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현 May 14. 2024

달리 되었더라면

왜 나를 떠나야만 했나요

 살면서 이런 생각 해 본 적이 있는가? 너라면 괜찮을지도 몰라. 네가 여자 혹은 남자라고 해도 상관없어. 좋아하는 사람의 조건 같은 것은 전부 상관없이 무작정 뛰어들고 싶었던 적 말이다. 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을 본 사람이라면 이런 경험을 하지 않았더라도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반대로 절대 공감하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커피프린스 1호점은 바리스타 열풍과 함께 어마어마한 인기를 누림과 동시에 동성애적 코드 때문에 논란이 되기도 했다. 주인공이 남자인 줄 알았던 또 다른 남자 주인공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남자이던 여자이던 상관없다고 말했지만, 사실 주인공은 남자를 가장한 여자였고, 결국 보통 남녀 간의 사랑 이야기일 뿐이었다. 당시에는 파격적인 설정이었지만, 나 같은 동성애자 입장에서는 여간 아쉬운 게 아니었다.

 

 그러나 이성애자들에겐 그건 드라마 속의 이야기일 뿐이다. 살면서 단 한 번도 동성에게 연애적 감정 비슷한 것조차 느껴보지 못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내 주변 사람들 역시 그랬다. 너무나 평범한 헤테로인 그들 사이에서 나는 그들과 비슷한 척 섞여있는 돌연변이었다. 앞서 말했듯 당시 내 주변에는 동성을 좋아하는, 나와 비슷한 고민을 가진 친구조차 없었다. 주변 여자아이들 모두가 좋아하는 대상은 당연하게도 이성친구였다. 같은 세계에 속해 있음에도, 너무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들이었다. 어떤 기대도 하지 않는 편이 차라리 편했다. 앞으로 기대할 일도 없다고 생각했다. 가끔 나에게 내비치는 친구 이상의 애매한 감정 따윈 그냥 헤테로의 호기심 정도로 치부하기로 했다. 사실 그런 비슷한 일은 꽤 많이 있었다. 남녀공학 중, 고등학교를 나왔음에도, 친구들은 전부 이성에게만 관심이 있었음에도, 종종 동성친구인 나에게 호감 따위를 보이는 일 말이다. 그게 친구 이상의 감정이었을지는, 어차피 나는 판단할 수 없다. 만약 그랬다고 해도 무언가 크게 달라질 일은 없었을 것이다. 스스로 그 이상을 넘어서는 일은 없을 것이며, 상대방 역시 친구 이상으로 다가오는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이런 일들은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 내 일상 속에서 가끔 단비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단비가 내리는 날이 잦을수록 내 마음도 마를 새가 없었다. 하루 종일 비가 내리기를 기다린 적도 있었다. 차라리 흠뻑 젖고 싶었다. 그래서 누군가 우산을 들고 나에게 다가와 주기를. 같이 가자며 나에게 우산을 씌워주기를 내내 바랐다. 어렸던 시절을 회상하면, 온통 그런 장면들만 가득하다. 누군가 나에게 다가와, 그대로 어디론가 데려가 주기를. 그래서 누군가 내게 다정하거나 기대 이상의 친절을 베푸는 것에 한없이 연약했다.


 여자아이들은 다정했다. 이성인 남자아이들보다 같은 여자아이들에게 더 다정했다. 이성 친구보다 동성 친구가 더 좋을 나이기도 했다. 당연히 그들은 친구인 나에게도 한없이 다정했다. 내가 그들을 향해 쌓아 올린 벽은 그런 다정함에 여러 번 무너졌다. 이쯤에서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 오해할지도 모르는, 당연한 사실 하나를 말하자면, 동성애자라고 동성이면 다 좋은 게 아니다. 이성애자들도 이성이면 다 좋은 게 아니듯이. 나 역시 친한 친구들 대부분은 그냥 친구로서 느껴졌고, 친구 이상의 감정으로 생각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다만 이성 혹은 동성에 대한 관심이 시작되는 청소년기에는, 누군가가 갑자기 좋아지기도 하고, 어떤 사소한 말에도 의미 부여를 하고, 어떤 다정함에도 녹아내리는 때가 보다 자주 있다는 것이다. 어쨌든 당시 나는 이런 다정함에 둘러싸여 평범한 나날을 보냈다. 이 다정한 친구들이 불쑥 나에게 돌을 던지지 않는다면, 그대로 내내 평화로웠을 것이다.


 고여있는 일상에도 틈틈이 비가 내리고, 가끔은 어딘가에서 돌이 날아왔다. 그 돌은 내 작고 연약한 우물에 잔물결을 일으켰다. 이 잔물결은 큰 파동이 되어 종종 바깥으로 넘치기도 했다. 그럴 때면 내 우물 안에 쌓인 돌을 꺼내야 했다. 방금 날아온 돌이 어떤 것인지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우물 안은 깊고 캄캄했다. 어떤 돌인지 모르겠다 싶을 땐 전부 다 꺼내야 속이 시원해졌다. 그리고 다시는 누구도 던질 수 없도록 아무도 모르는 곳에 그 돌을 묻어야 했다.


 이런 작은 내 우물에 어느 날 돌을 던진 한 친구가 있었다. 다른 돌처럼 우연히 우물 안으로 날아들어온 것이 아니라, 의도와 목적을 가진 채 박혀버린 돌이다. 이건 그 친구가 던진 돌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 친구는 아직도 나에게 상처로 남아있다. 동시에 그리운 사람으로 남아있다.


 열다섯, 겨우 중학교에 익숙해졌지만 거칠고 예민한 아이들과 더 예민한 선생님들 사이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일 시기였다. 그 친구와는 한 번도 같은 반이 된 적은 없지만, 같은 학원을 다니며 친해졌다. 당시 나는 학교 친구들보다 학원에 친구가 더 많았다. 학원 또한 학교의 연장 선상이었지만, 낮에 활동하는 학교와 다르게 밤늦게까지 학원에 갇혀 시간을 보내는 친구들과의 관계는 더 끈끈한 무언가가 있었다. 그 친구는 그렇게 친해진 친구였다. 우리는 학교에서도 자주 마주쳤고, 학교 바깥에서는 더 많이 만났다. 생각이 깊고 공부도 잘했으며 수다스럽지 않은 그 친구가 어른스럽다고 생각했다.


 그 친구는 유난히 나를 좋아했다. 나도 그 친구를 친구로서 좋아했지만, 가끔 그 애가 하는 행동이 이해되지 않을 때도 있었다. 가령 그 친구는 내가 다른 여자아이들과 얘기하거나 쉬는 시간에 자기와 시간을 보내지 않으면 무척 서운해했다. 대놓고 서운하다고 말은 안 했지만 툴툴거리거나, 집에 혼자 가버리거나, 며칠씩 아는 척을 안 하는 식으로 서운함을 표출했다. 나는 그 친구의 이런 행동을 이해하지 못했다. 사실 딱히 이해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이런 행동들이 나에게 별 타격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나는 좋아하는 사람 이외에 누구에게도 관심이 없었다.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몰래 좋아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벅차고 힘들었다.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면 누구도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없었다. 이런 내 사정을 알 리가 없는 그 친구는 내 관심을 받지 못하는 것에 대해 큰 불만을 가지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래도 그 친구와는 별다른 문제 없이 지내고 있었다. 나는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고, 그 친구도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 친구는 나에게 좋아하는 사람이 누군지 말해주었지만, 나는 말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좋아하는 사람 없냐고 끊임없이 물어왔다. 그러면서도 내가 남자를 좋아할 것 같지 않다고 하며 안심했다. 이 질문이 무엇을 뜻하는지 아주 잠깐 고민했지만, 곧 알게 되었다. 그 친구는 나와 같은 반이었던 한 남학생을 좋아하고 있었다. 그 남학생과 나는 나름 친한 사이였는데, 아마도 내가 그 애를 좋아하게 될까 봐 걱정이 되었던 모양이다. 그런 쓸데없는 걱정은 넣어두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 친구는 내가 그 남자애와 친하게 지내는 것도 질투했다. 단순히 내가 좋아하게 될까 봐의 이유라기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었다. 쉽게 이해할 수 없겠지만, 혹은 내 착각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그 친구는 사실 내가 그 남자애를 좋아할 일 따윈 없을 거라고, 그 남자애 역시 인기가 많았기 때문에 굳이 선머슴 같은 나를 좋아할 일은 없을 거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 친구의 친한 친구 몇 명도 그 남자애를 좋아하고 있었고, 그 남자애를 좋아하는 다른 여자애들은 얼마든지 있었다. 그 친구의 질투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건 누가 봐도 내가 아니었다. 그 친구에게 나는 어떤 특별한 대상이었고, 나만은 본인이 좋아하는 사람과 엮이거나 혹은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는 일 따윈 없어야 한다는 일종의 독점욕 같은 게 있었다.


 사실 나는 그 두 사람과 나의 관계에 신경 쓸 만큼 여유롭지 못했다. 당시 나는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 친구의 친한 친구 A였다. 그 친구와 A는 유치원 때부터 친했고, 부모님끼리도 안부를 주고받는 사이였다. 나는 그 친구랑 A를 같은 중학교에서 만났지만, 같은 학원을 다니며 더 친해졌다. A는 공부를 매우 잘했다. 학원에서조차 같은 반이 되기 힘들었는데, 어느 날 우연히 같은 반이 되어 옆자리에 앉게 된 A가 내 손을 덥석 잡더니, 갑자기 손톱 정리를 해주겠다며 수업 시간 내내 선생님의 눈을 피해 내 손을 잡고 도무지 놓아주질 않았다. 그때부터였다. A는 크도 동그란 눈에 검은색 뿔테안경을 쓰면 지적인 인상이었지만 말이 조금 많은, 유쾌하고 밝은 성격의 아이였다. 나는 그 아이와 같은 반을 유지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공부했다. 결국 같은 반이 된 건 몇 번 안되지만, A의 특유의 친화력 덕분에 그 애와 친해질 수 있었다.


 A는 나에게 언니 같은 존재였다. 어른스럽다기보단 늘 나를 걱정해 주고 잘 챙겨주었기 때문이다. 언제나 내 안부를 묻고, 쉬는 시간에 간식을 나눠주고, 모르는 문제를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또 학원이 끝나고 같이 집에 가게 되는 날이면, 자기 집보다 먼 우리 집까지 꼭 바래다주었다. A는 학교에서나 학원에서나 밝고 유쾌하고 총명해서 모두에게 인기가 많았다. 당시는 개인적인 고민뿐만 아니라 가정사로 인해 힘들었던 시기였는데, A를 보면 우울했던 기분도 금세 좋아졌고, 뭐든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A는 내 가정사에 대해 알고 있었는데, 그 시기에 나에게 가장 많은 위로와 힘을 보태주었던 게 A였다. 아무튼 A와 나는 같이 다니진 않았지만, 학교와 학원을 오가며 마주친 시간이 적지 않았다. 그 친구와 A 중에 누구와 더 친했는지, 누구와 보낸 시간이 더 많았는지 비교하자면, 사실 비슷했다. 그러나 엄연히 따지면 A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었고, 그 친구는 그저 친한 정도의 친구일 뿐이었다.


 그러니 그 친구의 독점욕은 나로선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그 친구의 질투는 내가 A와 친해진 후부터 심해졌다. A와 내가 학원에서 같은 반 짝꿍이 되고 나서, 한동안 그 친구는 나에게 화난 사람처럼 굴었다. 다른 친구들마저 둘이 싸웠냐며 물어볼 정도로 그 친구는 나를 의도적으로 외면했다. 물론 나는 그냥 요즘 기분이 안 좋은가 보다 했다. 그럴 때면 나 역시 며칠씩 인사하지 않고 그냥 지나쳤다. 그러다 보면 슬금슬금 눈치를 보며 먼저 말을 걸어왔다. 그동안 왜 그랬냐며 물어본 적도 없다. 나 때문일 거라고 생각조차 못 했기 때문이다. 그 친구에겐 좋아하는 남학생이 있었고, 그 남학생과 내가 친한 사이라고 해도 결코 그 친구의 심기를 건드리거나 질투를 유발하는 일 따위도 없었다. 혹은 내가 만만해서 기분 내키는 대로 행동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러기엔 나는 그 친구에게 만만한 상대는 아니었다. 아니면 내가 자기만큼이나 같은 크기로 그 친구를 생각하지 않은 것에 대한 질투나 서운함이었다면, 한 번쯤은 얘기하지 않았을까?


 이런 대화를 한 적이 있다. A의 생일날 나는 커다란 케이크를 들고 학원에 갔다. 친구들과 생일파티를 해주기 위해서였다. A와 다른 학원 친구들이 여럿 모였고, 그 친구 역시 그 자리에 있었다. A는 나에게 고맙다고 말했고, 나는 A에게 준비한 선물과 편지를 주었다. 주변 친구들의 장난스러운 환호와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그 친구는 어딘지 모르게 표정이 어두웠다. 그리고 이내 교실 밖으로 나갔다. 친구들 모르게 조용히 따라나간 나는 그 친구에게 어디 안 좋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그 친구가 말했다. 너는 A를 진짜 좋아하는구나. 나는 말했다. A를 안 좋아하는 애들도 있나. 그러자 그 친구가 말했다. A는 좋겠다. 네가 좋아해서. 나는 말했다. A도 좋고 너도 좋아해 바보야. 그만 들어가자. 그 친구는 말했다. 바보는 너야.


 어쨌든 그 친구는 종종 나에게 이해할 수 없는 질투 혹은 퉁명스러운 태도를 보였지만, 한 번도 풀어주거나 직접적으로 얘기를 해 본 적도 없기 때문에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아무리 신경 쓰지 않는다지만, 점점 그 행동이 거슬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 친구와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내 가정사에 대해 A는 알았지만 그 친구는 모르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어느 날 그 친구와 단둘이 집에 가게 된 날이었다. 중학교 3학년 겨울이었다. 우린 다른 고등학교를 배정받았고, 고등학생이 되면 자연스럽게 멀어지게 될 정도의 거리만큼 우리 사이는 벌어져 있었다. 학교에서 그 친구의 집이 우리 집보다 가까웠기 때문에, 그 친구의 집 앞에 도착했을 무렵이었다. 그 친구가 갑자기 내 손을 잡았다. 그리고 왜 자기한테 여태 가정사에 대해 말하지 않았냐며 물었다. A는 내 가정사에 대해 말하지 않았지만, 주변 친구들 모두가 이미 자연스럽게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친구도 알게 되었던 것이다. 나는 굳이 얘기하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그것 말고 너랑은 좋은 얘기만 하고 싶었다며. 그 친구는 아무 말 하지 못했다. 나는 고등학교에 가서도 좋은 친구들 많이 사귀라고 말했다. 그것이 그 친구와 중학생으로서 보낸 마지막 시간이었다.


 1년 후 내 생일날, 그 친구는 A와 중학교 친구들 몇 명과 함께 내가 다니는 고등학교 앞으로 찾아왔다. 당시엔 야간자율학습이라는 제도가 있었고 밤 10시가 되어야 겨우 학교가 끝났다. 제출했던 휴대폰을 돌려받자마자 전원을 켰다. 생일 축하한다는 친구들의 문자와 학교 끝나고 정문 앞으로 나오라는 문자가 마구 쏟아지고 있었다. 깜짝 놀라 학교 밖으로 나갔다. 학교 앞 광장엔 그 친구와 A가 케이크를 들고 서있었다. 1년 만에 본 얼굴이었다. 그 친구와 A는 같은 고등학교에 다녔다. 유치원 때부터 고등학교까지 정말 진한 인연은 너희라며 웃었다. 학교 앞에 모인 중학교 친구들과 지나가던 고등학교 친구들에게 창피할 만큼 많은 생일 축하를 받았다. 최고로 행복한 생일이었다. 그렇게 그 친구와 A는 나에게 더 없는 좋은 친구로 남을 줄 알았다. 그러나 몇 년 후 그 친구와는 인연을 끊게 되었다.


 그로부터 2년 후, 수능이 얼마 남지 않은 고3 가을이었다. 교복 입을 날도 얼마 남지 않은 마지막 청소년기의 끝자락이었다. 캄캄한 저녁이었다. 다들 야간자율학습을 하던 시간에 나는 학교 바깥에 있었다. 그 친구와는 자주 연락하진 않았지만,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간간이 안부 인사를 하며 지내고 있었다. 학교 앞 사거리, 횡단보도를 건너다 교복을 입은 그 친구와 우연히 마주쳤다. 사실 나는 처음에 알아보지 못하고 지나치려 했지만, 그 친구가 내 이름을 불러 나를 멈춰세웠다. 나는 그 친구를 돌아보았다. 가려던 길을 멈추고, 돌아서 그 친구가 건너려던 방향으로 같이 건넜다. 길 한가운데 서서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 친구는 나에게 많이 변했다고 말했다. 나는 웃으며 잘 지냈냐고 물었다. 그 친구는 어딘가 서글퍼 보였다. 어떤 대화를 나눴는진 자세히 기억나지 않는다. 그냥 시시콜콜한 안부였을 것이다.


 그리고 며칠 후 문득 그 친구의 얼굴이 보고 싶어 온라인 커뮤니티에 접속했다. 그 친구와 나는 커뮤니티에서 친구로 맺어져 있었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봐도 친구 목록에 그 친구의 이름을 찾을 수 없었다. 내 커뮤니티에 그 친구가 남긴 댓글이며 방명록 전부 사라져 있었다. 뭔가 잘못된 것 같았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나는 곧바로 그 친구에게 문자를 했다. 왜 나랑 친구가 끊어져 있는 거냐며. 그러자 그 친구한테 답장이 왔다. 내가 먼저 끊었어. 나 더 이상 너랑 친구로 지내지 못할 것 같아, 그동안 고마웠어, 따위의 내용이었다.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친구에게 절연을 당하는 일은 생전 처음 겪는 일이었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몰랐다. 영원히 알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왜 그런 결정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후회하지 않을 거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 친구가 말했다. 잘 지내. 그게 그 친구와 나의 마지막 대화였다.


 그 후 몇 년 동안, 그 이름을 쳐다보지 못했다. 그 이름만 생각하면 어딘가가 아팠다. 그 친구는 나에게 제일 친한 친구도 아니었고, 같이 보낸 시간이 많은 것도 아니었다. 그런 식으로 끝내지 않았더라도, 우리는 자연스럽게 더 멀어질 수 있을 터였다. 어른이 되기 전, 마지막 문턱 앞에서 나는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상처를 받았다. 그 상처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받은 것이 아니었다. 나는 동성애적으로 그 친구를 좋아한 적이 없다. 그럼에도 상처를 받았다. 내가 왜 그렇게 상처받았는지, 그 친구는 왜 나를 그렇게 떠나야 했는지, 그 친구와 관련된 것들은 전부 모호하게 남았다. 나중에서야 깨달은 게 하나 있다. 나는 단 한 번도 그 친구에게 이유를 물어본 적이 없다는 걸. 마지막 순간에도, 왜 나를 끊어내야 했는지, 물어보지 않았다. 어쩌면 나는 이유를 알고 있었을까? 그래서 더는 알고 싶지 않았던 걸까? 내가 단 한 번이라도 너에게 왜 그랬는지 물어봤더라면, 우리는 달리 되었을까.



달리 되었더라면, 우린 아직 친구로 남았을까?




♪ 멜로 브리즈_달리 되었더라면

매거진의 이전글 그런 슬픈 고백은 하지 말아 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