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부터 숱하게 접해온 카드게임. 나는 그중에서 포커를 상당히 잘했다. 어떤 카드를 가지던 표정변화가 거의 없었고, 감에 따라 게임을 하면 높은 승률을 유지할 수 있었다. 다른 이들과는 포커를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으니 단지 친구들이 너무 못했던 것일 수도 있다. 그렇게 트럼프카드를 가지고 놀다 보면 문양에 따라 승패가 갈리는 경우가 생긴다. 문양으로 승패를 결정하는 것은 합리적이다. 그러나 왜 그 문양이 더 강한 것인지 이야기해주는 사람은 없었기에 직접 찾아보았다.
4가지 문양의 의미
스페이드 문양은 창과 검의 모양을 그려낸 것으로, 기사와 귀족, 권력과 권위 또는 죽음을 상징한다고 한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검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스페이드(spade)는 '땅을 눌러 파기 위한 넓고 평평한 칼날을 가진 도구'정도의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때문에 스페이드 문양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는 논쟁의 여지가 있다. '땅을 파기 위한'에 초점을 맞추면 '삽'이 되고, '넓고 평평한 칼날'에 초점을 맞추면 '검'이 된다. 어찌 되었든 모든 도구가 죽음과 관련이 있다.
다이아몬드 문양은 이름 그대로 다이아몬드와 같은 보석과 돈, 상인을 의미한다.
하트 문양은 성배와 성직자를 의미한다.
클럽은 곤봉을 그려낸 것으로 하위계층인 농민 또는 시민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스페이드 - 하트 - 다이아몬드 - 클럽 순으로 문양이 강하지만 지역에 따라 하트와 다이아몬드의 순서가 뒤바뀌기도 한다.
트럼프카드는 빨간색과 검은색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두 색깔에도 의미가 부여되어 있는데 각각 해과 달, 따뜻함과 차가움, 남쪽과 북쪽을 의미한다.
트럼프 카드의 기원
트럼프카드의 기원은 사실 동양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10세기 유럽은 종이를 만들 수 없었고, 동양에서는 인쇄술까지 발달했기에 이런 주장이 나온 것으로 보이는데, 당시 당나라에서 종이에 그림을 인쇄한 카드놀이가 유행했다는 점에서 꽤 신빙성이 있어 보인다. 이 카드가 유럽으로 흘러들어 간 게 트럼프 카드의 첫 시작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의 숫자와 문양을 넣은 트럼프카드는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그 이유도 단순하다. 당시 교회에서 이 카드에 그려진 문양이 '우상숭배'라고 생각해 이단으로 몰았기에, 사람들은 교회의 눈을 피해 카드를 가지고 놀기 위해 그림을 빼고 숫자와 문양을 넣어 새로운 카드를 만든 것이다. 그리고 이를 국가주도로 상업적으로 이용한 것이 프랑스이다. 당시의 카드는 지역별로 그림, 문양 등이 전혀 통일되지 않았었고, 다양하고 화려하고 복잡한 그림 때문에 카드의 가격은 당연히 비쌌다. 프랑스는 이것을 파고들어 복잡하기만 한 그림을 빼고 단순한 문양을 박아 넣고 숫자를 그려 넣어 싼 값에 대량으로 인쇄하였고, 이것이 유럽의 카드놀이 시장을 지배하면서 현재의 트럼프카드가 만들어지게 된다. 이 때문에 트럼프 카드의 인물들은 당시 프랑스의 전통복장을 하고 있다고 하는데.. 정작 프랑스 사람은 몇 없다는 점이 웃기다.
트럼프 카드의 인물들이 모두 실존인물?
14세기 샤를 6세 12세의 나이로 왕이 된 인물로, 정신병이 있어 미치광이 왕이라고 불린 인물이다. 왕을 즐겁게 해 주기 위해 광대(광대가 아니라 궁정화가라는 말도 있다.)가 샤를 6세의 얼굴을 그린 트럼프카드를 바쳤고, 이에 샤를 6세가 크게 기뻐했다. 그 이후로 신하들의 얼굴을 트럼프카드에 넣는 것을 즐기게 된 샤를 6세에게 자신의 얼굴도 그려 넣어달라며 신하들이 아첨하기 시작했고, 자연스레 나라가 문란해지기 시작했다. 점차 심각해지자 차라리 역사 속 인물만을 카드에 그려 넣자는 의견이 나왔고 이를 받아들여 다윗왕, 아테나, 율리우스 카이사르, 잔다르크 등 12명의 역사, 신화 속 인물을 그려 넣게 되었다.
특이하게 어떠한 문양에도 속하지 않는 조커카드가 2장 있는데, 처음 왕에게 카드를 바친 광대를 그려 넣은 것이라는 말도 있고, 광대는 무대에서 어떤 역할도 맡을 수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는 말도 있는 등 다양한 설이 있다.
스페이드 A만 화려한 이유
산업혁명 시기의 영국에서 트럼프카드를 이용한 카드게임이 엄청나게 유행하게 된다. 그러나 당시의 영국에서 '일을 하지 않고 노름을 하는 것'은 사회분위기 상 죄악에 가까웠다. 이러한 사회분위기에 힘입어 영국은 트럼프카드에 세금을 매기기로 하는데, 처음에는 카드의 맨 앞인 '스페이드 A' 카드에 세금 도장을 찍기 시작했다. 그러나 위조업자들이 성행하기 시작하자 세금을 매기는 방식을 달리 했는데, 그 방식이 '스페이드 A'카드 하나만을 조폐창에서 함께 생산하는 것이었다. 때문에 카드를 만드는 회사는 스페이드 A 카드를 정부로부터 구입하여 다른 카드들과 합쳐 판매해야 했다. 스페이드 A 카드가 일종의 세금영수증과 같은 역할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언제나 탈세를 향한 노력은 끝이 없는 법. 이번에는 스페이드 A카드를 위조하는 이들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이에 탈세를 막고자 스페이드 A는 점차 문양이 복잡해지고 화려해지면서 위조를 막고자 했다.
이것이 전통이 되어 현재까지도 스페이드 A 카드는 다른 카드에 비해 화려하게 만들고 있다.
여담으로 'as black as the ace of spade'라는 표현이 있다. 스페이드 에이스처럼 검다는 뜻인데, 속이 시커멓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서민들 카드놀이에 까지 세금을 매기려는 정부와 카드를 위조하면서까지 돈에 집착하던 상인들을 조롱하는 의미를 담고 있기도 하다.
어째서 한 문양이 13장씩일까
트럼프카드를 보면 1~10까지의 숫자와 J, Q, K의 카드로 하나의 문양이 13장의 카드로 이루어져 있으며, 네 가지 문양을 모두 합하면 52장이 된다. 여기에도 나름의 의미가 숨어 있는데, 먼저 52장의 카드는 52주, 즉 1년을 의미한다. 문양과 13장의 카드는 각각의 계절과 계절이 바뀌는 데 걸리는 시간인 13주를 의미하며, 카드의 모든 숫자를 더하면 나오는 값인 364와 조커카드 2장 중 하나를 합하면 365로 이 또한 1년을 나타내고, 나머지 1장은 윤년을 의미한다.
이처럼 많은 의미와 상징이 들어간 트럼프카드는 오늘날에도 가장 많이 즐기는 카드놀이이다. 그러나 카드에 담긴 이야기를 아는 사람은 드물다. 카드놀이를 즐길 때 카드에 담긴 이야기를 제대로 알고 즐긴다면 더욱 재밌는 카드놀이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