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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 May 10. 2024

그런 슬픈 고백은 하지 말아 줘

붙잡아 뭐해, 마음만 더 아프게

 까만 피부에 동그랗고 커다란 눈, 진한 쌍꺼풀에 짙은 다크서클. 그리고 단발머리. 지독한 청소년기의 시작이자 나의 중학교 시절은 온통 마음에 안 드는 것 투성이었다. 그중에서 가장 마음에 안 드는 건 교복이었다. 그놈의 치마, 치마!


 중학교에 입학하기 전 처음 교복을 맞추며 설렘에 가득 찬 친구들과는 다르게 나는 그야말로 모든 게 다 끝난 기분이었다. 요즘엔 남녀 할 것 없이 교복 바지를 입지만, 당시 바지를 입는 여학생들은 흔하지 않았다. 자유로웠던 초등학교와는 다르게 중학교는 딱딱하고 권위적인 분위기였다. 왜인지 늘 화가 나있는 선생님들 때문에 잘못한 것도 없는데 괜히 움츠러들기 일쑤였다. 어쨌든 교복을 시작으로 지켜야 할 규율이 산더미처럼 많았기에 감히 다른 여학생들과 다르게 교복 바지를 입는 것은 상상하지도 못했다.


 나는 치마가 너무 싫었다. 모든 행동거지가 쓸데없이 조심스러워지고, 추운 겨울에도 맨 다리를 훤히 내놓으며 얇은 스타킹 하나로 버텨내야 하는 그 거추장스러움이 싫었다. 교복 치마를 입고 등교하는 순간이 때때로 치욕스럽기까지 했다. 그러나 싫다고 뭘 어쩌겠는가. 교권이 최고조에 달했던 시기의 중학교에서는 선생님 말씀이 곧 법이었고, 남들과 다른 복장과 행동은 체벌로 이어졌다. 어차피 교복을 입는 순간, 아니 학교에 다니게 된 순간부터 개성 따위 포기하기로 결심했다. 남들 눈에 띄지 않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중학교 생활은 내 생각과는 다르게 흘러갔다. 선생님들 눈에는 띄지 않았지만, 아이들 사이에 무난하게 숨어들진 못했다. 내성적이고 말도 없던 나는 의외로 친구들 사이에서 꽤 인기가 좋았다. 초등학교 때와는 다르게 사춘기가 시작된 아이들은 친구를 사귀는 데 있어 까다로웠고, 내 성격이 그들 사이에서 나름 독특하게 작용했던 것이다. 다른 여학생들처럼 똑같은 단발머리에(당시 우리 학교는 두발자유가 아니었다) 똑같은 교복 치마를 입었지만, 그들에게 나는 보통 여학생처럼 느껴지지 않았던 모양이다. 여자를 좋아한다는 고민을 안고 있던 나의 내면은 어쩌면 정체성이 확립되지 않은, 민감한 시기의 아이들에게 독특한 매력으로 작용했던 걸까? 결코 입 밖에 낸 적 없지만, 당시의 위태로운 나의 내면은 보다 예민한 여학생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무언가였을지도 모른다.


 자아나 정체성 같은 단어조차 제대로 알지 못할 나이었다. 나는 여자임에도 여자가 좋았고, 결코 남자를 좋아하게 될 것 같지도 않았다. 물론 가끔 헷갈린 적도 있었다. 그러나 여자와 남자에게 느끼는 감정 자체가 달랐다. 남학생한테 느끼는 건 호감 정도였고, 여학생한테 느끼는 감정은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끌림이었다. 스스로의 수렁에 갇혀 답도 없는 질문을 계속했다. 왜 나는 여자임에도 여자가 좋은 걸까? 가질 수 없는 것에 더 끌리는 호기심 어린 나이라서 그런 거라 가볍게 생각해 보려고 했지만, 덜컥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면 결코 가벼워질 수 없는 마음의 무게에 짓눌렸다. 이런 나의 내면은 조금씩 깊은 곳으로 내려가 스스로를 갉아먹었다. 그런 생각들에 갇혀있었고, 돌아보니 어느새 나는 또래 친구들에게 보이지 않는 선을 긋고 있었다. 겉으로는 잘 웃고 모두에게 친절했지만, 속은 그렇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와 같은 고민을 가진 사람이 아니더라도, 청소년기에 누구나 할 법한 생각들이 아니었나 싶다. 혼자 온 세상의 심각한 고민을 다 끌어안은 것처럼 굴었지만, 결국 나는 남들과 다르다는 생각은 그 시기 보통의 청소년이 할 법한 생각이 아닌가. 지금은 이렇게 가볍게 생각할 수 있게 되었지만, 당시 나는 세상이 무너진듯한 기분으로 하루하루를 살았다. 여자인 내가 같은 여자를 좋아한다는 사실이 괴로워 미칠 것 같았다. 내가 사는 세상에는 여자는 남자를, 남자는 여자를 좋아해야 옳았다. 여자를 좋아하는 건 남자밖에 없어야 했다. 여자로서 여자가 좋은 자신이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다. 치마를 싫어하고, 남자애들같이 구는 스스로를 보며 나는 내가 남자가 되고 싶은 줄 알았다. 사실은 성을 바꾸고 싶었던 게 아니라, 여자로서 여자를 좋아할 수 있다는 걸 이해하게 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신체 변화가 뚜렷하게 찾아오는 나이었다. 변성기가 온 남학생들에게 설렘을 느끼는 친구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었다. 나 역시 변화하고 있었지만, 내 마음은 도무지 변할 줄을 몰랐다. 당시 내 주변은 온통 짝사랑하는 남학생 혹은 여학생 얘기로 가득했다. 나 역시 짝사랑하는 여학생이 있었지만 어차피 말할 상대는 없었다. 그래도 누군가가 좋아지면 그 아이를 보는 순간이 행복했다. 그것만으로도 희망 따윈 존재하지 않는, 험난한 내 짝사랑도 할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결국 다른 아이들과 다른 것 없는 중학생이었다. 짝사랑이 취미가 될 정도로 누군가를 몰래 좋아했고, 그만큼 포기하는 것도 점점 익숙해졌다. 그 아이에게 남자친구가 생기면 내 사랑도 거기서 끝나야 했기 때문이다.


 여학생한테 고백을 받기도 했다. 신기하게도 많이 받았다. 좋아해, 사귀자,라는 고백이 아니라, '네가 남자였다면 좋았을 텐데' 따위를 고백이라 치면 말이다. 쓸쓸하고 슬픈 고백이었다. 보통 여학생들은 살면서 한번 겪을까 말까 한 이야기겠지만, 나는 꽤 많이 이런 경험을 했다. 단발머리에서 머리가 점점 짧아질수록 더 많이, 자주 들었다. 남자애 같은 내 외모가 좋았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여자로서 내가 좋다는 말은 아니었다.


 기억나는 일화가 하나 있다. 같은 반이었던 여학생 하나가 있었는데, 그 아이는 예쁜 외모는 아니었지만 모든 남학생들의 짝사랑의 대상이었다. 톡톡 튀는 목소리에 밝고 발랄한 성격이 그 아이의 매력이었다. 나 역시 짝사랑까진 아니지만 그 아이한테 자꾸 관심이 갔다. 갑자기 껴안거나, 손을 잡거나, 팔짱을 끼거나, 이런 흔한 여자친구들 사이의 스킨십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이대로 가다간 좋아할게 분명했다. 나는 마음을 가다듬고 좋아하지 않으리라 마음먹었다. 그러나 그 아이와 같은 무리가 되어 매일 붙어 다니다 보니 나 역시 점점 그 아이에게 끌리기 시작했다. 그 아이도 나와 둘만 있는 시간을 좋아했다. 물론 나와 다른 마음이었겠지만. 어느 날 그 애가 나에게 물었다. 너 나 좋아해? 응 좋아하지. 왜 나를 좋아해? 좋아하는데 이유가 있나, 이유도 없이 그냥 좋으니까. 그게 진짜 좋아한다는 거 아닐까? 오... 너 좀 멋있다. 그럼 나도 너 좋아할래.


 사실 나는 그 아이를 짝사랑하거나 하진 않았다. 좋아한다는 대답도 그 아이에게 조금 끌렸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친구로서 좋아한다고 답했을 뿐이었고 그 아이도 그 뜻으로 받아들였겠거니 했다. 다만 내가 생각하는, 좋아한다는 것의 정의를 말해주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래도 나를 좋아하겠다는 그 대답의 의미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순간부터 그 아이가 특별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다음날, 내 작은 희망은 산산조각이 났다. 그 아이는 내가 했던 말을 똑같이 사용하여 같은 반 남학생에게 고백을 했다. 그렇게 우리 반에 첫 커플이 탄생했다.


 짝사랑을 시작도 하기 전에 혼자 차인 기분이었다. 잠깐의 기대를 했던 스스로가 바보 같았다. 그래도 다행히 그 기분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 후에도 그 아이는 '친구끼리 그럴 수도 있지'라는 선 안에서 애매한 언동으로 종종 나를 헷갈리게 했지만, 내 눈엔 더 이상 그 아이가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 아이가 남자친구와 헤어진 후에 나에게 시전했던 '네가 만약 남자였다면 좋았을 텐데' 같은 말들에 흔들리는 일도 없었다. 우습지만 씁쓸한 기억이다.


 고백 같지 않은 고백을 받거나 하는 허무한 일들도 종종 있었지만, 그 사이에 진짜 나에게 동성적 호감을 느꼈던 경우도 분명 있을 거라 생각한다. 정체성이 확립되지 않은 시기에는 더욱 그렇다. 그래도 이건 아니라며 단호하게 돌아설 수 있다면, 돌아서진다면, 축하한다. 그대로 이성애자의 삶을 살게 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아니었다. 이건 아니라며 돌아설 수 있었다면 진작 그렇게 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돌아설 수 없으니까 괴로운 것이다. 누구를 좋아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한들 그게 마음대로 되는가? 스스로의 정체성을 깨닫고 괴로워하지 않는 동성애자들도 물론 많겠지만, 나의 경우와 많은 동성애자들이 이 같은 경험을 했으리라 생각한다. 다행히 지금의 나는 여자로서 여자를 좋아할 수 있음에 감사한다.

그러니 세상 모든 사람들이 알았으면 한다. 좋아할 용기가 없다면 어설픈 고백은 넣어두시라.



 네가 만약.... 였다면 좋았을 텐데라는, 그런 슬픈 고백은 하지 말아 줬으면.




♪ 넬_그리고, 남겨진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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