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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스크 환자의 나날 Mar 21. 2024

책과 어린, 그리고 나 2

그냥 쓰는 나


  그날 밤 어머니께 슬며시 작가가 되고 싶다고 말했을 때, 어머니는 그래 작가도 좋겠다, 작가가 되면 멋지겠다고 하셨던 기억이 있다. 솔직히 무서웠다. 어머니가 작가를 하지 말라고 했으면 그렇죠 하고 얼른 포기하면서 툭 털고 일어났을지도 모르는데 덜컥 깊은 생각 없이 내뱉은 말을 어머니가 응원하기 시작하셨던 것이다!

나는 어어 하면서 그 이후론 장래희망을 한의사에서 작가로 적기 시작했다.


 여하튼 과정이 영 엉성한 나의 장래희망 수정은 어찌 되었든 글 쓰기라는 끝을 알 수 없는 망망대해로의 출정식이 되었고, 조금은 더 진지하게 책을 읽기 시작했다. 동시에 인터넷에서 글을 쓰는 법을 검색하고 다녔는데, 사실 너무나 많은 글 쓰기 작법들이 있고,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이 등단했던 나이를 검색하고 다녔다. 또 가끔 뉴스에 천재 꼬마 시인, 소설가라는 뉴스들이 뜨면 그저 배가 뜨겁게 아팠다. 그러면서 동시에 더 어려운 책, 더 읽기 힘든 책을 찾아다녔다. 가령 철학 서적이라던지. (그래서 우리 집 책장에는 칸트의 책들과 헤겔, 철학의 역사가 꽂혀있다. 물론 한두 번 밖에 읽지 않았지만.) 억지로 어려운 책을 읽는 것을 늘리니 도통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리고 200자 원고지를 두고 한두 장을 쓰면 그 뒤로 진행이 안되거나, 꾹꾹 원고지에 내용을 채웠다가 다시 처음부터 내 글을 보면 지금까지 읽었던 거장의 글들과 너무 비교되어, 알 수 없는 부끄러움에 북북 찢어버리곤 했다. 그렇기에 이 우매하고 어린 작가 지망생의 글을 본 사람은 어머니를 제외하곤 거의 없었다. 처음부터 대작을 쓰는 건 말이 안 되니 노력하면 된다는 어머니의 말이 오히려 재능이 없다는 말로 들릴만큼 심통이 난 시기였다.


  나는 능력이 없으니 작가 학원에 보내달라고 징징거렸는데, 어머니는 제대로 하려는 것처럼 보이는 내 모습에 감명받아 작가 학원을 수소문하여 덜컥 나를 등록하셨다.

 

  또다시 무언가 속였다는 느낌이 들어 죄책감이 들었고, 이 감정을 발판으로 더 나아가자는 자기 합리화로 당차게 작가 학원을 갔을 때, 나는 학원 수강생 중에 제일 어린 나이였다. 제일 어렸기 때문에 까불까불해도 귀엽게 봐주고 넘어갔으며, 그 당시 고등학생 형, 누나들은 나를 살짝 미친놈 기질이 있는 애라고 생각하며 데리고 놀았다. (그때 당시 전쟁영화에 심취하여 맨날 총탄이 빗발치는 소설을 썼다. 지금 생각해 보니 내가 다닌 곳은 순수문학에 대한 학원이었고, 아무도 내 해괴한 전쟁소설을 이해하지 못했다.)

 어느 날 학원 끝나고 가는 길에 어떤 한 누나가 나를 붙잡아 세우고 정색하며 말했다. 여기는 입시도 준비하고 진지하게 글을 쓰려는 애들만 있는데, 여기에 너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야기였다. 듣는 나는 살짝 눈물이 났다. 글을 쓰는 데 있어 어떤 글이 중요하길래 이러는 걸까, 나는 내가 재밌는 글만 쓰려고 했는데. 살짝 훈계를 하는데 덜컥 대상이 울어버리니 당황한 누나는 대충 우리는 너무 진지하고 치열하게 생각하는데 아직 네가 글 잘 쓰는 법을 잘 모르는 것 같아서 알려주려고 했다는 말로 얼버무리고, 훌쩍 거리는 나를 두고 버스를 타러 도망갔다.


 왜 그때 울었는지는 자세한 기억이 나진 않지만 무언가 모욕당한 기분이었다. 추측하건대 이때까지 불경하게도 작가가 되겠다고 설치지만 작가가 못될 거라 내심 생각하며, 글에 대한 가벼운 태도로 놀면서 학원 다니던 나의 본모습을 누군가에게 들킨 기분이었다.

 당시 내 감정을 다른 누군가가 쉽게 느끼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냐면 약간의 모욕감 한 스푼에, 사실은 스스로 불신하고 있지만 작가가 되겠다는 변명이  들켜 온몸이 발가벗겨진 부끄러움이 섞이고 일부러 내 실력이 밝혀질까 두려워 온 힘을 다하지 않는, 가벼운 척한 연기가 들킨, 이 기분 말이다.

 

 그때 나는 왜 그런 결론을 냈는지 모르겠지만 눈물을 훔치며 복수하겠다고 다짐하면서, 집에 가는 버스에 올라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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