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처음으로 마라톤을 하다
50대, 반백 년을 살았고 산전수전 공중전을 어느 정도 겪었고, 또한 패턴대로 사는 삶이 익숙한 아니 정확히 얘기하면 의식하지도 못하고 그냥 사는 나에게, 앞으로 삶에 특별한 도전들을 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더더구나 내가 마라톤을 하게 될 거라고는....
운동은 아픈 게 싫어 억지로 하는 헬스 정도, 뭐 하나 운동이라면 제대로 하는 게 없고 학교 다닐 때 체육시간이 죽기보다 싫었다. 물론 성적도 좋을 리가 없고.
남들은 설레며 기다리는 초등학교 운동회가 "제발 비 와라. 많이 와라!!" 그래서 운동회가 취소되기를 항상 빌었다.
왜냐하면 운동회에 빠지지 않는 100m 달리기에 늘 꼴등은 따 놓은 당상이기 때문이다.
가족들이 모두 와서 응원하는 곳에, 늘 안타까움으로 나를 바라보는 그들을 마주하는 느낌은 고역이 아닐 수 없다.
그런 내가, 50대에 달리기를 시작했다. 10대도 20대도 40대도 아닌 다 늦은 나이에...
마치 거짓말같이, 우연한 기회에.
공식적인 행사가 있어 부산을 갔다. 그 행사에 참석한 한 사람들 중에 달리기를 하는 모임이 있었다.
그들은 부산 해변가에서 달리기를 하면 좋겠다고 했고 나에게도 같이 하자고 제안했다.
초면에 거절하는 것도 예의가 아닌 것 같아, 긍정도 부정도 아닌 약간의 애매한 고개 끄덕임으로 의사 표시를 했다.
행사가 거의 끝난 시간은 새벽 1시 반쯤, 새벽 5시에 같이 모여 달리기를 할 테니 나오라고 했다.
속으로 "미친 건가?, 3시간 자고 일어나 달리기를 한다고?".
잠을 잤는지 말았는지 자명종이 울리고, 같이 방을 쓴 룸메이트가 비몽 사몽인 나를 깨운다.
"뭐 하세요. 얼른 나가야죠..", "헉! 진짜네...". 일단 그녀의 재촉에 천근만근 몸을 이끌고 나갔다.
밖에는 비가 소리 없이 내리고 있었고, 비를 보면서 "아! 다행이다.. 그냥 들어가겠네.., 아직 로비에 사람도 없는 걸 보니 취소가 되겠지.. "라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웬걸 몇 분 지나진 않아 엘리베이터에 운동복을 입은 사람들이 쏟아져 내렸다.
"와, 이 사람들 진짜 할 모양이네..." 모인 사람만 10명 정도.. , 결국 나는 무리에 이끌려 나도 모르게 밖으로 나가 뛰고 있다. 부산 앞바다 비 오는 거리를..
처음인 나를 위해, 달리기 모임 회장님은 옆에서 팔과 다리를 쓰는 법, 호흡하는 법을 가르쳤다.
물론 친절한 설명은 좋지만, 나는 무척 짜증이 났다. 몸은 나무토막 같고 3시간도 못 잔 피곤한 몸뚱이가 움직 일리도 없는데, 그리고 솔직히 중간에 눈치 봐서 모양 빠지지 않는 선에서 슬쩍 빠져야겠다고 생각했다.
어쩔 수 없이 이끌려 가는 중, 점점 몸은 뜨거워져 오고 여름 비는 기분 좋게 몸을 적신다.
갑자기 뭔가 훅~ 빠져나가는 걸 느끼며 더는 몸이 무겁지 않고 팔과 다리, 호흡이 일체가 되며 "달린다"외에는 생각지 않는 물아일체,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순간이다.
그 기분을 뭐라 표현할 수 있을까? 성취감, 잠을 못 자 찌뿌둥한 몸은 가벼워지고 얼굴은 불타는 고구마 같이 벌겋게 달아올랐지만,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기분 좋은 감정이다.
그 이후, 나는 새벽에 달리는 미친 그룹에 이끌려 토요일 새벽 한강에서 달리기 연습에 참가하고, 마라톤 대회를 4번이나 나갔다. 일어날 일은 일어나는 것처럼.
어느덧 나도 모르게 러너의 길을 들어서고 있었다.
마라톤 대회 후, 오른쪽 고관절이 아파, 근육통이겠거니 하며 버티다 낫지 않아 병원에 갔다.
의사는 놀라며 " 그 나이에 마라톤을 하세요? 그냥 걸으세요.." 한다. 아주 한심하다는 듯이.
나는 그래서 물었다 "선생님, 이거 약 먹고 가르쳐 준 스트레칭 하면 나을 수 있나요? ".
의사들은 자신의 몸 아니라고 아무렇게나 말하는 버릇이 있다. " 뭐, 나이도 있으시고 낫지는 않아요. 더 나빠지지는 않을 뿐..".
아니 낫지도 않는데 뭐 이래라저래라 말이 많아, 나는 속으로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아직 컴컴한 어둠을 뚫고 뛰다가 숨이 헉헉 거려 더 이상 뛰지 못할 것 같은 그 순간, 잠수교에서 떠오르는 붉은 태양을 바라본 적이 있나요? ".
"동료들이 마지막 라스트에서 박수를 치며, 조금만 조금만 응원해 주는 소리를 들으며 마지막 죽을 힘을 모아 달리는 그 희열을 느껴 본 적이 있나요?".
나는 하루를 살아도 이런 기분으로 살고 싶어요. 내 심장이 미친 듯이 두근 거리는 그 느낌. 추운 겨울에도 땀이 뚝뚝 떨어지며 눈으로 입으로 들어가며 느껴보는 내 땀의 짭조름한 맛. 한강에서 바라보는 붉게 솟아오르는 태양의 희열을요.
하! 하!,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의사 말을 듣지 않았고, 약도 제대로 먹지 않았지만 내 고관절은 근육 단련이 되어 그런지 더 이상 아프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피곤한 몸을 이끌고 신발을 신고 나간다.
내가 좋아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서 말한 것처럼.
"적어도 나는 끝까지 걷지 않았다"를 다짐하며.
또한, 언제가 나도
"50대,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를 쓸 줄 누가 알겠는가?".
인생은 모르는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