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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아래 Oct 12. 2024

파란 하늘이 지난 후에, 긴긴 어두운 터널 안에서

내가 가진 힘은



"언니가 나한테는 부모와 같아. 나보다 고작 1년 3개월 일찍 태어난 것뿐이지만 이상하게 언니는 나한테 그런 존재였어.
그러니까 나는 부모한테 받은 사랑을 어른이 된 자식이 갚듯, 언니한테 내가 해주고 싶은 걸 하는 것뿐이야. 그러니까 미안해하거나 부담 갖지 말았으면 좋겠어.
언니는 받을 자격이 충분해."

"큰누나가 어릴 때는 엄마같았지. 엄마보다 더 엄마같았어 나에겐. 엄마보다 큰누나가 더 좋을 정도였으니. 엄마가 죽는 거보다 큰누나가 죽으면 더 슬프겠다고 어릴 때 생각한 적이 있어."


최근 동생들이 이런 말을 해주었을 때, 환상통 속에 사는 것 같던 불투명한 내 삶이 의미가 있었음을 증명해 주어 고마웠다.


그리고 내가 해주었던 것과 해주지 못했던 것, 오롯이 각자가 버텨야 했을 무게를 다시금 떠올리며 마음이 아팠다.


그저 이제 행복하기를..


이제 끝이 났으니.


끝도 없어 보였던 길고 긴 터널에서 우리 모두 빠져나왔으니.



우리 다섯 식구가 한 집에 살았던 그 시절, 어둡던 그 시절 난 무슨 힘으로 버텼을까.


그 속에서 나는 최소한 아이들을 지킬 수 있길 바랐다.


엄마가 소진되지 않도록 힘과 시간을 벌어줄 수 있길 바랐고, 아버지가 끝내 슬픔을 이겨내지 못하고 자신을 저버리지 않도록 마지막 희망이 되어줄 수 있기를 바랐다.


아주 대단한 것들을 다 하고자 했지만 실상 나는 누구보다 무서웠고  뼛속까지 슬펐다.


나를 지키고, 아이들을 지키고, 우리 가족을 지키기 위해 강한 힘을 갖고 싶었지만 나는 겁이 많고 예민한 아이였다.


이룰 수 없는 것을 꿈꾸고, 바꿀 수도 있는 현실에 대해 체념했다.


나는 약하고 어리석었다.


온통 얼룩덜룩한 상흔들로 뒤덮인 채 겨우 살아남았다고 느꼈다.


영광스럽지도, 보람되지도 않은.


그저 화마에서 살아 나온 사람처럼 내가 얻은 건 아직 붙어있는 목숨, 이제서야 핥아보는 상처들.


그래도 죽지 않기 위해 저항하려 애썼다.


보이지 않는 저항이었다.


그저 나만이 알 수 있는 것.


내가 가진 힘은 무엇이었나 헤아려보다 떠오른 것은



'따뜻한 옳음.'



그래. 나는 '따뜻한 옳음'으로 맞서고자 했다.


그것으로 나와 모두를 살리고 싶었다.


누구도 죽지 않길 바랐다.


그러다 비밀스럽게 눈 감으면 다시 깨어나지 않기를 자주 바랐다.


나의 방패이자 무기였던 '따뜻한 옳음'은 너무 무거워 늘 바들바들 떨리는 팔로 힘겹게 버텼다.


'따뜻한 옳음'에 대해 생각하다가


엄마와 아버지가 떠올랐다.


'아 그것도 내가 부모님께 사이좋게 반씩 받은 것이구나.'


아버지를 떠올리면 따뜻하다.


나를 자주 괴롭게 했지만 아버지의 모든 것이 따뜻하거나 때로 불같이 뜨거웠다.



엄마를 떠올리면 온기를 쉽사리 감지하기 어렵다.


차분하고 서늘하게 옳았다.


그것은 이상하게도 종종 근히 나를 불편하게 했다.



아버지와 엄마는 너무 달라서 영원히 섞일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슬펐다.


그 슬픔은 내가 그걸 인지한 순간부터 내 속에 깊게 자리 잡아 절대 사라지지 않았다.


섞이지도 않았지만 둘은 서로를 미워했다.


둘은 절대로 서로를 받아들여주지 않았다.


틀렸다고, 잘못됐다고 했다.


둘은 보이는 곳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한시도 쉬지 않고 싸웠다.


함께 있을 때도, 함께 있지 않을 때도 한 번도 서로를 제대로 봐주지 않았다.



나약한 내가.


나를 지키고, 우리를 지키기 위해서 옳음으로 나를 지키는 명분을 만들었고, 따뜻함으로 악의를 품어 녹일 수 있길 바랐다.


그도 자신을 지키기 위해 그랬을 테니..


내가 더 따뜻해질 수 있기를, 자주 다그쳤다.



그러다 가끔, 내 안에서 자라나는 차가운 악의를 알아차릴 때 끝을 본 듯한 서늘함에 다리가 후들거릴 때가 많았다.


내가 끝까지 지켜낼 수 있을까.


나를.


우리를.




내가 비롯된 곳을 사랑하기 위해 부단히도 애썼다.


나를 사랑하기 위해 이렇게도 오래 걸렸다.


그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을 하기까지 나는 참 부자연스럽게 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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