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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아래 Oct 16. 2024

함께 흩어져있던 그 시절 우리는

동신아파트 102동 1104호




그 시절.


우리가 부모님 밑에 함께 크던 그 시절은


'힘들었다' 네 글자 말고는 더 말을 보탤 힘도 없는 시간들이었다.



그때 우리는 흩어진 채로 어두운 터널에 오래도록 갇혀있었다.


각자 출구를 찾으려 했는지 모르겠지만, 분명한 건 우린 다 혼자였다.


두려움도 지침도 각자의 몫을 각자가 해결해야 했다.


다들 여유가 없었다.



거실을 나누어 방으로 써야 했던 25평짜리 옛날 아파트,


둘러앉으면 서로 무릎이 닿았던 밥상,


누군가 때를 미는 동안 중요한 일을 해결할 수밖에 없던 화장실.


우린 아주 가까이에 흩어져 있었다.


그래서 고요한 새벽, 각자의 방에서 흩어진 숨소리가 함께 들려올 때면 눈물을 참기가 어려웠다.


소리도 없이, 찡그림도 없이 울었다.


지금 막 내 몸에서 나온 것인데도 그 눈물은 서늘했다.



모두가 깊이 잠든 후에야, 나는 그 사이를 천천히 돌아다니며 부상을 확인했다.


적군에게 다친 것인지, 아군에게 다친 것인지 구분할 수 없는 부상들이 많았다.


적군으로 오인한 아군에게 가장 치명적인 부상을 입었다.


간혹 자신을 해하는 일도 있었다.



그렇게 매일 다친 자들이 함께 밥을 지어 나누어 먹고, 지쳐 잠이 들었다.


아침이 오면 내가 본 모든 것들을 모른 채 했다.


간밤에 함께 꾼 악몽에 대해 누구도 말하지 않았으므로 나도 내 몫을 해내야 했다.


엉망진창인데도 삶은 흘러가고, 내 마음 말고는 세상 모든 것이 문제가 없어 보였다.


(아니, 세상에는 문제가 많았지만 그게 세상임을 천천히 아프게 깨달아갔다.)



그래서 나는 제일 먼저 입을 닫았다.


대신 평온한 얼굴을 하고, 미소를 짓기로 했다.


아무도 나에게 묻지 않길 바랐다.


요즘 어때? 같은 말.


그래서 공부는 내게 참 좋은 도피처가 되었다.


스스로에게도 모두에게도 그것은 확실한 명분이 되어주었다.


내 마음이 어떤지 따위 신경 쓰지 않을..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틈만 나면 공부를 했다.


그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내 안에 가득 차있는 두려움과 슬픔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아주 작은 틈도 용납하지 않았다.



혼자 있을 때만 나는 그것을 조금 꺼내서 오래 들여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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