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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 저금통 속의 동전들

암환자 아내의 시점

by 복덕


3주 만에 혼자서 마산집에 다녀왔다. 그동안 부어 오던 은행 적금이 만기가 되었다. 적금, 예금이 만기가 되면 그 돈은 어떻게 또 굴릴까 하면서 행복한 꿈을 꾼 적이 엊그제였는데 남편이 아파서 요양병원에 있으니까 적금이 만기가 되어도 한없이 쓸쓸하기만 하였다. 이렇게 혼자서 덩그러니 꿈도 없어진 채 마산집에 갔다. 일주일 동안 마산집에 머물면서 짐 정리를 하였다. 집을 부동산에 내어놓았는데 아무도 선뜻 사겠다는 사람이 안 나타난다. 요즘 경기가 안 좋다더니 이렇게 몸소 실감할 줄은 몰랐다. 어떤 이는 턱없이 헐값으로 집을 내놨더니 선뜻 팔렸다고도 하였다. 그런 사실을 나에게 알려 주는 사람의 심리는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혼자서 짐 정리를 시작하였다. 우선 거실부터.

남편이 좋아하던 거실이다. 멀리 바다가 보이는 거실 창 옆으로 매트를 깔아 거기서 반려견 사랑이와 유유자적 보내었다. 매트 좀 방으로 갖고 들어가라고 잔소리깨나 했는데 그 매트를 돌돌 말아 정리를 하였다. 거실 앞면 옆면이 유리창으로 되어 있어서 훨씬 넓어 보이는 집인데 이 집을 팔아야 한다. 몇십 년의 고향인 이 동네도 이 집도. 남편은 서울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남편과 떨어져 살 수는 없는 것이다. 거실 정리를 하고 보니 안 그래도 넓은 거실이 더 넓어서 망연자실하게 먼바다를 바라보게 된다.


거실 TV 서랍장 옆에 붙여둔 돼지저금통에 자꾸 눈길이 간다. 저 돼지저금통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생각하면서 무심히 부엌을 정리하기 시작하였다. 사놓고 한 번도 써 보지도 않은 그릇들을 마대 포대에 담았다. 그릇은 마대 포대에 담아서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차곡차곡 싱크대 찬장에 쟁여둔 그릇들이 이제는 아무 필요성이 없어진 것이다. 뭣할라고 그릇도 이렇게 모았는지 아무 부질없는 일이 되어 버렸다. 혹자는 말했었다. 나이 들어가면서 짐은 간소하게 정리하면서 살아야 한다고. 이렇게 갑자기 짐을 정리할 줄은 몰랐다. 평소에 쓸 물건들로만 간소하게 살았으면 좋았을 것을.


동생한테 맡긴 반려견 사랑이도 집에 왔다. 며칠 동안이나마 피붙이 같은 사랑이와 같이 보내라고 한다. 동생의 마음 씀씀이가 새삼스레 고맙다. 생명 붙은 짐승도 이렇게 다급한 일이 생겼을 때는 속수무책 불쌍한 신세가 된다. 이렇게 반려견을 키우다 정작 키운 본인은 책임을 못 지고 옆에서 지켜본 내가 동동걸음 치고 있다. 살다가 흔적이 남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할 텐데.


서랍장 옆에 붙여둔 돼지저금통에 자꾸 눈이 간다. 집에서 있는 일주일 동안 자꾸 나에게 신호를 보낸 돼지저금통을 정리해야 한다. 돼지저금통도 이사 가는 낌새를 알아차렸나 보다. 자꾸 나를 쳐다보게 하는 것을 보면. 일주일 중에 마지막 날 아침부터 돼지저금통을 털기 시작하였다. 돼지저금통 바닥에 동그란 뚜껑이 있었다. 손가락으로 까딱까딱하면서 동전을 털어내기 시작하였다. “차를륵 촤르륵” 소리를 내면서 동전이 쏟아졌다. 간간이 손가락을 넣어 지폐도 잡아당기기도 하였다.


바닥에 몇 번을 쏟고는 분류를 하기 시작하였다. 언제 적 동전인지 모르게 오랜 세월 동안 돼지저금통에 갇혀 지낸 동전들이 방바닥에 널브러졌다. 이 동전들을 하나하나 세면서 한나절을 보냈다. 이 많은 동전들이 제 몫을 하지 못하고 허무한 세월을 보내게 하다니 지금의 내 처지와 비슷한 상황이 아닌가.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모아 온 동전들이다. 저금통에 동전이 가득 차면 혹 아이의 등록금이라도 한번 낼 수 있을까 꿈꾸기도 하고 아니면 다 같이 모여서 저금통을 개봉하자고도 했는데. 그러는 사이에 돼지 저금통을 까맣게 잊고 결국에는 나 혼자서 처리해야 되는 신세가 되었다.


동전들을 분류하여 각각 세어서 봉지에 담았다. 동전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 손으로 들고는 도저히 움직일 수가 없었다. 다음에 또 마산집에 올 때 은행에 가서 통장으로 넣어야 한다. 아무도 이 동전을 의미 있게 쓸 일이 없어져 버렸다. 동전을 챙겨서 바퀴 있는 시장바구니에 담아 놓았다. 통장에 넣어서 남편과 산책할 때 오가며 써야 되겠다. 쓸 때마다 옛일을 속삭이면서. 이렇게라도 동전의 쓰임을 정해 본다. 나의 쓰임은 어떻게 찾을까. 자꾸 마음이 붕 떠다닌다. 음식을 먹어도 자꾸 배가 고프고, 아니 고픈 건지 안 고픈 건지 모를 때도 있고, 책을 읽어도 그림을 봐도 집중이 되지 않는다. 이런 날이 계속되면 어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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