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돌아보는 한마디
제법 선선한 밤공기에 아이들과 저녁을 먹고 산책을 나가기로 한다. 금요일 밤은 다음날 학교 혹은 회사에 가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으로 다른 평일에는 없는 여유가 생긴다. 운동복 바지에 머리를 질끈 묶고 아이들과 털레털레 걷고 있는 나는 금요일 밤을 즐겁게 보내려는 젊은이들의 복장과 들뜬 표정에 다소 주눅이 든다. 평소였으면 불을 끄고 잠자리에 들었을 밤 9시다. 선선하고 습한 공기가 공존하는 공간을 걸으니 이마에 땀이 맺힌다. 집 근처 도착 전 마지막 신호등의 파란불을 건넌다. 5살가량의 딸을 등에 업어서 힘들어 보이는 엄마와 그녀의 아들로 보이는 초등학교 저학년 남자아이가 자전거를 타며 사람 많은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다. 횡단보도 중간 즈음 갑자기 날카로운 소리가 들린다.
"왔다 갔다 하지 말고 똑바로 가란 말이야. 이 새끼야"
그 소리가 너무 크기도 했고 전혀 생각하지 못한 고함에 사방에 정적이 흐르는 것을 느낀다.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옆에서 걷고 있던 딸을 바라본다. 딸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보며 눈을 맞춘다. 그렇게 횡단보도를 건너고 나서 아들이 이야기한다.
"엄마, 나 방금 학교 반 친구 봤어."
"누구? 혹시 그 자전거 타고 지나가던 아이?"
"응 맞아. 우리 반 친구인데, 요즘 내 옆에 앉아. 맨날 떠들어서 내가 조용히 하라고 하는데, 말을 안 들어."
"그렇구나. 그 친구한테 인사했어?"
"응 인사했어"
"그 친구도 너한테 인사했고?"
"응"
"그 친구가 웃으면서 인사했어?"
"응, 웃으면서 인사했어"
"응 그랬구나. 아까 엄마한테 혼나서 기분이 안 좋을 줄 알았는데, 웃으면서 인사해 줬구나."
"응. 학교에서도 맨날 떠들어서 선생님한테 혼나는데도 선생님 말을 잘 안 듣던데?"
"사실 아까 엄마는 좀 무섭더라. 너희들은 어땠어?"
"우리도 무서웠지. 엄마가 화낼 때도 무섭긴 한데, 저 정도는 아니야."
가끔 다른 사람을 향하는 말이 나에게도 닿을 때가 있다. 사람이 많은 횡단보도를 자전거를 타며 건너는 일은 쉽지 않다. 속도를 낼 수 없다. 그래서 중심을 잡기 위해 비틀거렸을 것이다. 아이들이 하는 모든 행동에는 이유가 있다.
원래 상대방을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해라. 상대를 이해하려고 노력하지만, 노력이다. 그리고 상대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하라. 그게 이해의 출발점이다. (아들러, 심리학을 읽는 법)
그날 밤 잠자리에 누워서도 날카롭던 그 말이 계속 생각나는 것은 어느 한순간의 내 모습은 아니었나 하는 생각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