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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이윤 May 02. 2024

시험관 차수가 내가 정한 마지노선까지 도달했을 때

이 정도 차수까지 했으면 성공했겠지 하는 차수에 도달하고 말았다.

1. 잠깐의 쉼

시험관 총 5차. 동결 2차수에서 처음으로 피검 1차를 통과하고

2차에서 화유라는 결과를 받아들이고 난 후

나는 자체적으로 쉼을 가지게 되었다.


사실 쉬는 동안 엄마가 한약도 지어주시고

나름 몸관리를 하면서 자연임신에 대한 가능성과 희망을 열어놨었다.


하지만 5개월이라는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임신도 실패했고

내가 이렇게 시간을 허비할만한 나이가 아님을

빠르게 깨닫게 되어 다시 병원을 찾게 되었다.








2. 새로운 시도 "장기요법"

지금까지는 계속해서 시험관 단기요법으로 난자채취를 했었기에

선생님께서는 장기요법으로도 시도를 해보자고 하셨다.


난자의 질이 좋지 않아 채취 대비 만들어지는 

배아의 갯수나 질이 현저히 좋지 않았기 때문에

충분히 도전해 볼만한 요법이었다.


그동안 쉬면서 운동이나 영양제 그리고 식단도 나름 지켜서 했기에

새로운 시도와의 콜라보가 꽤나 기대됐었다.


장기요법을 시작 하기 전에

자궁내시경을 통해서 자궁 내부도 깨끗하게 정리하고

주사를 꽤 긴 시간동안 맞아야 하는 장기요법도

'희망'이라는 단어 하나로 버틸 수 있었다.


그렇게 난자의 개수가 많지는 않지만

처음으로 10개 정도의 난자가 고른 크기로 자라고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내막도 처음으로 1cm가량으로 자라있어서

그 어느때보다 성공할 것만 같은 느낌이 가득했다.


그동안 7개, 15개, 20개의 개수를 채취했었는데

이번에는 10개를 채취했지만 질이 좋을 거라는 혼자만의 확신이 있었다.

왜냐하면 새로운 시도로 난포를 키워봤고, 그동안 몸관리도 열심히 했기 때문에.









3. 기대에 못 미쳤던 결과 그리고 좌절

하지만 나의 기대와는 다르게 10개의 난자 중 4개만의 수정이 되었고

그나마도 5일배양까지 가지 못하고

4일배양 2개를 신선으로 이식을 하게 되었다.

그렇다. 이번에도 동결은 없다.



심지어 신선으로 이식한 배아는 등급도 '하'

2년간 시험관 시술을 하면서 병원에서 운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이식하는 날 배아의 등급을 듣고 간호사 선생님께 

"등급이 낮아도 성공할 수 있나요?"

질문을 하면서 자괴감에 빠져 엉엉 울고 말았다.



'선생님도 나 같은 사람을 많이 보셨겠지..?'

2년간 절망감이 들어도 무너지지 말자는 다짐 하나로

병원에서는 눈물을 보이지 않았었는데

그 기나긴 다짐이 그 날 무너져버리고 말았다.



"배아의 등급과 착상 그리고 태아의 건강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등급이 낮아도 착상하고 출산하는 분들도 많으니

전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며

감사하고 따뜻한 위로를 받고도 가라앉은 내 기분은 다시 떠오르지 못했다.







4. 또다시 품어보는 기대 그리고 머지않아 닥쳐오는 실망감

하지만 나도 사람인지라

2개의 4일 배양을 이식한 후 임산부 처럼 조심해서 다녔고

이식 후 6일차 즈음에 임테기의 두 줄을 본 후

다시 기대를 하게 되었다.


사실 오비드렐(배란시키는 주사)을 두 대나 맞았기 때문에

임신테스트기가 두 줄이 나올 수 있었음을 스스로 망각하고 있었나보다.


나의 간절한 바람과는 다르게 날짜가 지날 수록 임테기는 흐려졌고

9일차에는 완전한 한줄이 되어버렸다.


병원에서는 눈물을 보였어도 남편앞에서는 울지 않았는데

임테기를 하고 화장실에 나와서

재밌는 프로그램을 보며 웃고 있는 남편 옆에 태연하게 앉아있다가

나도 모르게 눈물이 떨어지고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눈물이 나오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눈물에 놀란 남편은 얼른 티비를 껐다.



대충 어떤 상황인지 눈치 챈 남편은

괜찮다며 우리 아이 없이도 재밌게 살 수 있다고

시험관을 이제 그만하자고 했다.








5. 내가 시험관을 시작하면서 정했던 마지노선, 5차까지만..!

나는 내가 4번의 난자채취와 5번의 이식을 할 동안

성공을 못할 거라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다.

앞으로 시험관을 계속 한다한들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내 머리를 지배해버렸다.


그런데 나는 아이가 없는 삶은 행복하지 않을 것 같았다.

어릴 때에는 결혼과 아이가 나의 인생을 힘들게 할 것 같았지만

지금은 아이가 없는 삶은 생각하고 싶지 않았따.


가치관의 차이겠지만 과연 우리 둘이 언제까지 재밌게 살 수 있을까

지금 포기하고 나중에 나이가 들어 

갑자기 생각이 바뀌어 시험관을 다시 시작했을 때엔

이미 늦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남편 앞에서 소리내어 펑펑울고

나는 시험관을 계속 하겠다는 선전포고를 한 뒤

병원을 다시 한 번 전원하기로 결심한다.


그동안 너무 먼 것 같아 오랜시간 고민만 하고

결국에 포기했던 곳.

우리집에서 편도로 2시간이 걸리는 병원으로 전원을 결심했다.







6. 또 한번의 전원. 나의 세 번째 난임병원. 이 곳에서는 성공하리라.

그렇게 나는 1차 피검을 받는 날

전원 서류도 함께 요청드렸다.


그래도 거의 1년동안 다닌 병원에서 

항상 따뜻하게 대해주시던 간호사 선생님이

'우리 병원에서 됐었다면 좋았을텐데 아쉬워요.

가시는 병원에서 빠른 시일 내에 임신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그리고 전원을 하기로 결심했다면 

해보는 것도 좋은 것 같다. 선택했다'며 속상해하는 나를 위로해주셨다.




그리고 나는 또 울어버렸다....

눈물이 매마른 줄 알았는데 그냥 내 속에 수도꼭지는 틀어져있었고

그렇게 쌓여가고 있었던 눈물이 이제야 펑펑 나오는가보다...



누가 보면 떠밀려서 전원을 하는 사람처럼 

닦아도 닦아도 흐르는 눈물을 뒤로하고

전원 서류를 챙겨 집으로 돌아왔다.


그동안 나의 난임 진료기록들을 보면서

세 번째 난임병원에서는 꼭 성공하고 싶은 마음에

인공수정부터 시험관까지 그동안 내가 처방받았던 주사와 약들

그리고 특이사항들을 엑셀로 정리했다.

그만큼 나는 간절하다.



그리고 어김없이 제 날짜에 시작한 생리 덕분에

이틀 뒤 바로 서울의 유명한 난임 병원에 초진 상담을 가게 되었다.





그렇게 나의 세 번째 난임병원에서의 시험관도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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