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시간에 민감한 할머니

서툰 고백

by 복덕


일어나자마자 황톳길을 내려다본다.

해도 뜨기 전, 누군가는 벌써 맨발 걷기를 하고

내 기척을 들은 사랑이가 낑낑댄다.

그러나 오늘은 함께 나설 수 없다.

출장 떠나는 딸을 대신해

손녀의 등굣길을 챙겨야 하니.

세상은 달라졌다,

과보호 아닌 과보호가

아이의 일상이 되었다.


부엌 한쪽, 싱크대 앞에

꽁지를 감추고 웅크린 사랑이.

며칠 전 사위에게 혼난 탓일까,

천방지축일 때보다

기죽은 모습이 더 짠하다.

사위도 출근을 나서고

남은 건 나와 손녀뿐.

“세수하고, 화장실 갔다 와야지.”

“지금이요?”

“응, 지금.”

“지금 가면 나중에 또 가야 하는데요.”

“아, 할머니가 순서를 바꿨구나.

원래 하던 대로 하자꾸나.”


요즘 아이들은

이해되지 않는 건 곧장 반기를 든다.

나는 자꾸 “빨리, 빨리”를 외치고

손녀는 느릿느릿,

시간은 자꾸 나를 다그친다.

겨우 준비를 마치고

가방 메고 현관에 선 순간,

손녀가 말한다.

“할머니, 화장실 갔다 오면 안 돼요?”

“가야지. 그래야 속이 편하지.”


매일 가는 시간보다 늦었다.

정 시간에 등교시키라 하였는데

손녀를 재촉해 학교 앞까지 왔는데

친구를 만났네.

둘이서 느릿느릿.

나는 또 재촉을 하지.

손녀가 나더러

“시간에 민감한 할머니”라고 친구에게 소개한다.

손녀 친구가 하는 말

“나는 느긋하게 살아.”라고 한다.


손녀 친구 말대로 느긋하게 살 수 있을까?

이 아침,

나는 손녀와 작은 전쟁을 치르며

세상에서 가장 평범하고

가장 분주한 행복으로 살아간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사랑이의 체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