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왜."
하나는 낮고 차가운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하나야, 나 진짜 너네 아빠 때문에 못살겠어~'
이른 오전시간이었지만 수화기너머 엄마는 술에 취한 듯 혀가 살짝 꼬여있었다.
"또 무슨 일인데?"
'너네 아빠 또 사고 쳤어.'
"…"
'하, 부모복 없는 년은 남편복도 없고 자식복도 없다더니 내 팔자는 왜 이모양인지 모르겠다, 정말!'
단순한 신세 한탄이었지만 그 말은 하나의 심기를 거슬리기에 충분했다.
"그러게, 나도 엄마 팔자 닮아서 부모복이 없는데."
'나 그냥 나가서 확 죽어버릴까?'
"…"
'나 진짜 속이 터질 거 같아서 못살겠어, 하나야'
이제는 울먹이는 엄마의 목소리에 하나는 감정을 억누르며 물었다.
"이번엔 또 무슨 일인데?"
'몰라! 말도 꺼내기 싫어, 정말!'
"그럴 거면 왜 전화했는데? 나 바빠."
하나는 버스 승강장을 쳐다보며 말했다.
'우선 오백만 원만 좀 보내봐.'
"오백?!"
하나는 어이없다는 듯 되물었다.
'합의해야 돼, 안 그러면 너네 아빠 구치소 들어간데.'
"하아.. 가라 해, 사고 칠 때 그 정도 각오도 안 했데?"
'야, 장하나. 너 말 그렇게 하는 거 아니다! 아무리 미워도 너네 아빠야!'
하나는 눈을 질끈 감고 지겹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최대한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오백이 뉘 집 개이름도 아니고 내가 그만한 돈이 어딨 어?"
'너는 회사생활을 몇 년을 했는데 돈도 안 모으고 뭐 했니?'
"정말 몰라서 물어?"
'아! 시끄러워! 없으면 대출이라도 좀 알아봐서 보내봐, 좀!'
"엄마!!!"
더 이상 못 참겠다는 듯 하나는 전화기에 대고 소리쳤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하나를 힐끔 쳐다봤지만 하나는 지금 남의 시선 따위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요즘 대출 잘 나오더라, 최대한 받아서 오늘 안에 입금해.'
엄마는 자기 할 말만 쏘아붙이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끊어진 전화화면을 멍하니 쳐다보던 하나는 눈물이 터져 나올 것 같아 눈을 질끈 감고 심호흡했다.
"학생!! 버스 왔어요!!"
멀리 승강장에서 할머니가 하나에게 소리쳤다.
하나는 감았던 눈을 뜨고 핸드폰을 무음으로 설정한 뒤 주머니에 넣고 할머니에게 다시 다가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