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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콤 Apr 03. 2024

좋은 상담사가 되는 것

컨디션이 들쭉날쭉하다. 어떤 날은 기운이 넘치다가도 어떤 날은 기운이 하나도 없고 쳐진다. 나는 조울증으로 병원치료를 받는 중이다. 의사 선생님도 오늘은 쳐져 보인다고 얘기하는 날이 있다.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에 상담을 하는 것은 힘든 일이다. 나는 상담을 해주는 사람이다. 요즘은 컨디션 난조 이슈로 쉬고 있지만 약을 먹으며 조절이 될 때는 일을 했었다.


상담사는 내담자(상담을 받는 사람)의 이야기를 집중해서 들어야만 한다. 경청이라는 것을 대학 때 배웠다. 백발의 여성 교수님께서 경청의 의미를 가르쳐 주신 적이 있다. 8-90년대에 상담사라는 사람들은 가정방문을 다녀야 했다고 했다. 경제적, 정서적 사정이 안 좋은 사람들을 물어물어 내담자를 구하고, 상담을 하고 다녔다고 한다. 몸과 마음의 병으로 임종을 앞둔 내담자가 있었다고 하셨다. 교수님은 상담자이면서 수녀님이셨다. 기도를 하고 임종을 가족들과 함께 맞이하고 있었다. 그때 내담자가 할 말이 있는 듯 보였다고 하신다. 귀를 가까이 가져다 대고 들었다고 하셨다. 장애가 있는 아들을 잘 부탁한다.라는 말을 10분에 걸쳐 힘겹게 하셨다고. 경청은 그런 것이다. 임종을 앞둔 사람의 이야기를 듣듯이, 귀를 열고, 무슨 말을 하는지 최대한 몸을 기울여 듣고, 단 하나도 놓쳐선 안 되는 것이 바로 경청이라고. 경청의 의미를 가볍게 여겨선 안된다는 의미 있는 말씀이었다.


그런데 그 경청이 잘 되지 않을 때가 있다. 상담사로서는 부끄러운 일이다. 아프다는 핑계를 대선 안된다. 이 사람은 어쨌든 나에게 상담을 받으러 시간을 내서 와 준 사람이고, 나는 최대한의 역량을 발휘해 해내야만 하는 일인 것이다.


어떤 날에는 하품이 나왔다. 내가 원하던 상담이 아니었다. 경청을 제대로 하지 못한 상담이 된 것이다. 큰일이었다. 이 일로 나는 슈퍼비전(상담심리사 1급 상담사 지도자에게 상담에 대한 지도, 감독을 받는 일)을 받았다. 내담자의 말을 듣다 졸려서 하품이나 하다니. 호되게 혼이 날 줄 알았지만 슈퍼바이저 선생님은 혹시 나의 몸이나 컨디션이 안 좋냐고 물었다.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거렸고, 본인의 몸과 마음의 관리를 잘해야만 한다고 조언을 들었다. 집에 와서 꾹 참아왔던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약도 먹고, 상담도 다녔는데 노력이 부족했던 것 같았다.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상담사가 되어서는 안 되는 사람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상담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상담을 어떻게 해야만 '잘 하는' 상담을 할 수 있을까. 상담은 해답을 내놓아주는 것이 아니다. 해열제를 처방해 주는 것이 아니다. 그 사람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마음속의 힘을 길러주고, 경청한다. 어떤 날에는 거울처럼 상대방을 비춰주며, 감정을 되돌아보게 한다. 그러면서 본인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조력해 주는 역할을 해 주는 것이다. 내담자가 겪었을 산전수전을 공감해 주면서. 그 일이 당신에게 너무 힘들었겠다고, 마음을 세심하게 어루만져주며 상처에 연고를 발라주고, 낫기를 함께 버티며 기다려주고, 덧나면 다시 함께 물로 씻어내 소독을 하고, 약을 다시 발라 밴드를 붙여주면서 말이다.


그 일을 해내려면 내가 담담히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어줘야만 한다. 상대방이 쉬어줄 자리를 내어줘야 한다. 어떤 병이 있다고 해서 못하는 일이 있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나무그늘 아래 그루터기에 앉아 쉴 수 있도록 마음의 자리를 내어주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려면 상담사인 내가 그루터기가 되어야지, 나무그늘이 되어줘야지 하고 생각한다. 


정신질환이 있더라도 약과 상담으로 증상을 잘 조절하면 충분히 좋은 상담사가 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 나는 그러한 내면의 힘이 나에게도 있다고 믿으니까. 약을 점차 줄여가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혈압이나 당뇨처럼 평생 약을 먹더라도 관리와 조절만 할 수 있으면 일상과 일을 충분히 해낼 수 있다고 받아들인 것이다.


상담사를 준비하는 사람들은, 이런 저런 이유 때문에 스스로 상담사가 될 자격이 있는지 늘 검열한다. 나 또한 그랬다. 하지만 누군가는 내 글을 보고, 좋은 상담사가 되는 일을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상담사 뿐만 아니라 어떤 것이든 당신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당신의 꿈을 스스로 져버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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