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잉?
가족 중에 유별나게 등산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지만 우리 가족은 가끔 등산을 한다. 산을 격하게 싫어하지도 좋아하지도 않다 보니 산을 오른다. 좀 이상한 말이지만 말이다. 일 년에 두세 번 정도는 산을 오르는데 작년에는 한라산과 월악산, 소백산을 올랐다. 작년이었으니 초등학교 5학년 딸과 초등학교 2학년 아들을 모시고.
우리 가족의 등산은 유독 충동적으로 정해진다. 텔레비전의 멋진 경치를 보다가 혹은 주변 사람들의 추천으로 산을 오른다. 작년 겨울에 처음 가 본 한라산은 겨울 경치를 보고 반한 나의 독단적인 결정으로 정해졌다. 제주도에 가면서 보통 바다가 보이는 예쁜 카페와 맛집, 그리고 바다를 주로 보며 기분전환을 하고 오는데, 한라산만을 목적으로 하는 나름 신기한 경험이었다.
아이들이 크게 거부하지 않고 등산을 하지만 어른들도 힘든 일인 만큼 아이들에게 달콤한 조건을 걸어둔다. 평소 잘 사주지 않는 음식이라던가 게임시간을 확 늘려준다. 아이들은 단순하다.
겨울의 한라산을 오르고 내년에는 겨울산으로 유명한 태백산을 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올해도 석 달 전부터 숙소를 예약하고 태백산 등산을 계획했다. 여행 3일 전 첫눈 치고는 과하게 눈이 많이 와서 태백산은 눈꽃산으로 변했다. 아이젠을 차고 오르는 태백산. 해발 900미터의 고도에 위치한 태백에서 출발한 우리 가족은 1,566미터의 한라산을 가뿐히 올랐다. 우리들의 가벼운 발걸음에 비해 태백산은 과분하게도 아름다운 겨울산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마지막 300m는 경사가 급해서 힘들었지만 좌우에 펼쳐진 눈꽃들을 보면서 사진도 찍고 쉬면서 오를 수 있었다. 아이들은 한라산에 비하면 쉬운 태백산을 오르면서 너무 쉽다면서 다음 산을 예약하려 한다.
가뿐히 오른 태백산을 뒤로하고 우리는 숙소 근처 식당에서 저녁을 먹는다. 태백산의 성수기는 1월인지, 손님이 우리밖에 없다. 사장님은 우리를 친절하게 맞아주셨고, 산에 올랐으면 무조건 막걸리라며 먹거리를 한 병 주문한다.
사장님은 막걸리 한 병과 막걸리 잔 세 개를 가져오신다.
'막걸리 잔이 왜 세 개지?
하고 속으로 생각하며, 사장님이 실수하셨나 보다 생각한다. 제육볶음과 된장찌개를 먹으며 태백산을 올랐던 이야기를 한다. 사장님은 서비스로 계란 프라이를 내어 주신다.
'계란 프라이가 하나다!'
우리 가족은 성인 2명에 초등학생 6학년과 3학년 각각 한 명이다.
"딸, 이 식당에서는 너도 성인인가 보다!! 막걸리 한잔 해야겠잖아?"
겨울모자를 쓰고 키도 나와 비슷한 딸이 다른 사람 눈에는 성인으로 보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도 마냥 어린아이 같은데 말이다. 하긴 초등학교 6학년 딸은 내가 먹는 양보다 많이 먹는다. 내 옷이며 신발이며 이제 딸과 공유하고 있다.
'막걸리잔 세 개 주세요!'
라고 당당하게 말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때까지 딸이 계속 산에 가겠다고 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