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관의 비밀 (1)

by 온실라

당장이라도 모든 것을 다 털어놓을 것 같은 표정을 지었던 하윤은 의외로 입을 다물고 한동안 노아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기만 했다. 노아는 그런 하윤을 재촉하지 않고 미소를 유지했다. 오히려 중간에 정민이 살짝 조급해질 뻔 했지만, 노아를 믿고 일단 기다렸다. 노아는 하윤이 결국 모든 것을 털어놓을 수밖에 없다고 확실하는 눈빛이었다.


“......아마 다른 사람들한테는 이 이야기를 절대 하지 않겠지요.”


하윤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이번엔 정민 쪽을 보고 있었다. 정민은 하윤의 눈에 언뜻 불안감이 스쳐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한 가지 약속해주실 수 있습니까, 두 분?”


“무엇입니까?”


“제가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를 절대 기사화하지 않는 겁니다.”


하윤이 무겁게 한숨을 내쉬었다.


“특히 정민 기자님에게 부탁드리고 싶군요. 이 비밀을 지켜주셨으면 합니다. 아마 대다수의 사람들은 저도, 도훈 선배도 이해하지 못할 테니까요.”


“약속할게요.”


정민이 얼른 대답했다. 사실 그녀는 하윤이 하려는 이야기가 무엇인지 궁금해 견딜 수가 없었다. 문화부 기자들은 물론이고 대중 앞에서 늘 고고한 신비주의를 유지하던 하윤이 드디어 민낯을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작가님이 여기서 하는 모든 이야기는 무덤까지 가져갈게요. 안심하고 말해도 됩니다.”


“......감사합니다.”


하윤이 씁쓸한 웃음을 흘리며 대답했다. 정민은 그때 느꼈다. 하윤은 정민도 아마 자신을 이해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노아 기자님.”


다시 노아 쪽을 돌아보며 하윤이 말을 계속했다.


“저는 예술가입니다. 화가지요. 그래서 늘 예술적 영감에 목말라 있습니다. 저의 재능을 폭발시킬 영감과 에너지를 얻는데 말입니다.”


“이해합니다.”


노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저 역시 미스터리한 사건을 쫓는 게 좋아서 이 일을 하고 있는 거니까요.”


“그렇다면 기자님에게는 미스터리가 동기부여가 되겠군요.”


하윤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 뒤틀리고 흉측한 미소에 정민은 자신도 모르게 흠칫했다.


“그럼 제 가장 큰 동기부여가 무엇인지 압니까?”


“글쎄요. 뭔가요?”


“그건 모두에게 천재라고 추앙받는 제 자신입니다.”


하윤이 잠시 눈을 감았다 떴다. 그는 왠지 후련해보였다.


“좀 더 정확히 정의하자면 우월감 같은 거라고 생각합니다. 최고의 천재라는 찬사, 선망어린 시선, 나보다 못한 자들의 부러움과 질시. 그것들이 제게 영감을 부어줍니다. 넘치도록 부어주지요. 선택받은 천재라는 기분을 만끽하기 위해, 그 호칭을 유지하기 위해 저는 계속해서 그림을 그리는 거지요. 그것도 모자라 자기만의 세상에 빠져 사는 천재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평소에는 가면을 쓰고 삽니다. 언제나 흐리멍덩한 눈으로 다니며 최대한 말을 아끼는 거지요. 그럴 수록 사람들은 더욱 열광하니까요. 그리고 그들이 더욱 열광할 수록 전 더욱 더 큰 동력을 얻고…….”


생각만해도 벅차오르는지 하윤이 말을 하다 말고 깊은 숨을 한 번 내쉬었다. 정민은 하윤의 말을 듣고 너무 어이가 없어 입이 살짝 벌리고 말았다. 하윤의 말 그대로였다. 정민도 하윤의 4차원적인, 어찌 보면 사회성이 결여된 듯한 말과 태도를 보며 역시 천재라 다른 사람들과 다른가보다 하고 납득하며 넘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 모든 게 다 그저 이미지 메이킹을 위한 컨셉에 지나지 않았다니…….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찬사만이 제게 영감을 주는 것은 아닙니다. 저를 질투하며 공격하는 사람들을 보면서도 전 같은 에너지를 받습니다. 그래서 제 예술적 영감은 우월감에서 나온다고 한 겁니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그렇게 말하고 있긴 했지만, 하윤은 그다지 부끄러워하는 얼굴은 아니었다. 아마 그런 감정을 예술적 영감의 원천으로 삼는 게 부끄러운 게 아니라, 이게 다른 사람들에게 떳떳하게 밝힐 수 있는 사정은 아니라는 걸 인지하고 있어서 부끄럽다고 표현하는 것일 것이다.


“그런데 저와 정반대의 사람도 있었습니다. 저와 정반대의 감정에서 예술적 영감을 얻는 화가. 그게 도훈 선배였습니다.”


“흥미로운 이야기군요.”


노아의 미소가 짙어졌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물론입니다.”


하윤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저도 이상한 놈이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도훈 선배도 저만큼이나 이상하고, 뒤틀린 사람이었습니다. 도훈 선배는 부정적인 감정에서 영감을 얻었습니다. 그것이 도훈 선배의 원동력이었죠. 도훈 선배가 괜히 모든 사람들에게 시비를 걸며 미움을 샀던 게 아닙니다. 단순히 성격이 나빠서가 아니에요. 타인과 다툼으로써 발생하는 모든 부정적인 감정, 그게 미움이든 분노든 경멸이든 뭐든…… 도훈 선배에게 활력을 줬죠. 그리고 저와 마찬가지로…….”


여기서 하윤은 잠시 말을 멈췄다. 그러나 곧 다시 입을 열었다.


“...... 도훈 선배는 적극적으로 이러한 부정적인 감정들을 얻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게 도훈 선배에게 영감을 부어주니까요. 그랬기 때문에…… 도훈 선배에게 저는 무엇보다 좋은 예술적 원천이었습니다.”


“그게 무슨 뜻이죠?”


“열등감. 이것도 도훈 선배에게는 강력한 에너지였거든요. 그래서 도훈 선배는 저를 표적으로 삼아 공격하기 시작했죠. 1등이 될 수 없는 2등짜리 재능이 1등 천재를 질시하다 못해 온갖 추잡한 행패를 부리는 모습…… 사람들 눈에는 그렇게만 보였겠죠. 실제로 도훈 선배가 의도한 그림이었구요. 저에게 열등의식을 불태우며 도훈 선배는 에술적 동력을 얻고 있었던 겁니다. 도훈 선배가 지금까지 제게 한 모든 말과 행동은 감정을 절제 못해 폭발한 게 아니라 다분히 의도적으로 한 거란 거죠.”


“그렇군요.”


놀라서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는 정민과 달리 노아는 태연자약하게 하윤의 말에 반응했다. 한국 미술계를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는 노아였기에 가능한 반응이었다.


“그러니까 하윤 씨 말에 의하면 하윤 씨를 향한 피해자의 공격적인 태도는 어디까지나 스스로의 예술활동을 위한 의도된 행동에 불과했을 뿐 진짜로 하윤 씨에게 가진 악감정에 비롯된 게 아니라는 거군요?”


“그렇습니다.”


하윤이 크게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상부상조했죠. 도훈 선배와.”


“그건 무슨 뜻입니까?”


“말했잖습니까. 제 예술적 영감의 근원은 우월감입니다. 그런데 저를 향해 열등감을 불태우는 2인자가 있습니다. 저만 없었다면 틀림없이 1인자가 됐을 수 있는, 저보다 못한 천재가 말입니다. 도훈 선배의 존재 자체가 제게는 아찔할 정도의 짜릿함을 불러왔습니다. 마치 살리에르를 보는 모짜르트가 된 기분이었죠.”


다시 한 번 하윤이 깊은 숨을 내쉬었다. 정민은 어이가 없었다. 도훈에 대해 떠드는 하윤이 진심으로 고조된 감정을 보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와 도훈 선배는 서로를 이용했습니다. 누구도 모르는 우리 둘만의 연극이었습니다. 도훈 선배는 저를 볼 때마다 열등감을 드러내고, 전 그걸 고고하게 받아내고. 그렇게 서로를 이용해 계속해서 창의적인 에너지를 얻는 거였죠.”


“.......”


“이번 특별 전시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도훈 선배가 제 단독 전시회를 망쳐서 화가 났었냐구요? 전혀 아닙니다. 전 도훈 선배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도훈 선배는 단순히 새로운 동기부여를 위해 저를 방해하는 척 하고 있을 뿐이었어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1등에게 훼방을 놓으려는 2등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었던 겁니다. 전 그래서 제 역할에 충실했죠. 도훈 선배의 제안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아량을 베품과 동시에 도훈 선배 작품 전시를 일부러 서관 1층으로만 한정할 것을 요구했죠. 기자님 말대로입니다. 누구라도 그 꼴을 보면 저와 도훈 선배의 위상을 비교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겁니다. 그리고 그게 바로 제가 노리는 바였구요.”


“하지만 피해자는 그 제의를 거절하지 않았습니까?”


“도훈 선배는 본인의 역할을 계속 수행해야하니까요. 선배는 결국 그 조건을 수락했을 겁니다. 더 이상 협상의 여지가 없어서가 아니라, 그렇게 사람들 앞에서 비교 당하며 손가락질 받는 게 오히려 선배가 노리는 바였을 테니까요.”


하윤의 말이 계속될 수록 정민은 머리가 아파왔다. 그녀는 하윤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만약 하윤의 말이 전부 사실이라면, 하윤이나 도훈이나 똑같은, 정민 같은 사람은 절대 이해할 수 없는 미친 사람들에 불과했다. 두 사람의 예술성만큼은 진심으로 인정하고 있었던 정민이었기에 드러나는 둘의 민낯이 더욱 충격으로 다가왔다.


“잘 들었습니다. 재미있는 이야기입니다.”


노아만은 여전히 얼굴빛 하나 변하지 않고 싱글벙글이었다.


“하윤 씨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이것인 것 같군요. 동기. 하윤 씨에게는 피해자를 살해할 동기가 전혀 없다. 왜냐하면 겉으로 보기에는 철천지 원수 같았던 두 사람의 관계가 사실은 서로 돕는 공생 관계였으니까요.”


“바로 그겁니다. 전 도훈 선배를 죽일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도훈 선배가 계속 2인자 자리에 머물러 주는 게 제게 더 큰 힘이 됩니다.”


“하윤 씨는 피해자 분과 이 문제에 대해 얘기를 해본 적이 있습니까? 도훈 씨가 말하는 피해자에 대한 부분은, 피해자 본인이 직접 고백한 내용인가요?”


“이것에 관해 도훈 선배와 이야기를 주고 받은 적은 없습니다.”


하윤이 살짝 움츠러들었다.


“다만…… 말하지 않아도 서로 아는 거지요. 서로가 어떤 인간인지 말입니다. 도훈 선배와 전 결은 다르지만 비슷한 인간이니까요…….”


“그렇다면 지금까지 하윤 씨가 한 말이 사실이라는 증거는 어디에 있습니까?”


노아가 추궁했다. 전혀 추궁하는 어조는 아니었지만.


“유일하게 확인해줄 수 있는 사람, 피해자는 이미 죽었습니다. 과연 하윤 씨가 이 이야기를 경찰에게 그대로 한다고 해도 경찰이 믿어줄까요?”


“그것 때문에 못하는 것도 있습니다.”


하윤의 얼굴이 조금 우울하게 변했다.


“남들에게 털어놓을 수 있는 비밀이 아니기도 하지만, 솔직히 다 사실대로 이야기한다고 해도 믿어줄 사람이 있을지 의문입니다. 기자님을 제외하고요.”


“전 하윤 씨를 믿을 거라고 생각하시는군요.”


“예.”


하윤이 즉답했다. 그리고 노아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정민은 하윤이 갑자기 의기양양해보인다고 느꼈다.


“도훈 선배를 봤을 때도 선배가 저와 비슷한 사람이라는 걸 알아봤습니다.”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노아를 보며 하윤이 말했다.


“기자님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자님 역시 저와 같은 부류라는 걸 알아보았습니다. 그리고 기자님도 아마 그랬겠지요. 그렇기 때문에 기자님은 방금 제가 한 말이 전부 사실이라는 걸 알겁니다.”


“맞습니다.”


노아는 부정하지 않았다.


“전 믿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알 수 있습니다. 하윤 씨의 말이 사실이란 것을요.”


저 말은 정확히 어떤 의미일까.


궁금증을 느끼면서도 정민은 감히 물어볼 수 없었다. 기묘한 거부감이 그녀의 입이 떨어지는 것을 막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정민이 화랑관에서 노아와 재회했을 때 느꼈던 거부감과 아주 비슷한 류의 감정이었다. 살짝 속을 메스껍게 만드는 듯한 불쾌한 느낌. 정민은 궁금하면서도 이 감정의 원인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알고 싶지 않았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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