤에는 항상 먼지를 제거해서 닦아야지. 이게 뭐냐! 물건을 빌려 썼으면 깨끗하게 해서 돌려줘야지! 쯧쯧"


내 젊은 날의 콧대 높던 자존심과 막무가내인 고집은 아버지의 잔소리를 더 부추겼다. ’보물 1호‘를 돌려줄 때는 한껏 신경을 써도 모자랄 판에, 아버지에 대한 반발심으로 카메라를 가방에다 아무렇게나 넣어둔 탓에 잔소리가 그치지 않았던 것이다.

이런 잔소리는 한순간도 듣고 싶지는 않았지만, 아버지를 거스르고 싶은 삐딱한 마음에, 학기가 끝날 때까지는 꾹꾹 참아야 했다. 돌이켜보면 거칠고 투박했고 현명하지 못한 행동이었지만, 젊은 날의 어쩔 수 없는 내 모습이었다.

사진을 찍다 보니 어느새 스물셋의 여름이 와 있었다.

좋았지만(카메라 수업), 싫었던(아버지의 잔소리) 수업이 끝날 무렵엔 사진에 대한 관심과 열정이 제법 올라왔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본격적으로 사진을 찍어 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카메라를 빌릴 때마다 아버지를 상대하기는 싫었다. 그렇다고 중고 카메라를 구입할 돈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땐 아쉬움도 컸지만, 지금에 와서 보니 별다른 후회는 남지 않는다.

짐작건대 사진에 대한 열정이 진실로 크고 깊었다면 아버지의 잔소리 정도는 거뜬히 감당했을 테고, 그게 싫다면 아르바이트를 해서라도 중고 카메라 정도는 장만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 정도까지 사진에 절실하거나 좋아한 것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 사진은 거기까지였고 자연스레 접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시간은 흐르고 흘러, 생에 첫 카메라를 구입한 것은 회사에서 몇 번의 보너스를 받고 난 뒤였다.

그 무렵 사진은 필름 카메라에서 디지털카메라의 시대로 넘어와 있었기에 디지털카메라를 신중하게 골랐다. 그렇게 선택한 첫 카메라가 니콘에서 출시된 보급용 '쿨픽스 5700'이었다.

디지털카메라에 대해 많은 정보를 주던 ‘디시인사이드’에서 공동구매한 카메라를 언박싱하던 날, 내가 번돈으로 드디어 카메라를 샀다는 것이 좋았고 은근히 자랑스러웠다.

카메라를 구입했으니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촬영을 하고, 어쩌면 사진작가처럼 멋진 사진을 찍게 될 거라는 상상으로 한껏 부풀어 올랐지만, 구입 후 두 달 정도 지나자 앞서 말했던 것처럼 카메라를 들게 되는 빈도는 점점 줄어들었다.

결혼을 한 뒤에는 아이들의 스냅사진을 찍을 요량으로 '똑딱이 카메라'를 추가로 구입했다. '삼성 vluu PL70' 모델이었는데, 이 깜찍한 카메라는 지난주에 당근마켓에 올리자, 며칠 뒤 대학생으로 보이는 여성이 나타나 밝게 웃으며 고맙다는 말을 하며 가져갔다.

나의 세 번째 카메라는 성과급을 넉넉하게 받았던 어느 해, 제법 욕심을 앞세워서 구입했다. 이번에는 사진을 제대로 찍어보자는 생각에 캐논 EOS바디와 50mm 표준렌즈와 80mm 망원렌즈, 광각렌즈 등을 야심 차게 구입했다. 상당한 돈을 들여 구입한 이 캐논 역시, 앞선 두 카메라와 같은 과정을 거치며 옷장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처지가 되었다.


매번 카메라를 구입할 때면 아버지의 '니콘 FM2'가 불쑥 튀어 올라왔다.

아마 청춘의 한때, 낭만으로 좋아했던 사진, 돈 없던 대학생은 할 수 없었던 취미를, 이제는 할 수 있게 됐다는 사실과 내가 번 돈으로 나름의 사치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삼십 년 전의 아버지를 향해 마음속으로 소심한 복수라도 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다시 시간은 흘러 지난겨울 어느 날, 아버지로부터 전화가 왔다.

내용인 즉, 아버지의 '보물 1호'를 줄 테니 필요하면 가져가 사용하라는 이야기였다.

그 순간, 늙은 아버지에 대해 고맙고 측은한 마음이 들기보다는, 약간의 원망과 짜증스러움이 일어났다. 그건 바로 30년 전 묵은 앙금이었다.

나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진작에, 그게 필요했던 30년 전에 인심 한번 쓰시지. 이제 와서… 쓸데없는 필름 카메라를 줘봐야, 무슨 소용이람.'

아버지의 파란만장했던 '니콘 FM2'는 이제 보물은커녕 더 이상 쓰지 않는 물건이 되어 버린 채였다. 그런데 이제 와서 내게 물려주겠다는 거였다. 이런 생각이 들자 한때 아버지의 '보물 1호'는 '고물 1호'처럼 느껴졌다. 물론 아버지에게는 더 이상 '보물 1호'는 아닐지언정 적어도 '고물'로 취급받을 물건은 아닐 것이다. 그건 수십 년 동안의 아버지의 애정이 그득그득 담겨있기 때문이다. 그런 탓에 카메라에 쏟은 아버지의 수십 년 간의 정성이 오히려 부담스러웠다.

휴대폰으로 전해지는 아버지의 목소리에 나는 잠시동안 침묵을 지켰다. 그리고 낮고 조용하게, 짧은 대답을 했다.

"네, 가져갈게요."

조금 전 카메라가 배달되었다는 택배사의 알림톡이 왔다. 며칠 전 구매한 카메라가 도착했다는 소식에 잠시 설렜지만 예전만큼은 아닌 것 같다. 이제는 사진에 대한 기대치가 살짝 빠져있기 때문일 거다.

이 카메라로 도시의 풍경들을 주로 담아 볼 생각이다. 사진을 향한 욕심은 덜어내고, 무심한 듯 주머니에서 카메라를 꺼내 셔터를 자주 누를 생각이다.


새로운 카메라가 내 손에 들어오자, 또다시 베란다 수납장에서 깊게 잠든 아버지의 '보물 1호'가 떠오른다.

커다란 카메라 가방에 담긴 '니콘 FM2 바디와 모터 드라이브, 5개의 각종 렌즈, 묵직한 삼각대와 기타 기자재' 등을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 중이다.

아버지의 손때 묻은 이 카메라를 당근 마켓에 확 올려버릴까. 아니면 가끔 아버지의 추억을 새기며 계속 이렇게 보관할까. 그럴 일은 없어 보이지만, 이 묵직한 보물을 손에 들고 밖으로 나서 볼까.


이번에 다시 카메라를 구입하면서, 그리고 베란다 수납장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한때의 아버지의 '보물 1호'를 보며 든 생각이다.

'나이 들수록 삶은 심플하게, 생각 또한 심플하게.'

Through owning less,

with a simple life and simple thinking.


또 모를 일이다. 이 카메라 역시 시간이 지나면 옷장 한구석에 처박혀 있을지도.

열정은 시간 속에 식어가고, 삶 또한 마찬가지로 시간 속에서 식어가는 중이니까. 삶은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것이니까.

또 하나의 욕심 '리코 GR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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