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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선정 Jun 29. 2024

셀피시노마드, 나의 인생 선언문

50대, 처음으로 글을 쓰다.

무슨 용기일까? 초등학교 우리 때는 국민학교라고 했지만, 이렇게 쓰고 나니 나이가 확~ 실감이 난다.


초등학교 때 의무적인 일기 쓰기 이후에, 글을 써 본 적이 거의 없다.


그러다, 올해 우연히 하게 된 모임에서 블로그에 글을 올리기 시작하면서 "뭔가를 쓴다"라는 사실이

아주 잊혔던 추억을 소환하고, 살기 바빠 "자기 성찰"이라는 근사한 단어는 내 사전에 없어진 지 오래였는데, 이제야 그 단어를 글쓰기 때문에 끄집어 내게 되었다.


작년에, 이미 오래전에 돌아가신 아버지, 아버지 형제들이 거의 다 돌아가셨다.  


그러자, "아! 그다음에 우리구나"라는 생각이 불현득 들었다.


물론 태어날 때는 순차적이나, 죽는 건 그렇게 되지 않는 걸 알고 있음에도 나는 뭐 하다 이렇게 나이만 먹었나를 생각했다.


학교를 가고 남들 다하는 공부 해서 대학 가고, 회사 가고 일하고, 또 일하고 그냥 사회에서 만들어 놓은 시스템에 맞추어, 그 기차에 올라타 왔지만 정작 어디로 가는 방향인지, 무엇을 위한 방향인지 , 이미 한참 와 버렸는데 이제야 두리번거리는 꼴이다.


이미 관성에 젖어버린 삶, 내가 아는 세상이 전부인양 일명 "꼰대"가 되어가고 있는, 아니 이미 되어있는 내가, 이제야 뒤늦게 "어? 나 내려서 다시 갈아타야 하는데"를 외치고 있는 꼴이다.


다행히, 블로그에 글을 올리는 미션을 받고 본의 아니게 아주 오래전에 묻혀 두었던 "내 기억의 보관소"에서 때로는 마음의 상처로 기억이 불쑥불쑥 올라올 때마다,  손으로 확 눌러 나오지 못하도록 꽁꽁 싸매두었던 내 이야기, 그리고 찬란했던 젊은 날의 한 순간들이 봉인이 되어 "글"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다시 편집이 되고 있다는 건, 참 신기한 일이다.


"왜, 글을 써야 하냐고 물었다". 약간 귀찮고 짜증이 나고 부담스러워서. 그럴 때 돌아온 대답은,

"나의 삶을, 내 생각을 나의 언어로 남긴다".  

"와! 그거면 됐다". 


일 하는 거 공부하는 거 다 생산적인 삶이지만, 거기에는 나와 관련된 누군가의 input이 있다. 그래서 생산적이지만 지극히 소모적일 수도 있다.


그런데, 책 쓰기는 오로지 내 생각, 내 단어, 나만의 경험이다. 물론, 이 글을 읽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그래서, 뭐?, 전혀 공감이 안되는데..." 이럴 수 있겠지만, 일단 그 단계는 부차적이다.


브런치에 작가 신청을 하고, 나에게 엄청난 용기였지만 한편으로 "당신은 작가 소질이 없어, 다음 기회에.." 이렇게 오기를 내심 기대했다.


"아, 그러나... 다음 기회가 아니고, 축하합니다!"라고 온 메일이 이렇게 반갑지 않을 줄이야...


몇 번을 브런치 사이트를 열고 로그인도 못하고 문 앞에서 서성거리며 몇 주가 지났다.


브런치 담당자는 글을 쓰는지 안 쓰는지 확인을 하는지, "작가님, 당신의 글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인가 뭐 비슷한 글로 무언의 압박을 한다.


그럼에도 모른척하고, 조금만 더 있다 조금 만 더 있다. 그래 주말에 편하게 쓰자 이러면서 하루 이틀 미룬다.


왜 그럴까? 나를 나의 생각을 공개한다는 마음 깊은 곳에 두려움이 있어서다. 


내가 유명한 작가도 아니고 내 글을 얼마나 많이 읽겠냐마는, 그 마지막 허들을 넘기가 힘들다.


아무리 감추려 해도, 글에는 그 사람이 살아온 여정과 생각이 고스란히 담겨있기 때문이다. 


몇 편의 글은 자신을 속일 수 있으나, 글과 나의 괴리가 크면 클수록 글은 공허하고 나는 "쓴다"는 자체가 무척 괴롭기 때문이리라.




"브런치" means "화장을 하지 않아도 되고, 옷을 갖추어 입지 않아도 되며 눈곱만 대강 떼고 까치집 지은 머리를 모자로 대강 누르고, 슬리퍼 질질 끌고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좋아하는 카페에서 아침도 아닌 점심도 아닌 그 애매하고 나른한 시간에 먹는 찌르르한 커피 한잔" 내겐 그런 의미의 애착 단어다. 


브런치를 먹으며 "브런치"에 글을 올리는 용기를 오늘은 냈다. 이 여정이 어디로 갈지 나는 모른다. 

그러나, 아마도 다시 내려서 기차를 탈 수는 없지만, 많이 틀어져 버린 내 인생의 각도를 미세하게 조절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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