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쓰는 나
왜 그렇게 그만두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렸을 때부터 회피하려 시작했던 글 쓰기가, 왜 딱 그 시점에서 멈추었는지는 지금도 도통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다. 인정을 받아서 그랬다기엔 완성된 실력이 아니어서 학원을 그만둔 이유는 더더욱 기억이 나질 않는다.
어쩌면 설렁설렁하는 모습이 들키기도 했고, 치기 어린 복수심이 말끔히 해소가 된 반동일지도 모르겠다.
길고 긴 글 쓰기의 시간이 막이 내린 기분이 들었다. 그 뒤로 고등학교에 올라가서도 장래희망은 작가로 적었지만, 그전만큼의 에너지가 남지 않아 글은 점점 더 쓰기 어려워졌다.
그래도 습관이 된 독서와 어려운 책 읽기를 그만두진 않았다. 나는 열심히 독서하는 학생을 뿌듯하게 바라보는 어른들의 시선을 좋아했던 아이였으므로.
기억을 쭉쭉 짜내어, 글 쓰기를 멈춘 이유를 추측해본다면, 나는 복수의 과정 당시 얼핏 느꼈던 작가들의 치열함이 듬뿍 담긴 글과 내 글을 비교하며 절망감을 느꼈고, 또 끝없이 '무언가'를 찾는 삶에 대한 무서움, 그리고 당시 같이 앉아있던 학생들 중 결국 몇 명이나 작가가 될까라는 섣부른 회의감인 것 같다. 더불어 글 쓰기에 도전했다가 글을 인정받지 못했을 때의 그 두려움도 있었다. 그래서 나는 책을 읽기만 했다.
내심 말하기 부끄러운 어린 시절의 일화를 고백한 이유는, 건전지가 빠진 로봇 마냥 반쪽짜리 정신으로 살고 있는 내가 회피로 점철된 부끄러운 과거를 고해하며, 잃어버렸던 건전지 하나를 더듬거리며 찾기 위해 쓴 것이다.
지금의 내가 잃어버린 것.
아마 어린 시절 밤새며 책을 읽게 만든, 열등감에 빠져있어도 글 쓰기에 몰두하게 만들고 끝내는 성취를 느끼게 해 줬던 것,
바로 분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