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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발걸음

서툰 고백

by 복덕

일어나자마자 뒷 베란다로 나갔다.

황톳길 위를 누가 걷는가 싶어 눈길을 주었으나,

다른 날보다 늦은 시간이건만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찬 기운 때문일까,

겉옷을 여미고 사랑이를 데리고 나섰다.


나가기만 하면 세상을 다 얻은 듯

꼬리를 흔들며 앞서 달리는 사랑이.

공원을 한 바퀴 돌아 나오면

황톳길까지는 숨 가쁘게 달려야 한다.

헉헉거림 속에서 오히려 살아 있음을 느끼는 듯.


돌아오는 길,

이제야 사람들의 발걸음이 하나둘 황톳길을 메운다.

매일 마주치는, 눈인사를 나누는 분께

조용히 목례를 건넨다.

아침 안개는 옅은 연기를 드리운 듯 자욱하고,

그 고요한 장면은 오래된 화폭 속 풍경을 닮았다.

느껴보지 못했던 감성이 불쑥 피어올라

가슴 한편이 은근히 젖어든다.


어제 남편이 퇴원을 했다.

소원대로 요양병원에 다시 들어가고

오늘은 집에 들르겠다고 한다.

추석 연휴는 집에서 머물자고 했건만

나의 제안은 허공에서 퍼져버렸다.

서운한 마음이 울컥 돌았다.

남편의 마음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런 마음을 알았는지

어제 퇴원한 남편이 집에 온다고 한다.


나는 바쁘게

무른 밥을 준비하고

환자용 장조림도 했다.

알 배추와 당근도 살짝 데치고

가지고 갈 가을옷도 내어놓았다.

그리고는 사랑이를 데리고 마중을 나갔다.


시간이 딱 맞게

남편이 버스에서 내려

약간 구부정한 자세로 걸어온다.

환자처럼 걸어온다.

서운했던 마음이

갑자기 연민으로 바뀐다.

왈칵 솟구치는 눈물을 참아본다.


나는 남편의 걸음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숨을 고른다.

오늘 이렇게 만나 집으로 함께 걸어가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시간 속으로 늙어가는

하루를 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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