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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자 May 19. 2024

반으로 나눌 수 없는 것들에 대하여

4.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딱 한 번 시간을 돌릴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망설임 없이 과거로 떠날 것인가, 기꺼이 현재에 남을 것인가? 나는 현재에 남겠다는 파지만, 한동안은 시간을 돌려 과거로 가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엄마와 아빠가 이혼하면 모든 게 편해질 줄 알았던 18살의 봄. 나는 괜찮다며 큰소리쳤다. 

 나를 가장 모르는 사람은 나라고 했던가? 나는 무지했다. 내 마음을 나도 몰랐다. 삶을 지탱하는 세계가 뒤집힐 걸 알면서도 지각 저 밑으로부터 울려오는 고동을 필사적으로 모른 체했다. 그러니까, 나는 괜찮아야만 했다.


 몇 광년을 달려온 아주 오랜 물음이 마음을 울린다. 나는, 우리는 정말 괜찮은가?

 

  부모님이 이혼을 고민하시던 때에 나는 바빴다. 고등학생이 바빠봤자 얼마나 바쁘냐, 하면 할 말은 없지만. 한창 예민할 고등학생. 학교생활, 친구와의 관계, 항상 부족한 수면시간, 다이어트... 세상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고통스러웠다. 엄마 아빠의 삶이 내 삶에 침범하는 것도 싫었고, 스트레스받고 싶지 않았고. 결국 괜찮다고 답했다. 깊게 고민하지 않았고 고민하기도 싫었다. 돌이켜보면 그건 회피였다.


 나는 조심성이 많은 사람이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고등학생 때 담임선생님이 해주신 인상 깊은 말 하나. "계단을 조심스럽게 내려가는구나." 다치는 것도 무섭고 아픈 것도 싫고, 학창 시절 내내 학교도 학원도 과외도 때려치우고 싶었지만 친구들이 다 하니까 나도 하는 삶. 이런 내게 남들에게 없는 하나의 작고도 특이한 자국이 생기게 된 것이다. 

 작은 생채기가 난 줄도 몰랐다가 그것을 인식한 순간부터 따갑고 견딜 수 없게 아팠던 경험이 있다. 생긴 줄도 몰랐던 상처를 발견하고, 그 상처가 치유되며 진물이 나고 통증을 겪는 과정이 내겐 견디게 아팠다. 


 시간을 돌리고 싶었다. 스무 살이 넘어서야 난 줄도 몰랐던 상처를 뒤늦게 발견하고 따가워했다. 부모님의 이혼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은 것이 후회됐다. 단순히 부모님의 이혼과 아빠와 따로 살게 된 사실 자체를 후회하는 게 아니었다.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가족이 주제가 되면 입을 닫게 되는 나, '아빠 집'이라는 또 다른 장소. 그 모든 변화를, 남들과 달라지는 것을 받아들이기 두려웠다. 궤도에서 벗어난 삶. 태양계에서 퇴출당한 기분이었다. 


 시간이 지나고, 여러 일들을 겪으며 나는 성장했다. 남들과 다름을 받아들이게 됐고, 더 이상 후회하지 않는다. 이러한 상처가 내게만 있는 것도 아니며 나는 내 길을 걷는 중이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명왕성이 왜소 행성 134340 pluto가 되었다고 한들 그는 존재하던 대로 존재할 뿐. 나 또한 존재하던 대로 존재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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