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동안 삶 이후의 것이 궁금하듯 결혼하기 전에는 결혼 이후의 것이 궁금했다. 남들이 하는 말은 그들의 생각과 경험이니 나에게는 정답이 될 수 없었다. 도대체 결혼 이후에는 뭐가 있길래 누구는 결혼하지 말라 하고 누구는 한 번쯤 경험해 봐야 한다는 것일까를 계속해서 자문했다. 결혼 이후의 삶을 직접 겪어보니 그간 들어왔던 이야기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었구나를 깨닫는다. 연애 시절에는 사랑하는 사람과 온전한 하루를 보내는 것이 특별한 이벤트였는데 지금은 그런 특별함을 매일 누릴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면서도, 함께 하는 순간순간올라오는 화를 잘 다스려야 하는 일임을 알게 된다.결혼과 마찬가지로 순간적인 감정을 잘 다스리는 것 역시 내가 내릴 수 있는 선택이다. 무턱대고 화를 분출하느냐 혹은 상대방의 의도를 먼저 생각하느냐의 갈림길에서 어떤 선택을 할지는 나자신이 있을 곳이 지옥일지, 아니면 천국일지를 선택하는 것과도 같았다.
예를 들면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다. 아침 일찍 음식을 만들다가 물이 담겨 있는 냄비 손잡이를 가스레인지 안쪽으로 두지 못하고 밖으로 두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걸 보지 못한 배우자가 냄비를 치고 말았다. 냄비 안에 있던 물이 사방으로 튀면서 치워야 할 일이 생겼다. 부인은 가뜩이나 바쁜 아침에 이런 일까지 안게 되니 화가 난다. 남편은 부인이 왜 이렇게 냄비를 놨는지 의문스럽다.
잘못은 누구의 것일까?
남편의 도시락을 싸 주다가
냄비 손잡이를 안 쪽으로 두지 못한 부인
vs
부인을 위해서 약을 꺼내 주다가
냄비 손잡이를 보지 못하고 친 남편
둘 다에게 잘못이 있는 동시에 누구에게도 잘못은 없다. 서로를 위한 일을 하다가 잠깐 의도치 않은 일이 생겼을 뿐. 내가 의도치 않았던 번거로운 일이 상대방에 의해서 발생했을 때 상대방의 의도가 무엇이었는지를 생각하는 일은 순간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싸움으로부터 나와 나의 배우자를 보호해 준다. 선한 의도에서 비롯된 일이라면 결과를 가지고 화를 내기보다는 그 마음을 알아주는 것이 따뜻하다.
엎질러진 물은 닦고 치우면 될 일, 거친 말로 낸 생채기는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말로 인한 상처가 얼마나 오래가는 지를 아는 사람은 되려 따뜻한 말로 배려를 이끌어 낼 수 있다. 내가 아닌 타인은 배우자라고 해도 남일 수밖에 없기에 '내가 대접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접하라' 이 말이 얼마나 유용한 지를 알게 된다.
결혼을 한다는 것은 서로의 보호자가 되어 주는 일이다. 결혼 이후에 더 명랑하고 더 솔직해진 배우자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 집에는 6살짜리 아이가 한 명 있다"라고 표현을 하곤 했는데 그 생각은 나만 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맥콜을 마시고 있는 배우자에게 나도 달라고 보채니 "내가 애를 한 명 키우고 있지."라는 답이 돌아오는 순간, '우리는 결국 같은 사람이고, 똑같은 것을 원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 본다. 그저 내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우리가 서로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알고 그만큼 표현해 주는 것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