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서로에게 계속 상냥할 수 있을까?
예전에 한 유명 가수가 티브이에 나와서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자기들 부부가 서로에게 말이 예쁘게 오가는 이유는 생활이 편하기 때문이라고. 매일 출근해 온갖 피로감을 안고 집에 오는 사람들이 서로에게 말이 예쁘게 나가겠냐고. 그때는 '그럴 수도 있겠다' 싶으면서도 나와는 거리가 먼 얘기라고 느꼈다. 평소에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도록 조심하기도 하고, 말을 예쁘게 한다는 평을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들어왔기 때문이다.
나의 한 해는 3월부터 시작이라 1,2월은 아주 여유롭게 보내다가 3월이 되니 마음이 조급해졌다. 성격이 급한 탓인지 성과에 대한 조바심 탓인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시간을 견디기가 어려웠다. 시간이 나면 쉬지 않고 뭔가를 하다가 피로감을 느끼던 어느 저녁.
일->독서 모임->강아지 목욕시키기->저녁 준비라는 일정을 소화하고 남편도 역시 일->강아지를 본가에서 데려오기->강아지 드라이라는 일과를 비슷한 강도로 하고 있었다.
내가 강아지를 씻기고 나오면 남편은 털을 말리고, 귀약과 눈약을 넣어주며 지극 정성으로 관리를 한다. 나는 주방에서 뭔가를 하고 있었고 남편은 강아지 털을 말리며 대화를 하던 중에 그가 드라이기 소리에 말을 못 알아듣고 (평소에도 응? 한 번은 기본값이지만) 세 번째의 응?을 하던 찰나! 마음속 깊은 곳에서 화가 폭발하면서 날 선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아 그것(드라이기) 좀 끄고 얘기해!"
연애 3년, 결혼 1년 2개월 만에 처음 나온 짜증 섞인 말이었다.
남편도 눈이 동그래져서 나를 바라봤지만 찰나의 순간이라 어찌어찌 넘어갔고 나도 미안한 마음은 있었지만 남편이 워낙 수더분한 사람이라 잘 잊겠지 싶어서 넘어갔다. (그때만 해도 그냥 넘어간 줄 알았다.)
다음날 저녁. 역시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와서 시켜 먹을까 vs 해 먹을까의 고민 끝에 오므라이스를 만들어 먹었다. 그리고 식탁에 앉아 남편과 다음 장 볼 목록에 대해서 얘기를 나누었다. 남편은 주문하려는 품목을 장바구니에 넣어두고 주문 전에 항상 내 허락을 받는다. 뭐, 꼭 내 허락이 아니어도 사겠지만 그런 절차를 거쳐주는 것만으로도 고맙고 재밌는 루틴이다. 목록을 살펴보니 생수 두 통, 생강청, 과자 네 개, 치즈 케이크... '치즈 케이크?' 언제나 그랬듯이 결제를 맡은 부장님처럼 '나는 까다롭다'는 태도를 취하며 "이게 꼭 필요한 거야? 이건 빼!" 했더니 남편이 섭섭한 듯이 말했다.
"요즘 좀 까칠해"
알 수 있었다. 이건 비단 지금만의 섭섭함이 아니다. 어제의 짜증 섞인 말을 들은 후에 나온 섭섭함이었을 터. 이때다 싶어서 나는 남편에게 "어제 좀 섭섭했지?라고 물었다. 남편은 아니나 다를까 그 상황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조그맣게 "요즘 좀 까칠한 것 같아.."라고 말하는 그.
나는 말했다.
"그거 알아? 이제부터가 시작이야."
그리고 이어지는 말,
"우리 엄만 아빠한테 더 했어."
엄마가 아빠에게 짜증 섞인 말로 얘기할 때마다, 나는 나중에 절대로 남편에게 저러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다.
아빠는 묵묵히 당하는 입장이었고, 엄마는 언제나 위너였다. 하지만 그것은 나에게 더 커 보이는 핵심 기억이었을 뿐, 엄마는 항상 아빠에게 지극 정성으로 대했다. 기억할 수 있었던 어린 시절, 매일 아침 엄마는 아빠의 도시락을 싸기에 바빴고 아빠가 퇴근하고 돌아오시면 문 앞까지 나가서 반갑게 맞이하는 것이 당연하게끔 나와 동생을 교육하셨다. 가족을 위해서 건강에 좋은 것을 요리해 주시고 배달 음식이라고는 거의 시켜 먹은 적이 없다. 그럼에도 나는 엄마가 가끔 던졌던 짜증 섞인 말만 크게 기억하는 것이다.
절대 그러지 말자 했던 다짐은 어느 순간 증발하고, 순간적인 짜증이 나를 지배하는 날도 있을 것이다. 그것을 자책하기보다 미안함을 느끼고 다시 잘하면 된다. 인간이기에 서로가 느끼는 것은 같다. 소심하고 대범하고, 생각이 많고 적고를 떠나서 풀리지 않은 감정은 저 밑에 남는다. 내가 이 상황에서 섭섭할 것 같다고 느낀다면 상대도 역시 그럴 거라고 생각하자. 다행히 남편이 속에 있는 말을 꺼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이 일을 통해서 진짜 결혼 생활이란 서로의 우발적인 모습을 공유하고, 때론 나조차 싫어하는 내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는 것임을 느낀다.
우리는 결혼 생활의 중도에 있다.
그 길은 아주 길게 이어질 것이다.
그날 저녁 우리는 산책을 했다.
남편이 내 손을 잡아 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찰나에 그가 내 손을 잡았다.
생각이 서로 통한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인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은 없다고 공공연하게 말해 왔는데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들은 도처에 있었다.
그리고 치즈 케이크는 생필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