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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님 Sep 26. 2015

피스 앤 그린보트

8월 4일 - 셋째 날

오전 8시 무렵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했다.

약간의 빗방울이 내리는 흐린 날씨였다.

많은 배들이 정박해 있었고, 배들 사이에 짙은 회색의 군함도 보였다.

블라디보스토크라 쓰여진 것으로 보이는 붉은 색의 역 표지판이 보였다.

저녁에는 조명이 들어왔는데, 어둠 속에서 붉은 글씨가 더 강렬하게 보였다.

왠지 촌스럽기도 하고 허세처럼 느껴지기도 했지만 누군가 나에게 블라디보스토크에 대해

생각나는 것을 얘기해 보라고 한다면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블라디보스토크 역은 7박 8일을 달리는 시베리아 횡단 열차의 출발점이라고 하는데 안쪽에는 

러시아 혁명 전에 지어진 아름다운 역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특히 천장의 벽화가 아름답다고 해서

검색대에 짐을 통과시키는 과정을 감수하고 구경을 했는데 뛰어나게 아름다운 것 같지는 않았지만

정신없던 역 밖의 풍경과 다른 고요함이 있어 좋았다. 


입국 심사가 더디게 진행되었고 객실에서 입국 허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객실에서 창밖을 바라보다가  별 생각 없이 손을 흔들어 보았다. 그때  한 러시아 여자가 우리를 향해 밝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정말 기뻤다. 왠지 환영받는 기분이었고, 그녀의 미소가 우리의 입국을 허가해 주는  듯했다. 나와 박경화 씨는 답례로 두손을 격하게 흔들었다.


 드디어 입국 허가가 떨어졌고, 3층에 있는 배의 출구를 나와 블라디보스토크에 발을 디뎠다.

러시아는 화장실 사정이 좋지 않으니 배에서 내리기 전에 화장실을 꼭 들려야 한다고 강조를 해서 배에서 내리기 전까지 수시로 화장실을 찾는 사람들이 많았고, 기항지가 숲으로 가는 코스였던 박 경화 씨도 몇 번을 왔다 갔다 했다. 자연 환경에 관심이 많은 박경화 씨는 멸종 위기 시베리아 호랑이를 찾아가는 코스를, 나는 건축가 승효상과  함께하는 시내 관광 코스를 미리 선택해 두었다. 박경화 씨와 나는 한 번도 기항지가 겹치지 않았는데 서로의 관심사가 달랐기 때문이었다.

관광 버스를 타고 승효상 씨의 설명을 들으며 시내로 향했다. 승효상 씨는 건축물의 역사에 대한 얘기를 해주었고 가끔씩 관광 가이드가 현지 상황에 대한 설명을 해주었다. 차창 밖의 러시아 사람들을 보니 내가 정말 이국의 땅에 왔구나라는 실감이 났다.

먼저 점심을 먹기로 하고 식당으로 향했다.

어두운 실내로 들어가니 이미 음식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무슨 나무인지 식탁과 의자가 굉장히 무거웠다. 

별다를게 없어 보이던 음식은 전체적으로 매우 짰다. 나는 아이 둘과 함께 온 부부와 같은 테이블에 앉았는데 아이들은 음식을 거의 먹지 않았고 나와  부인되는 사람은 반 정도 먹었다. 

 화장실이 열악하다는 말을 계속  강조했기 때문인지 식사를 마친 뒤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화장실을 갔다. 나도 화장실이 특별히 가고 싶지 않았지만 집단의 불안감이 나를 화장실로 향하게 했다. 

다시 버스를 타고 시내를 돌았다. 하늘에 재빠르게 날아다니는 새들이 어떤 새인지 궁금했는데 아는 사람이 없었다. 이따금 보이는 러시아 특유의  번쩍 거리는 옛 건축물이 이색적으로 다가왔다. 유럽식과 혼합된 탁한 파스텔톤의 건축물들은 뭔가 정리되지 못한 느낌이었지만 여러 건물들을 보고 나니 나름대로 규칙이 있어 보였다.

가이드가 블라디보스토크를 보고 나서 러시아를 다 봤다라고 하면 절대로 안된다고 당부했다.

러시아는 넓고 블라디보스토크는  그중 한 도시이니까 당연하다.  

시내에서 좀 더 외곽으로 가니 낡은 건물들이 많았다.  노점상도 있고, 돌보지 않는듯한 풀숲도 있었다.

왠지  무뚝뚝한 인상의 러시아인들은 우리나라 사람들과 많이 닮아 보였다.


잠수함 박물관을 관람하고 걸어서 이동을 했다. 박물관에서는 아들에게 열심히 설명해 주는 현지인의 바로 뒤에서 이동을 했는데 아들은 그냥 저냥 심드렁해 보였다. 나는 바로 앞에서 들리는 러시아어가 음악처럼 들릴 뿐이어서 아쉬웠다.

크루즈로 돌아오는 길에 블라디보스토크 기차역을 지나서 왔기 때문에 많은 러시아인들 틈에 있을 수 있었다. 키가 큰 사람들이 많았고, 여자들은 내 눈에는 모두 미인들처럼 보였다. 남자들은 몸집이 큰 사람을 많이 봤는데 외국 영화의 한 장면에 내가 들어간 듯한 기분이 들었다. 대부분의 성인들은 부러 무심한 듯 지나갔지만 어린 학생들은 손을 흔들며 미소를 보여주기도 했다. 지나치게 낡은 버스들이 인상적이었다. 꽃무늬가 유행인지 화려한 원피스를 입은 여성들을 많이 봤다. 어디든 사람 사는 곳은 다 비슷하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나는 잠깐 그들의 평온한 일상에 잠시 들어간 이방인이었다가  배로 돌아왔다.

배로 돌아오니 알 수 없는 안도감이 밀려왔다. 어쩐지 배가 집처럼 느껴졌다.

저녁을 먹고 나서 붉게 빛나는 블라디보스토크 표지판이 점처럼 보일 때까지 배가  항구로부터 멀어지는 것을 바라보다가 객실로 돌아와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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