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친 말에서 따뜻한 말로
아침부터 술에 취해 A 씨가 들어온다. 내가 근무하는 면에서 관심을 가장 많이 가지고 지켜봐야 할 사람이다. 혼자 사시고 알코올 의존이 높다. 술을 끊지 못해 이가 빠지고 점점 몸이 약해진다. 기초생활수급자로 지정되어 1인 가구가 받을 수 있는 최대 금액을 지원받고 있으며, 면에 들어오는 각종 물품 중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물품은 우선 지원해드리고 있다. 그러나 A 씨의 몸은 점점 나빠진다. 매달 입금되는 수급비로 주로 술을 드신다. 주변에 사는 이웃분들이 사소한 일거리를 마련하여 같이 어울릴 수 있도록 도움을 주려 하나 그들의 노력과는 별게로 이 분의 몸은 점점 망가지고 있다. 해당 마을 이장님은 꼭 '우리 00"이라며, 지원해 줄 거 없냐며 살뜰히 챙기신다.
면사무소는 방문하는 A 씨는 주로 자신의 신세한탄이나 요구사항을 말한다. 정말 사소하게 김치가 없어서 밥을 못 먹겠다는 말은 기본이고 뭐가 부족하다거나 뭐가 필요하다거나 어디가 아프다거나. 한 달에 한 번 수급비로 들어가는 돈으로 사 드시라고 하면 이미 월초에 술을 사서 드시고 남은 돈이 없다고 하신다. 반복되는 악순환이다.
A 씨는 통신비가 연체되어 핸드폰도 없다. 본인 말로는 지인에게 명의를 빌려줬는데 갚지 않고 도망을 갔고 결국 통신비가 연체되어 본인의 핸드폰을 구입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제일 답답한 사람은 면사무소 담당 직원이다. 연락할 일이 있는데 바로 연락할 방법이 없다. 급하지 않은 사안은 우편으로 보내드리는데, 기한이 있는 급한 사항은 이장님께 연락을 한다. 그러면 이장님은 A 씨의 이웃 주민에게 연락을 해서 면사무소로 오거나 전화기를 빌려 연락을 하라고 하신다. 한 번은 국민연금관리공단에서 연금 받을 돈이 조금 있다며 A 씨의 연락처를 알고 싶다는 요청을 받았다. 이장님께 연락을 해서 사정을 말하고 A 씨에게 술을 드시지 말고 면사무소로 오시라는 전갈을 드린다.
* 전갈 : 사람을 시켜 말을 전하거나 안부를 물음 또는 전하는 말이나 안부
핸드폰이 없으니 여간 답답한 게 아니다. 혼자 살고 연락도 되지 않는데, 술도 많이 마시고 혹시나 집에서 안 좋은 일이 생길까 봐 걱정된다. 가끔 신문에서 나오는 고독사가 내 주위에서 일어나는 것을 원치 않는다. 마침 통신비 연체 금액을 지원해 주시겠다는 마음씩 좋은 후원자를 만났다.
통신비를 다 갚은 다음 날, 술을 마시지 않은 A 씨가 면사무소를 방문한다. 손에는 통신사의 로고가 적힌 종이가방이 들려있다. 핸드폰을 개통해 온 것이다. 기분이 좋은 모습이다.
담당자는 면사무소 전화번호를 저장해 드린다.
다음날 A 씨는 술을 드시고 면사무소를 방문한다. 핸드폰을 개통해서인지 웃는 모습이다. 예전이랑은 좀 다른 느낌이었다. A 씨는 담당자와 이야기를 끝내고 나에게도 인사를 하면서
"요즘 팀장님, 점점 예뻐지시는데요?"라고 인사를 건넨다.
그의 입에서 불평이나 불만을 토로하는 말이 아니라, 예쁜 말이 나온 것에 나는 적잖이 당황한다. 이 사람을 내가, 담당직원이 변화시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담당자는 농담 삼아
"왜 저한테는 그런 말씀 한 번도 안 하시는 거예요?"라고 웃는다.
밝게 웃으며 면사무소를 나가는 그분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예기치 못한 부작용이 생겼다. A 씨가 술만 드시면 면사무소에 전화를 계속하는 것이다. 하루에 열 번 이상.
핸드폰에 저장된 면사무소 번호를 삭제해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