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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영 Jun 07. 2024

내가 오피스텔을 산 것이 죄는 아니잖아

중요 안건: 기존 관리인 해임의 건

자산 관리 업체를 운용하고 계신 분이 이야기했다. 2억이 있다고 그걸로 오피스텔을 사는 것이 가장 바보 같은 일이라고. 그리고 내가 그 바보 같은 짓을 했다.


4년 전, 나는 꿈에 그리던 삼성동의 오피스텔을 매입했다. 내 사업을 시작하고 13년 만의 성과였다. 작은 평수였지만 지역 시세에 비해 저렴했고, 매물이 잘 나오지 않는 입지가 좋은 오피스텔이라는 점에서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층수도 좋았고, 남향이었다. 무엇보다 나는 여기서 사업을 거니까, 짧은 시간을 보고 아니니까. 3년이 지나도록 오피스텔의 매매가는 내가 금액보다 고작 500만 원이 올랐지만, 삼성동에 갖고 있다는 것은 무엇보다 자부심이었다.  


문제는 관리업체였다. 이 오피스텔의 관리업체는 정말이지 관리를 방만하게 하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이 건물을 소유한 건설사의 자회사였다. 오피스텔을 분양했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관리 업체가 건설사의 자회사로 선정이 되었다고 한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런 경우는 너무나 흔했다.) 오피스텔은 집합 건물로서 아파트와는 다르게 구분 소유자들이 구성한 관리단에 의해 관리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상업용 오피스텔의 특성상 구분 소유자들이 뭉치기 어려운 환경이었고 그런 틈을 타서 관리 업체가 관리인의 역할을 계속하고 있던 것이다.


매매할 때만 해도 나는 이에 대해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듬해 이 오피스텔 내의 부동산에서 전화를 받았는데 부동산에서 말하기를, 관리 업체가 관리비를 올리려고 한다. 그래도 관리비가 비싼데 여기서 관리비를 올리면 건물 전체의 가치가 떨어지니 소유주 몇 분이 움직이셨으면 좋겠다며 참여를 독려했다.


그렇게 하여 자세한 사항을 살펴보니 문제는 심각했다. 관리비가 어디에 어떤 식으로 사용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건물의 에어컨을 돌아가게 하는 냉각기 두 대 중 한 대는 이미 망가져 있었는데, 관리 업체가 장기 수선 충당금이라고 모아둔 것도 없었다. 사무실마다 내부 청소를 서비스 식으로 해 주고 있다고 하는데, 이에 대해 알고 있는 업체는 소수였으며 청소를 받고 있다는 업체 리스트 역시 허위로 작성되어 있었다. 관리 업체는 1차와 2차 건물 개를 관리하고 있었는데 관리비는 1,2차가 분리가 되지 않은 채로 사용되고 있었다. 이런 것들에 분개한 소유주 몇 명이 모여서 임시 관리단을 만들었고, 임시 관리 의장을 뽑았다. 내가 오피스텔을 사고 1년도 채 되지 않아서 일어난 일이었다.


그러나 처음 시도한 소유주의 난은 실패로 돌아갔다. 구분소유자들끼리 임시 관리 의장을 뽑아서 진행한 관리단 총회는 절차 상의 오류로 법원에서 인정을 받지 못했다. 그 후 얼마 되지 않아서 임시 관리 의장이 현 관리 업체에 매수를 당한 듯했다. 믿고 지지했던 그분은 언젠가부터 소유주들의 입장보다 관리 업체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었다. 관리 업체의 이사를 만나러 간 자리에서 오피스텔의 관리 태만을 지적하며, 개선을 요구하는 나를 저지하는 모습에서 확신할 수 있었다. 그러나 관리비를 올리겠다는 소리도 함께 사라졌기에 한동안은 또다시 잠잠하게 일상이 흘러갔다.


2023년 12월, 관리 업체는 전 세대에 관리비를 올리겠다는 통보를 했다. 실평수 6평 오피스텔 관리비가 약 45만 원이 되었다. 일반 관리비가 34만 원. 전기, 냉난방비를 포함하면 당월 부과액이 446,268원. 전달에 비해 약 10만 원이 올랐다. 같은 지역 동일한 평수의 오피스텔과 비교해도 훨씬 비싼 금액이었다. 여기에 반발한 소유주들은 다시 뭉치기 시작했고, 법원에 또다시 소송을 제기했다. 관리 업체는 위기의식을 느꼈는지 명절 선물이라며 소유주들에게 과일을 돌렸고, 건물 안을 청소하시는 분들을 시켜서 일자리를 잃게 될지도 모른다며 위임장을 받아냈다. 청소하시는 분들을 총알받이로 이용한 것이다.



중요 안건: 기존 관리인 해임의 건



6월 7일, 징검다리 연휴에 현관리 업체 휘하에서 진행되는 관리 총회가 열렸다. 결과는 불 보듯 뻔했다. 무조건 자기들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끌고 갈 걸 예상했지만, 구분소유자 네 명이 발로 뛰어서 받은 의결 정족수인 50%를 훌쩍 넘는 위임장 중에 몇 장을 알 수 없는 이유로 거부했다. 한 장 한 장이 너무나 소중한 위임장이었는데 말이다. 재검도 하지 않은 채 투표 결과가 확정된 것도 문제가 있었다. 사회자는 관리 업체의 서류를 공식적으로 확인하게 하지 않았고, 구분소유자들의 서류만 체크하면 된다는 월권을 행사했다. 단어 하나, 말투 하나로 참석자들(소유주 및 점유자)에게 면박을 주면서 편파적인 진행을 해 나갔다. 이럴 것에 꼼꼼하게 대비하지 못한 것도 잘못이지만, 소유주들 대부분은 이런 일에 처음이었기에 서툴 수밖에 없었다. 길게는 3년을 기다린 공식적인 총회는 모든 안건이 부결되며 끝이 났고, 현 관리 업체는 임시 관리 업체로서의 역할을 계속 이어가게 되었다.


관리 업체를 바꾸는 것이 쉽지 않다고들 한다. 현금으로 몇 조를 가지고 있는 회사를 상대로 승산이 없는 싸움이라는 말에 나도 언제까지 소유주들의 위임장을 받고, 설득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똑같은 일을 겪은 분의 조언으로는 여기에 발을 담그면 자신의 일도, 시간도, 다 포기하고 버려지는 것들이 너무나 많을 거란다. 차라리 아무 행동도 하지 않고 시간이 흘러 알아서 일이 해결되길 바라는 것이 현명한 일이었지도 모른다. 알고 싶다. 이렇게 임대인 및 임차인들의 위에서 갑질을 하는 관리 업체의 행태를 그냥 지켜보는 것이 맞는지, 소유주들이 뭉쳐도 관리 업체를 바꾸지 못하는 것이 맞는지, 그냥 놓고 지켜보는 것이 현명한 일이었는지 말이다.


누구도 싸움에 자신의 에너지를 낭비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관리 업체가 상식을 따르고, 구분 소유자 및 점유자들을 존중하는 태도를 보였다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관리비가 어디에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 한 번이라도 먼저 알려 주겠다고 손을 내밀었다면, 없었을 싸움이다. 그래서 다시 한번 힘을 내려고 한다.


자신이 대접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접하라. 자신이 싫어하는 행동을 다른 이들에게 하지 말라. 나는 황금률과 은율을, 그리고 카르마를 믿는다.




+) 일부 오피스텔(집합 건물)의 소유 회사는 세금을 덜 내기 위해 건물 가격이 오르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들의 점유율(의결권)을 늘리기 위해 30% 이상의  호실을 미분양한다는 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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