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퇴원을 시켜드리고 점심에 무채를 넣은 비빔밥을 먹었다. 햇무여서 무 냄새가 시원하니 입맛이 향긋하다. 사위는 봉사활동을 가서 우리 셋이서 엄마 납골당엘 갔다. 엄마는 손주 중 내 큰아이를 아주 예뻐하셨다. 동생네 같은 나이 수진이가 이쁜 옷을 입고 있으면 “그 옷 얼마냐? 나한테 팔아라.”
매장 앞을 지나가시다가도 앙증맞은 옷이 있으면 서슴없이 나해한테 어울릴 거라며 침을 흘리셨었다.이런저런 생각을 갖는데
내 두 딸이 서로 다른 꽃집에서 꽃을 들고 나왔다. 서로 누구 것이 이쁜가 비교해가며.
둘이서 할머니랑 있던 스웨터 같은 이야길 끄집어냈다.
백번 잘하다가 한 번 못 하면 이 한 번의 어긋남이 사이를 벌어지게 한다는 썰.
내 엄니는 조카사위가 명절 인사차 둘렀을 때 고기 한접시 더 놓으면 될 걸 평소에 이뻐했던 나해앞의 고기 접시를 손주사위 쪽으로 밀어놨다. 엄니가 가시고 나해는 두고두고 말한다. “할머닌 나도 고기 좋아하는 걸 아시면서 왜 내 고길 끌어가” 여기서 할머니한테 실망했다고 했다. 이런 일도 세상일이라. 그렇구나를 체감하게 했다.
* 엄마를 모실 땐 우리 메모가 훤했었다.
종이학이랑 메모 다 떼어내 줬다. 엄마의 옆은 큰 산 바위와 계절의 나무들이 심심치 않게 엄마를 에둘러 있어서 좋다. 그런데 맨 아래층 입구에 납골을 안치하려고 빈 안치장을 5천개를 들여놨네. 1층에 안치되실 분들 나무도 꽃도 새도 못 보시게 될 듯 *
엄마 앞에 나해까지 인사 오니 만족하다.
그리고서 집에 왔는데 세상모르고 푹 잠을 쏟았나 보다. 깨고 보니 아침인 줄 알았는데 뭔가 야릇해서 핸드폰의 날짜랑시계를 확인하니 하루가 가지 않았음을 알았다. 꽤 길게 잔 것 같았는데시간개념을 잃었다. 여기저기서 전화가 온 것도 모르고 업어가도 모를 정도로 깊게 자니 몸이 한껏 가볍다.
문자랑 통화를 날려주고 막냇동생 전화를 받았더니 아버지의 세숫비누 못 챙겨옴을 재차 물었다. 아까 아버지도 그러셨는데 비누를 병실 바꿀 때 못 옮겨서 샴푸를 쓰셨다고 들었다. 막냇동생을 나무랐다.
아버지한테도 전화가 왔다.
“이거 늙은 황소 다리야. 흐물흐물 하지 않아.”
“아부지, 다들 이젠 그만해. 우족은 더 우러나야 물컹물컹 물러지지.”
시간이 좀 더 흘러서 어둑해지려니 막냇동생한테서 전화가 또 온다.
“TV 새 건데 자꾸만 끊겨. 고장인가 봐?”
“줄 덜 꽂혔나 보고 안 되면 유선방송 연락해 봐.”
요걸 또 엄마한테 습관된 것처럼 날 부려 먹으려고 했나 본데 TV 줄이 덜 꼽아있어서라고 이유를 댔다. 으 휴 정말 ;;
이젠 웬만큼 쓴소리에 무뎌졌고 엄마가 가시니 나도 큰소리로 되받아친다. 억울함을 내가 저승 갈 때 짐짝처럼 짊어지고 가면 안 되기에 바른 소리를 하고 넘어간다. 요걸 내 아이들이 들으면 분개한다. 뭉글해진 나보다 더 분통하리라.
그냥 지나칠 수 있는 건 넘기며 살아야 한다. 그러면서도 아니라고 분명히 짚어줘야 할 땐 확실하게 나도 말할 수 있다.
마음 꾸려 해주고 생각해서 인정을 베풀면 궁시렁 헛소리가 나오는 친정 식구들의 말씨를 업그레이드 중인데 그 길이 아득하다.
있는 금붙이만 챙겨. 너무 소소한 것에 토를 달고 억울해하면 넓은 세상 어떻게 풀고 살아.이해의 폭을 넓히면 자연의 순리를 따라가는데 수월해져.되도록이면 군소리를 피하고 그렇구나를 먼저 튀어나오게 해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